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테르담 Sep 29. 2015

영어야 반갑다 너, 네덜란드에서!

네덜란드 사람들이 영어를 잘 하는 이유

당신은 지금 어딘지 모를 곳에 떨어져 있다.

난 누군지, 여긴 어딘지 모르는 사이, 저기 여러 사람들이 모여 있는 모습이 보인다. 반갑다. 정말 반갑다. 말을 걸어본다.


"한국 말할 줄 아세요?" 사람들이 이상하게 쳐다본다.
"그럼....Do you speak English?" 이제 좀 덜 이상하게 쳐다본다.


누군가 한 명이 사람들 틈 사이를 비집고 나온다.

 

"Yes... I can speak English! How can I help you?"


만약 이러한 상황이라면, 정말 내가 영어를 잘 못하더라도 실낱같은 희망을 볼 수 있을 것이다.


하물며, 나라의 거의 전체에서 영어가 통한다면 그 얼마나 편하고 좋을까? 

여기는 미국도 아니고, 필리핀도 아닌 유럽인데도 말이다.

(잘 알다시피 유럽 어느 나라의 외곽을 벗어나면 영어로 소통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내가 영어를 잘 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아마 무언가 모를 안도감이 들 것이다.


"나라 전체가 영어를 유창하게 잘 말한다. 분명히 모국어가 있음에도"


우리나라의 열정이 최고조에 달했던 2002년.

우리가 기억하는 히딩크 감독은 모든 인터뷰를 스스럼없이 유창하게 영어로 자신 있게 말하는 사람이었다.

네덜란드가 영어를 쓰나? 네덜란드 말이 따로 있지  않았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직도 네덜란드어인 더치와 독일어가 같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주재원의 신분으로 온 만큼, 파견 국가를  배정받기 전에 마음속으로 간절히 바라는 것은 바로 "아... 제발 살기 좋은 곳, 또는 그래도 사람 살만한 곳으로..."이다.


그렇다면 "살기 좋고, 사람 살만한 곳"의 기준은 무엇일까?

가족이 안심하고 잘 살 수 있는 곳, 무엇보다 '치안'과 '언어'가 잘 갖춰진 곳일 테다.


부임 후 바로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이러한 기준으로 네덜란드는 정말 '살기 좋은 곳'의 표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소위 말해 가래 끓는, 발음이 꽤 어려운 더치어를 이야기하다가도, 외국인이거나 더치어를 못한다고  판단되면, 머리 속 스위치를 On/Off 하듯 바로 영어가 튀어 나온다. 아이러니한 것은, 그래서 네덜란드는 네덜란드어인 더치어를 배우기 매우 힘든 곳이다. 더치어를 연습삼아 한 마디라도 할라치면 사람들은 바로 "영어로 하셔도 돼요..."라며 영어를 입에서 자동으로 발사한다!


어쩌면 네덜란드는 더치어보다 영어를 배우기 더 좋은 나라일 수 있다!


"영어 능력 평가 지수 Top Ranking"


EF EPI 세계 Ranking [출처: http://www.ef.co.kr]


네덜란드의 영어 능력(?)은 객관적 자료로도 뒷받침된다.

세계 최대 영어능력 평가 지수인 EF EPI (EF English Proficiency Index)에 따르면, 네덜란드는 영어를 모국어로 하는 나라를 제외한 국제 Ranking에서 2위를  차지한다. 1위 덴마크와의 점수 차이는 고작 0.32점이다.

(3위 스웨덴과는 1.18점 차이이며, 24위를 달리고 있는 한국과의 점수차는  15.36점이다.)


사실 나는 영어를 숫자로 매김하고 그 수준을 평가하는 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지만, 영어 교육열 매우 높은  우리나라 Ranking이 예상 보다 낮은 것 (일본이랑 거의 비슷하다니!!!!)은, 언어 소통이 아닌 Test의 도구로 사용되어지는 우리나라 영어 교육의 맹점을 EF EPI가 잘 잡아낸 것이라 평가하고 싶다.


"네덜란드 사람들은 왜 영어를 잘할까?"


