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르담 페르소나 글쓰기>
꺼지지 않는 전구는 언젠가 그 수명을 다한다.
우리는 필요 없을 때, 전등의 스위치를 끈다. 스위치를 끈다는 건 전기를 단절하는 것이다. 단절은 전구의 쉼이다. 전구의 쉼은 다음의 켜짐을 기약한다. 그러니까, '단절'은 무언가 부정적인 단어가 아니라 다음을 기약하기 위한 '회복' 또는 '휴식'이란 긍정적 의미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간혹 내 머리와 마음에 그 어떠한 스위치가 있다고 느낀다.
이건 내가 생객해낸 것이 아니라, 그 어떠한... 나를 지키려는 자기 방어 기제가 나에게 선사한 것이 아닐까.. 란 생각이 든다. 분명 그러할 것이다. 필요할 땐, 그 스위치를 올리거나 내리라고.
개인은 사회를 거부할 수 없다.
성장과 존속을 위해선 사회와 연결되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존재론적 고찰'에 이르면 사회와의 연결은 필요충분조건이 아니다. 숨 쉬고 있는 것만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존재할 수 있다고 한다면 굳이 타인과의 교류가 필요하진 않기 때문이다. 사실, '사회'란 건 타인과 같은 사람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수많은 정보와 해야 하는 일, 먹고사니즘의 복합적인 폭력적 이데올로기가 오늘도 우리를 사회라는 복잡 다난한 수렁으로 밀어붙이고 있는 것이며 무엇보다 중요한 건, 이로 인하여 우리 자신이라는 '자아'와 '존재'의 색을 옅게 한다는 것이다.
생각해 보자.
자신에 대해 고찰한 시간. 짧은 동영상, 쇼핑, 소비, 알고리즘에 이끌린 시간. 이 중, 어떠한 시간에 더 많은 공을 들였는가. 단언컨대, 자의든 타의든 후자에 집중하고 집착한 시간이 더 많을 것이다. 그대의 잘못이 아니다. 세상과 사회라는 메커니즘은 그렇게 개인을 끌어들이고, 소비하게 만든다. 그러다 보면 소모되는 건 나 자신이라는 걸 잊게 만들면서. 그저 지갑을 열라고 말하면서.
자, 이러할 땐 잠시 세상과 연결된 스위치를 떠올려 그것을 내리자.
세상과 (잠시라도) 단절해야 한다. 사회 부적응자가 되라는 말이 아니다. 더 잘 적응하기 위해, 자신을 더 잘 돌아보라는 것이다.
다시, '단절'은 '휴식'과 '회복'을 위해 꼭 필요한 것이다.
우리네 삶이라는 전구는 언젠가 그 빛을 잃는다. 전구에도, 우리 삶에도 수명이 있다. 다만, 이것을 어떻게 잘 조절하느냐에 따라 의미 있는 밝기는 더 길게 지속될 수 있다.
환해야 할 때 환하고.
어두워야 할 때 어둡고.
계속해야 할 때와.
단절할 때를 구분하여 실행하는 것.
글쓰기를 통해 내가 얻은 통찰은 바로 이것이며.
세상과 단절할 때에도 가장 좋은 수단과 방법은 바로 글쓰기라는 걸.
생각하고 쓰면서, 나는 늘 깨닫고 또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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