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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부채(負債)'다.

<삶이란 부조리극>

by 스테르담

무언가 마음이 불편하다.

영 개운하지가 않다. 일상에서 일어나는 타인과의 갈등은 그렇다 치고,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빚은 그리 생경한 것도 아니기에 잠시 그것들에 대한 생각은 내려놓자면 그리 불편할 것도 없을 텐데 말이다.


불편한 마음의 면면을 살펴보면, 어쩐지 '부채감'이란 말이 떠오른다.

무언가를 빚졌고, 누군가에게 돌려줘야 할 것이 있는데 그게 뭔지를 모르겠다.


우리의 '생명'과 '숨', 그러니까 '목숨'은 어디에서 왔을까.

때로 이것은 내 것이 아니란 생각이 든다. 왜 태어났는지를 모르기 때문이다. 어디에서 왔는지, 왜 태어났는지를 명징하게 아는 사람은 없다. 종교도, 과학도 모두 그저 각자의 의미와 이론을 부여할 뿐이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존재의 시작을 알지 못하는 우리에게 있어, '생명'은 곧 '부채' 그 자체인 것이다.


생명은 곧 죽음으로 반납하게 되어 있다.

일상에서 맞이하는 '행복'과 '불행'은, 삶의 '축복'이자 '형벌'이다.


0에서 1.

1에서 0.


어차피 0에서, 0으로 귀결될 것을.

우리는 대체 왜 살아야 하는 것일까.


삶의 얄궂은 부조리는, 우리로 하여금 삶의 의미를 다시 되짚게 만든다.

누구에게 무엇을 갚아야 하는지를 안다면, 어쩌면 삶은 덜 고달플지도 모른다.

그걸 모르기 때문에, 연유를 알 수 없고 그 어떤 의미의 의도를 따질 수 없기에 내일의 삶이 우리는 두려운 것이다.


그러나 때로, 불편한 마음을 우리를 움직이게 만든다.

부채로 인하여 앞으로 나아가는 삶의 메커니즘은 누군가의 설계다. 마음이 불편하기에 우리는 질문하고, 각자의 답을 찾아내며 살아간다. 정답이 없다는 걸 곧 깨닫게 되지만, 어차피 삶이 0에서 0이라면 무언가라도 세상에 남기거나, 반대로 무언가라도 안고 사라져야 할 것이 아닌가.


부조리가 주는 불편한 마음.

불편함의 근원인 부채감.

부채감으로 인한 요동.


인생이란 부채는 값아질 무엇이 아니다.

불편한 마음 그대로를 안고 살아가는 걸 인정해야 한다.


어차피 죽음으로 모든 빚을 청산하게 될 것이니.

숨 쉬는 한, 삶의 부조리를 그저 만끽하는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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