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 했던 것과, 예상 못한 것들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면, 시시콜콜한 것까지 궁금하게 된다.
그리고 자세히 보게 된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너도 그렇다"라는 말처럼.
마릴린 먼로가 이탈리아계 메이저리그 야구선수였던 조 디마지오와 결혼하여 처음으로 간 신혼여행이 한국과 일본이었다는 것은 삶에 전혀 도움이 안 되는 지식이지만, 그래도 몰랐던 것을 알게 되었다는 약간의 희열과 조금은 지식의 폭이 넓어졌다는 위안이 될 수 있다.
네덜란드가 최초인 것을 이야기하는데, 뭔 서론이 이렇게 길까?
바로 관심 가지고 보지 않으면 몰랐을 것들, 그리고 알아도 큰 도움은 안되지만 우리들 지식의 소소한 확장에 도움을 줄 수 있으니 잘 봐달란 이야기를 하고픈 거다.^^
1. 네덜란드, 세계 최초의 증권 거래소와 주식은 암스테르담으로부터
우리가 알고 있는 증권거래소의 전신은 바로 '동인도 회사' 주식으로부터 시작한다.
'동인도 회사'는 다시 세계 최초의 주식회사이며, 다국적 기업으로 평가받는다.
당시, 이 작은 네덜란드에서 띄운 배가 영국, 프랑스, 스페인 배를 다 합친 것보다 많았다는 것은 네덜란드 해상무역의 위상과 부를 상징한다.
먼 길을 떠나 많은 것을 되싣고 돌아와야 하는 사명을 위해 배는 폭풍우를 견디고 더 크게 만들어져야 했다.
금 64톤에 해당하는 이 배는 결국 많은 사람들의 소액투자로 충당되었고, 이 배가 진귀한 향료와 섬유, 도자기 등을 가득 싣고 암스테르담으로 돌아왔을 때 투자자들은 이익금을 나눈 배당금을 받곤 했다.
주식의 기원과 확립이었다.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고, 지금의 주식 시장과 다름없듯이 높아만 가는 이익률은 많은 사람의 투자를 불러모았고, 영원할 것 같았던 주가의 오름새는 처음 주식이 생긴 이후 86년이 지난 1688년 일대 혼란을 맞이하게 되면서 세계 최초로 자연스레 '주가 폭락'도 경험하게 된다.
당시 주식으로 사용되거나, 배당금으로 받은 것 중에는 돈 외에도 후추, 계피, 튤립 구근 등도 거래되었다는 사실. 당시 튤립 구근 중 비싼 것은 집 한 채 값 이상을 호가하기도 했다.
2. 네덜란드, 통절임계의 시조!
'통조림의 유래'를 찾아보면 위키백과 사전엔 1804년 니콜라스 아페르란 사람이 군대에 보다 신선한 음식을 공급하기 위해 자신의 경험을 살려 고안해냈다고 되어 있다.
어떻게 하면 음식을 보다 오래, 신선하게 보관할까에 대한 네덜란드 사람들의 방법은 이보다 419년이나 앞선 1358년이었다. 물론, 병이나 양철통에 넣는 것보다는 좀 더 큰 통을 사용했지만, '통절임'을 고안해내어 냉장고가 없는 당시에 획기적인 상품을 만들어낸 것이다.
당시 북해의 치열했던 상권은 청어잡이가 주력이었고, 1358년 빌렘 벤켈소어라는 어부가 청어의 이리를 제외한 내장을 단칼에 베어낼 수 있는 작은 칼을 만들어 소금에 절여 통에 보관하게 되면서 경쟁국가들을 단 한 번에 평정하고 부를 쌓게 된다.
선상에서 바로 염장된 청어는 1년간 보관이 가능했을 정도다.
3. 네덜란드, 동성결혼을 과감하게 법으로 허하다!
Same-sex unions를 처음 도입한 것은 1989년 덴마크였고, 파트너십 제도를 도입하면서 결혼 가까이까지 갔으나 끝내 덴마크는 법으로 그들의 결혼과 입양을 허용하지 않았다.
많은 논의와 투쟁이 오갔으나 아직까지 유럽 사회 마저도 동성 결혼에 대해 법적으로까지는 받아들이지 못했고, 12년이 지난 2001년 우리의 네덜란드가 드디어 '법적으로' 동성 결혼을 최초로 허용한 국가가 되었다.
네덜란드에서도 파트너 등록제는 1998년에 시행되었지만, 네덜란드 성소수자 인권 운동연합회에서 정부에 동성 결혼 허용을 지속적으로 요구, 2000년 법률의 틀이 토론되었고 하원 투표 109표를 얻고, 12월 상원에도 통과됨으로써 마침내 동성 결혼이 허용되었다.