자, 그렇다면 네덜란드 사람들은 더치어가 있고 자부심이 대단함에도 불구하고, 왜 영어를 잘할까? 

먼저 '한국인의 관점'으로 보자. 우리네 눈으로 본다면, 아마 네덜란드 아이들은 2살 때부터 영어 학원에 보내지고 초등학생이 되기 전에 영어 essay를 쓸 것이며, 중학교 때는 거의 모든 문법을 마스터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 곳에서 살면서 본 모습은 우리가 생각하는 모습과 달라도 너무 다르다.

5세 이상의 어린이나 초등학생들에게 영어로 말을 걸어보면, 어김없이 돌아오는 언어는 '더치어'이다. 네덜란드 거의 모든 사람들이 영어를 잘하는 이유가 어렸을 적 '조기 교육'의 효과일 것이라는 지극히 한국적인 생각의 접근이 무너지는 순간이다.


실제로 네덜란드 교육 과정에서 영어를 시작하는 때는 초등학교 고학년부터이며, 이마저도 일주일에 2번 정도의 수업만 진행한다. 또한, 중학교에 진학해도 영어의 난이도가 그리 높진 않다. "Where are you from?" 수준의 대화라면 믿겠는가?


자, 그럼 우리는 죽어라 해도 잘 안 되는 영어를 네덜란드 사람들은 어떻게 잘하게 된 걸까?


우선 '영어를 잘한다는 것'과 '영어를 해야 하는 이유'가 명확하게 정의 및  구분되어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영어를 잘한다는 것'은, 최근 많은 변화가 있긴 하지만, 아직까지도 '영어 점수를 잘 맞는 것'으로 정의된다. 문법이든, 대학원 진학을 위한 Essay이든, 우리의 영어는 항상 평가 도구로 여겨지면서. 물론, 이러한 선상에서 영어를 잘해야 하는 이유도 대학 진학 및 취업, 유학을 위해서가 주를 이룰 것이다.


반면, 네덜란드는 '영어를 잘한다는 것'과 '영어를 해야 하는 이유'가 커뮤니케이션의 수단과  먹고살아야 하는 실용적 현실을 그 배경으로 하고 있어 우리나라의 그것과 다르다.




하여, 네덜란드 사람들이 영어를 잘하게 된 이유를 객관적 사실과 주관적 의견을 섞어 정리를 해보면 아래와 같다.


1. 영어의 기원에 네덜란드가 있다.


영어는 앵글로프리지아어와 저지 게르만어 (유럽의 역사에서 '저지'는 오늘날 네덜란드를 비롯한 인근 지역을 말함)를 기원으로 하는 서게르만어군의 하나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 언어는 주변국으로 흘러 들어 사용되우리가 아는 '초기 근대 영어'가  15~16세기에 걸쳐 런던에서 확립, 식민지 확대 정책과 더불어 세계로 전파된다.


하여 어원에 있어서 그 궤를 같이하니, 네덜란드 사람들이 영어를 배우고 사용하는 것이 그리 이질감이 있지 않다는 이야기이다. 단, 이 이론이라면 한자 문화권과 어순이 비슷한 일본어를 우리도 잘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으니 이 가설이 네덜란드인들이 영어를 잘하는 이유를 전부 설명하진 못한다.


2. 영어를 쓸  수밖에 없는 환경!


네덜란드를 한 때 가장 잘 살게 한 수입원은 바로 '중개무역'이었다.

이는 현재에도 유효하며, 네덜란드는 로테르담을 거점으로 세계 해상 무역 및 물류의 '허브'로 자리 잡고 있다.


더불어, 앞서 이야기 언급한 EF EPI Ranking을 볼 때 재미있는 사실을 혹시  발견했는가?

그렇다. 바로 Top Ranking에 올라 있는 1~5위 국가가 모두 북유럽이라는 사실!

놀랍지 않은가? 흥미롭지 않은가? (나만 그런가?)


이 다섯 나라의 공통점은 작고 인구가 적음에도 불구하고 '잘  사는 나라' 라는 것이다.

