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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 안, 타인은 지옥일까.

<스테르담 에세이>

by 스테르담

고단하지만 달달하면서도 깊은 잠에서 깬 건, 순전히 옆 자리 노인의 오지랖 때문이었다.

두 시간 정도의 비행은 일상의 고단함을 해소하기에 아주 좋은 기회다. 고단한 업무와 잦은 출장, 스트레스로 잠을 이루지 못하는 여러 밤이 오히려 수면제가 되어 불편하고 딱딱한 이코노미석을 침대로 탈바꿈시키기 때문이다.


몸은 피곤하지만 잠은 오지 않는 고통의 어느 한 밤엔, 비행기를 타러 나갈까…라고도 생각한 적이 있다. 중독이라는 말이 떠오를 만큼 달콤한 그 잠의 맛을 잊지 못한다는 뜻인데, 망할 노인네가 그 단잠을 방해한 것이다. 커피 카트가 왔다고 나를 깨우다니... 이런 경우는 또 처음이었다. 아무래도 비행기를 많이 타보지 않은 듯하다.


그것도 모자라, 화장실을 가겠다며 내 어깨를 툭툭 쳤을 때 역시 타인은 지옥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Excuse me...!

서툰 영어와 능숙한 손짓으로 나를 지나가겠다고 말했다.

좀 전까지 스페인어로 옆 자리 부인과 이야기 하는 걸로 봐선, 아무래도 중남미 어느 국가 출신일 거란 생각이 들었다. 마지못해, 그러나 최대한 티를 내지 않으려 노력하며 선반을 접고, 이어폰을 빼고, 선반 위 물건들을 주섬주섬하며.... 아이 짜증 나. 이코노미를 탄 내 잘못이지.


노인이 갑자기 내 손에 있는 쓰레기를 잡아챘다.

자리를 비켜준 것에 대한 감사의 표시였을까. 대신 버려주겠다는 제스처를 취하며 뿌듯한 미소를 건넸다.


뭐지, 이 오지랖의 또 한 단계는.


웃으며 돌아서 화장실로 향하는 노인에게 나는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꼭 그러하지 않아도 되는데. 오지랖은 국경을 초월하는가. 나이를 초월하는가.




쿠궁... 비행기가 지면의 마찰을 일으키며 착륙했다.

노인은 끝까지 나에게 인사를 잊지 않았다. 스쳐가는 인연일 텐데, 인사부터 오지랖까지. 그 노인은 무얼 바라며 나에게 그러한 것일까. 자느라고 커피를 마시지 못할까 친히 깨워 주고, 손에 들린 쓰레기를 대신 버려주고. 끝까지 환하게 웃으며 인사하는 그를 보며 나는 생각했다.


타인은 지옥일까.

지옥이 타인일까.


스스로를 지옥에 가둔 건.

다름 아닌 내가 아닐까.


악마와 뿔과 날개가 나에게 달린 건 아닐까.

천진난만한 노인의 웃음이 머릿속에서 가시질 않았고, 나는 내내 골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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