개정된 부분은 "결혼은 이성의 혹은 동성의 두 사람에 의하여 이루어질 수 있다."였다.
이 법은 2001년 4월 1일부터 시행되었고, 바로 당일 4명의 커플이 네덜란드 시장 욥 코헨의 주례로 결혼식을 올렸다.
2001년부터 2011년까지의 통계를 보면, 14,813 쌍의 동성 커플이 결혼하였다.
(7,522쌍이 여성 커플, 7,291쌍이 남성 커플로 외외로 여성 커플이 조금 더 많다!)
같은 기간 이성 결혼은 761,010건으로 집계되어, 전체 결혼 중 동성 결혼의 비율은 약 2%대이고 이들 중 약 9%인 1,078쌍의 동성부부가 이혼했다고 한다.
P.S
게이 퍼레이드를 보거나 동성 결혼에 대해 논의할 땐 주로 남성 커플이 회자되는데, 실제로는 여성 커플이 좀 더 많다는 사실. 아무래도 보통(?) 사람에게는 여성 커플 보다는, 남성 커플이 좀 더 통상적이지 않다...라고 여겨지는 건 아닐까 하는 뜬금없는 생각.
4. 네덜란드, 과속 카메라의 유래가 되다
네덜란드에서 운전하는 것은 쉽기도 하면서 어렵기도 하다.
나중에 운전에 대해서 별도 포스팅을 하겠지만, 유유자적 달리는 교외와 암스테르담 시내의 복잡한 운전은 천지 차이기 때문이다.
더불어, 신호위반이나 과속에 대해서는 매우 엄격한 편이기 때문에 네덜란드에서 지내면서 과속/ 주차/ 신호 위반 등의 벌금을 받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비싸다.... 1회 벌금이 100유로 이상인 것은 부지기 수고, 필자는 신호위반 후 237유로의 벌금 고지서를 받았다!!! ㅜㅜ)
다시 주제로 돌아와서, 내 많은 벌금을 앗아간 과속카메라는 네덜란드 기술자 마우리서 하초니더 스라는 사람으로부터 유래한다.
최초로 과속 카메라를 고안해낸 사람답게, 1911년 생인 마우리서는 유럽 최초의 직업 자동차 선수였으며 그의 경력은 1953년 몬테카를로 랠리에서 포드 제피르를 단 3초 차이로 따돌리고 우승하면서 정점을 찍었다.
세계적으로 많은 사람들의 지갑을 털고 (물론 안전도 확보해주지만...^^) 있는 그의 발명품은 모퉁이를 도는 속도를 높이고 싶은 그의 욕구에서 기인했다. 최초의 속도 감지 카메라가 탄생한 순간이었다.
도로의 두 군데 압력을 감지하는 고무 띠를 가로 질러 놓는 방식은 후에 플래시 카메라와 결합되며 정확도를 점점 더 높여갔다.
마우리서는 자신의 카메라가 과속하는 운전자를 포착하는 데에도 쓸 수 있음을 깨닫고 1958년 "가초미터 BV"라는 회사를 설립했다고 한다. 1971년에는 고무 압력 띠 대신 레이저 빔을 도입하기도 했다.
세계 곳곳에 설치된 수 많은 과속 카메라 원천기술의 로열티를 챙겨 돈을 긁어 모으고 있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5. 네덜란드, 유럽 연합의 새 출발을 알리다!
마스트리흐트 조약.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EU (유럽 연합)이 발효된 조약이다.
암스테르담으로부터 동남쪽, 독일 국경과 맞닿은 이 도시는 이처럼 우리가 알고 있는 최초의 유럽 연합을 알리게 되었다. 1992년 2월 마스트리흐트에서 유럽 공동체들이 모여 가입국 서명을 한 후, 1993년 11월 1일부터 시행되었다.
이 조약은 유로화의 도입을 이끌고, 유럽연합의 3가지 중심 구조 (경제 및 사회 정책, 공동의 외교 및 안보, 사법과 국내문제)를 제안하여 지속적인 공동체의 시스템을 개발해 나아가고 있다.
이처럼, 네덜란드는 관심 있게 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들이 있다.
하지만, 하나 하나 알아갈수록 그 매력이 더해지게 된다.
앞으로 더 알아갈 것들이 많겠지만, 언젠간 떠나야 할 이 곳의 매력을 조금은 더 치열하게 알아봐야겠다.
지나간 것들은 모두 아름답게 기억될 수 있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