다섯 나라의 인구수를 다 합치면 약 4200만 명으로 우리나라 5100만 명보다 적다.


즉, 북유럽은 중개무역이나 물류, 다국적 기업의 유치를 통해 살아나가고 있고, 이에 영어는 기본적으로 해야 하는 말 그대로 생존을 위해 자연스레 익혀야 할 언어라는 것이다.


3. 자연스러운 영어 학습, 자연스러운 영어 사용!


앞서 언급했듯이, 우리나라 사람들의 영어 공부법은 골방에 가둬놓고 영어 잘 할 때까지 간식을 안 주거나, 문법과 단어를 모조리 외우리 전까지 연애 금지... 등의 방법이  동원될 수도 있겠지만 네덜란드는 그렇지 않다.


학습이 아닌, 자연스럽게 습득이 될 수 있도록 환경이 조성되어 있다.

예를 들어, 거의 모든 외화는 성우 더빙이 없고 자막으로 의미 전달이 대체되고, 어떤 경우는 자막조차 없는 경우도 많다. 더불어 TV광고에서도 제품명을 포함한 정보 전달 시 영어가 많이 사용되어지고 있다. (사실, 우리나라도 알게 모르게 영어는 많이 녹아져 있다.)


또한 대부분의 노래는 영어로 작사가 되는데, 이 이유를 현지 친구들에게 물어보니 '영어'가 더 세련되서...라고 말한다. 댄싱퀸으로 유명한 스웨덴의 '아바' 또한 영어로 거의 모든 노래를 작사한 것도 이 세련됨(?)을 살리는 것은 물론, 글로벌 시장을 타깃으로 한 북유럽 사람들 특유의 실용적 전략이 녹아 있음을 볼 수 있다.


또 하나, 만약 우리나라 사람들끼리 영어로 대화를 한다고 하면 매우 오글 거림을 느끼게 될 것이다. 나 또한 가끔 회의 중에 현지에 있는 한국 사람이나 다른 주재원과 영어로 대화를 하곤 하는데, 한국 사람끼리 하는 영어가 그렇게 고역일 수 없다... (어색해.... 정말..)


그런데, 네덜란드 사람들은 영어로 대화하는 것이 모국어처럼 매우 자연스럽고 서로 편해 보이기까지 한다.

앞서 이야기한 대로, 영어라는 것이 평가 도구가 아닌, 자연스럽게 체득된 것과 해야 하는 필요성에 의해 얻어진 것이므로.




이렇게, 네덜란드 사람들이 왜 영어를 잘 할까? 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았다.

사실, 네덜란드 사람들의 영어가 완벽한 것 (우리가 생각하는 미국/ 영국식 영어 기준으로 보면)은 아니다. 히딩크의 인터뷰를 보며 어떤 사람들은 'Broken English'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자연스럽게 체득화 되어 당당하고 자신 있게 표현되는 더치인들의 영어가 매우 좋고 멋지게 들린다. 그리고 의사소통 수준으로 보면 나는 '완벽한'이라는 말을 아끼고 싶지 않을 정도다.


가장 친한 동료에게 "대체 네덜란드 사람들은 왜 영어를 잘해?"라는 말에, 뾰족한 답을 못 준  그때 그 동료의 반응이 슬슬 이해가 되어 간다.


자신도 모르게, 자연스럽게 영어가 몸에 배인 그들에게 어쩌면 그 질문은 가장 어리석으면서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일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든다.


이렇게, 네덜란드에서 만난 영어는 무척이나 반가웠다.




스테르담 글쓰기 클래스

스테르담 인스타그램


[저서 모음]

'견디는 힘' (견디기는 역동적인 나의 의지!)

'직장내공' (나를 지키고 성장시키며 일하기!)

'오늘도 출근을 해냅니다' (생각보다 더 대단한 나!)

'아들에게 보내는 인생 편지' (이 땅의 모든 젊음에게!)

'진짜 네덜란드 이야기' (알지 못했던 네덜란드의 매력!)


매거진의 이전글 네덜란드가 최초인 것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