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르담 페르소나 글쓰기>
어느 운동을 시작할 때나, 공통적으로 듣는 말이 있다.
"힘을 좀 빼세요."
처음엔, 언뜻 이해가 가지 않았다.
공을 저 멀리 보내야 하는데, 상대방이 받지 못하게 스매시를 날려야 하는데, 타자가 치지 못하게 세게 던져야 하는데, 상대방을 압도하려면 그를 넘길 힘이 필요한데...
그러다 잔뜩 들어간 힘으로 헛스윙을 하고, 상대방에게 전한 힘이 오히려 내가 넘어가게 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맞이하거나... 나보다 더 늦게 무언가를 시작한 초보자의 잔뜩 힘이 들어간 첫 움직임을 보며 결국 내 입에서도, '힘을 좀 빼지...'란 말을 읊조리게 된다.
골프든, 탁구든, 야구든, 수영이든, 유도든, 태권도든.
프로들의 모습을 보면, 어깨가 경직되도록 힘을 주고 플레이하는 사람은 그 어느 누구도 없다. 부드럽게 치는 듯 하지만 공은 저 멀리 날아가고, 크지 않은 몸동작이지만 물 위를 미끄러지듯 앞으로 나아간다. 힘을 들여 상대를 제압하기보단 상대의 힘을 활용하여 엎어뜨리고, 경직된 힘이 아닌 회전력을 이용해 상대에게 더 큰 타격을 안긴다.
이 모든 건 '유연성'이란 말로 요약될 수 있을 것이다.
힘은 유연성을 만날 때 수 십, 수백 배로 확대된다. 반대로 말해, 유연성 없는 힘은 풋내기의 발차기와 같다. 힘으로만 모든 걸 해결하려는 사람은 오래가지 못한다. 운동 후에도, 근육통과 뻐근함에 지쳐 떨어질 것이다.
삶도 마찬가지다.
삶은 스포츠와도 같다. 대개는, 마라톤에 비유된다. 단거리가 아니라 장거리 달리기의 개념에 부합하기 때문이다. 힘을 주어 전속력을 달리는 삶은 오래가지 못한다. 힘으로 상대의 달리기를 방해하는 것에도 한계가 있다.
스포츠에서도, 삶에서도.
힘을 빼는 것은 쉽지 않다. 그 이유는 '욕심'때문이다. 세게 치면 공이 더 멀리 날아갈 것이라는 생각과, 힘주어 살아야 무언가를 이룰 수 있다는 생각은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앞서 이야기한 대로 힘으로 하는 운동과, 힘주어 사는 삶의 결과를 우리 모두는 이미 알고 있다. 젊은이의 객기와 패기도, 어른이 볼 땐 유연성이 결여된 힘일 뿐이다.
나는 삶이 고단할 때, 혹여라도 삶에 잔뜩 힘을 주며 살고 있지는 않은지 스스로를 돌아본다.
나를 고단하게 만드는 건, 타인과 사회의 억압도 있지만 대개는 스스로에게로부터 온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글쓰기를 통해서다. 글을 쓰면, 내가 얼마나 힘을 주어 살고 있는 지를 알게 된다. 동시에, 글을 쓰며 나는 삶의 힘을 빼는 법을 알게 되었다. 쓰는 행위 자체는 매우 정적이다. 가만히 앉아 생각과 마음을 내어 놓아야 한다. 힘을 주지 않아도 되고, 근육의 힘을 풀어야 생각과 마음도 유연해진다.
글쓰기는 삶의 힘을 빼는 아주 좋은 수단이다.
힘을 빼면 유연성은 배가 된다. 유연함을 바탕으로 한 힘은, 힘을 써야 할 때의 시기를 잘 가늠하게 되고 유연함을 업은 힘의 괴력은 생각보다 크다.
힘주어 살지 않아도 된다.
힘주어야 할 때와, 그러하지 않아야 할 때를 구분하는 것이 유연함의 핵심이다.
우리는 이러한 일련의 삶의 방식을, '지혜'라 말한다.
보다 지혜로운 삶은 유연함에서 오고, 유연함을 발휘할 수 있는 생각과 마음의 힘은 글쓰기로부터 발현된다.
그 모든 수혜를 받는 존재는, 글을 쓰는 나 자신이 될 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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