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르담 페르소나 글쓰기>
대개 모든 글쓰기의 시작은 일기로 시작한다.
지극히 사적이고, 누군가에게 공유하길 바라지 않는 '일기'라는 장르의 글은 독특한 특성을 가지고 있다. 이것이 에세이와 다른 점은 '메시지'보다는 '감정'에 더 치우쳐 있다는 것이다. 떠오르는 감정을 주체할 수 없어, 지극히 사적인 펜을 들게 만드는 것이 '일기' 그 자체이니까.
일기의 독자는 자신이다.
제2차 세계 대전 홀로코스트의 피해자인 안네 프랑크나 난중일기를 남긴 이순신 장군과 같이 역사적인(?) 일기는 예외겠지만, 오래전 쓴 일기를 펴 보는 건 아무래도 그 글을 쓴 자신일 가능성이 높다.
일기에서 더 나아가면 그것은 '글쓰기'가 된다.
글쓰기는 감정 외에도, 사색과 깨달음 그리고 자신 외의 독자를 고려하며 써 내려가는 일기와는 다른 장르다.
꾸준함이 모자라, 일기와는 거리가 저만치인 나는 갑자기 글을 쓰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꽤 많은 시간이 흐른 지금, 손톱이 자라듯 나도 모르는 새 수많은 글이 쌓여 있다. 때론, 글을 쓰기 위해 정보를 검색하다가 내가 쓴 글인지 모르고 서두를 읽은 적도 있을 정도다. 어디서 많이 봤던 글인데... 내 생각과 같은데...라는 반가움이 당황스러웠을 정도로.
내가 쓴 글을 읽는다는 건, 꽤 기분이 묘한 무엇이다.
과거의 나를 만나는 순간이며, 지금이 아닌 순간의 사색과 감정이 담긴 글엔 회피할 수 없는 낯섦이 있는데 나는 그것이 싫지 않고 오히려 지금의 나를 돌아보게 하는 명징한 빛이 된다.
반성.
사색.
성찰.
생각했던 그대로.
다짐했던 그대로.
실천하며 살고 있는가.
타인에겐 이러하자고 했던 것에 대해.
나는 이러하고 있는가.
타인에게 저러하지 말자고 했던 것에 대해.
나는 저러하지 않고 있는가.
내가 쓴 글을 다시 읽는다는 건, 참으로 큰 행운이다.
잊고 있던 지난날의 나를 만나고, 지금의 나를 재인식하는 기회가 되니 말이다.
자신의 글은 먼 훗날이 지나 꼭 다시 읽어 보길.
그러하기 위해선, 지금의 자신을 써 나아가길.
나이를 쌓는다고, 나라는 존재가 더 확실해지지 않는다는 걸 이미 알았다.
글을 쌓으면, 쌓인 글을 마주하면.
나는 분명, 조금은 더 선명해진다는 걸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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