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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 되지 않을 삶은 없다.

<스테르담 페르소나 글쓰기>

by 스테르담

언젠가부터 쓰고 있는 나를 발견한 건, 다름 아닌 어느 삶의 한가운데에서였다.

내가 글을 쓰다니. 그것도 매일을. 책을 내고 강연을 하고, 사람들과 소통한다니. 내 생각과 삶이 콘텐츠가 되고, 누군가에게 영감을 준다는 건 자기 효용감을 한껏 올릴 수 있는 아주 좋은 현상이며 그로 인해 조금은 세상에 도움과 보탬이 된다는 생각에 마음에 깃든 무거운 고단함이라는 중력을 조금은 내려놓을 수 있었다.


사람들은 묻는다.

어떻게 그렇게 꾸준히 쓰냐고. 소재를 어떻게 끊임없이 내어 놓느냐고. 나는 이것을 '삶'과 연관한다. 좋든, 싫든. 우리는 꾸역 꾸역이라도 살고 있지 않은가. 또한 살기 위해 숨 쉬고 있지 않은가. 때론 삶이 너무 고단해, 숨 쉬고 있다는 것조차 인식하지 못하는 때가 있지만, 잊고 있던 걸 떠올리며 크게 한숨 들이쉬고 내 쉬면, 살아있다는 아니 그보다 존재하고 있다는 안도감에 하루를 더 잘 살아내자고 마음먹는다. 내 글쓰기의 서막이, 영혼의 숨을 쉬고 싶었고 또 살고 싶었다는 발버둥의 결과라는 걸 돌이켜보면, 그렇다.


어떻게든 살아가고 있는 것처럼.

어떻게든 써내고 있는 것이다.


삶이 지속되니 쓰는 것이고.

쓰다 보니 삶에 의미가 생긴다.


이러한 과정에서 내가 얻은 스스로의 명언은 다음과 같다.


"글이 되지 않을 삶은 없다."


글엔 삶이 흥건히 묻어 있다.

삶이 묻지 않은 글엔 영혼이 없고, 진실성이 없다. 피상적으로, 표상적으로 써 내려간 글은 어느 논객의 고상하면서도 하찮은 타령과 같다. 글은 쥐어짜는 게 아니라, 내어 놓는 것이다. 무엇을 내어 놓는가. 생각과 마음. 경험과 감정. 그것을 통틀어 정리하면, 곧 '삶'이란 말과 직결된다.


내가 쓴 지난 글을 하나하나 읽어보니.

과연 그곳엔 삶이 흥건했다. 그렇게 살았었구나, 지금 이렇게 사는 것이 그때의 선택과 생각 때문이었구나. 그렇다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무엇을 해야 할까.


글쓰기의 가장 큰 장점은, 스스로에게 질문한다는 것이다.

각박한 세상, 짧은 동영상과 알고리즘이 도파민을 쥐어짜는 시대에 스스로에게 질문하기란 그리 쉽지가 않다.


질문은 곧 소재가 되고.

소재는 곧 글이 된다. 좋은 소재가 있다면, 쓰지 않고는 배길 도리가 없다.


오늘, 나는 당신의 삶을 돌아보길 바란다.

질문하길 바란다. 스스로를 돌아보길 바란다.


그리고.

마침내.

쓰길 바란다.


무엇을?

당신의 삶을.

우리네 인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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