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르담 페르소나 글쓰기>
도파민이 넘쳐나는 시대다.
대개의 도파민은 소비로 연결된다. 도파민을 야기하는 주체가 바로 기업이나 인플루언서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목적과 목표는 돈을 버는 것이다. '돈'은 '가치'를 표방한다. 그러나 가치보다 돈에 열중하게 되는 일이 대다수이며, 돈에 잠식된 생각은 가치를 외면한다. 이는 생산자와 공급자를 넘어, 소비자에게도 해당되는 말이다. 즉, '가치를 위한 소비'가 아니라, '소비를 위한 소비'로 변질되는 것이다. 필요하지도 않은데 구매한 물건들이 다들 몇 개씩은 있을 것이다. 그때의 순간을 돌아보면, 아마도 우리는 누군가에게 못된 말을 들었거나, 직장에서 큰 스트레스를 받았을 가능성이 높다.
도파민은 보상 회로와 흥분, 보람을 느끼는 기분 좋은 호르몬이기도 하지만, 이것에 중독되거나 무뎌지면 삶이 고단해진다.
이미 우리는 너무나도 많은 소비의 유혹과, 점점 더 강해지는 자극들의 향연 속에 숨 쉬고 있다. 오늘이 따분한 건 어제의 소비때문일는지 모르고, 따분함을 달래기 위해 소비하면 우리에게 다가오는 나중의 하루는 더 많은 걸 사야 연명될는지도 모른다.
넘쳐나는 정보.
주체할 수 없는 영상.
한번 빠지만 무섭게 시간을 빼앗는 기억도 나지 않는 콘텐츠들.
나는 왜 이리 남의 것들을 소비하고 있는가.
기쁨과 배움이 있다는 말로 자기 합리화해 보지만, 돌아서면 잊어버리는 내용과 합리화라고 하기엔 이미 지나가버린 몇 시간의 시간은, 그럴 바에 가치 있는 다른 일들, 예를 들어 독서와 같은 것으로 대체했어야 했다는 아쉬움으로 귀결된다.
이러한 때, 나는 내가 쓴 글을 읽는다.
다른 책을 읽을 여력이 없고, 이미 조금 남아 있던 도파민마저 짧은 동영상과 번잡한 뉴스로 소진했을 때. 그나마 내게 친숙한 건 내가 쓴, 나의 글이다.
때로 나의 글은, 매우 낯설다.
내가 쓴 것이 맞나 싶을 정도로. 그때의 나는 그런 생각을 했구나, 저때의 나는 이런 느낌을 가졌었구나. 낯선 나를 마주하며, 나는 스스로에게 호기심을 갖는다. 질문을 던지고, 던진 질문은 또 다른 글의 소재가 되며, 소재는 결국 글이라는 생산물로 양산된다.
나는 내 글의 첫 독자다.
또한, 마지막 독자이기도 하다. 남이 더 이상 읽어주지 않는 글도, 스스로 다시 보면 꽤나 흥미롭다. 첫 독자, 마지막 독자. 이 얼마나 감사하고 즐거운 일인가. 내가 쓴 글에 대한 예우이기도 하고, 과거의 나를 새롭게 발견하여 현재의 나를 다독이고 더불어 미래의 나를 그려볼 수 있는 아주 바람직한 자기 위안.
그러는 사이 도파민은 제 자리를 찾아가고.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균형 속에서 치유가 이어진다.
자신이 쓴 글은 결코 헛되지 않다.
그 누가 읽지 않더라도, 내가 읽으면 글의 가치는 매김을 할 수 없다.
늘, 언제나 답은 '나'여야 한다.
내 안에, 내가 바라는 모든 답과 치유의 방법이 있다는 걸, 내가 쓴 글이 나에게 알려 주고 있다.
[종합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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