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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가 단기적으로 끝나는 이유

<스테르담 페르소나 글쓰기>

by 스테르담

'글쓰기'는 '결심'과 함께 시작된다.

대개 그 결심은 마음이 어수선한 데에서 꽃핀다. 우리가 하는 모든 행동과 실행은 자칫 이성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감정이 요동한 데에서 온다. 아무리 다이어리에 글쓰기를 하자고 백 번 넘게 적어도, 결국 글쓰기를 위해 자판을 두드리게 되는 건 마음에 상처를 입었을 때니까.


나의 글쓰기도 그렇게 시작되었다.

번아웃. 슬럼프보다 더 고약한 이놈이 나에게 준 선물이다. 병 주고 약 주고. 자기 계발과 성장을 해야 한다는 무의식적 강박을 가지고는 있었으나, 그 어떤 것도 실행하지 않고 역시 나는 의지력 하나 없는 사람이라고 자책하기를 반복할 때, 번아웃은 존재의 이유를 묻게 했고 나는 (마음과 영혼의) 숨을 쉬고 싶어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이다.


솔직히, 나의 글쓰기는 단기적으로 끝날 줄 알았다.

무엇하나 꾸준히 이룬 것이 없고, 충동적이고 감정적인 성격이기에 나 스스로도 자신에 대한 믿음이 없었기 때문이다. 여전히 나는 그렇다. 충동적이고, 쉽게 흔들리고, 꽤 꾸준하지 않다. 그러나 글쓰기만큼은 놓지 않고 있다.


글쓰기라는 결심은 단기적으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

앞서 이야기한 대로, 감정에서 시작되었기에 감정이 바뀌면 결심과 실천은 수그러든다. 상처받아 울분을 토하며 글을 쓰다가, 삶이 좀 괜찮아지거나 지루해지면 글쓰기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글쓰기도 도파민을 생성한다.

자신이 무언가를 써냈다는 성취. 누군가가 댓글을 달아 칭찬해 주는 것에 대한 기쁨. 무언가 꾸준히 하고 있다는 자기 효용감. 그러나 글쓰기는 매우 '불편한 선택'이고 정말이지 '지루한 과정'이다. 세상에 보고 즐기고 할 것들이 얼마나 많은데, 책상 앞에 앉아 떠오르지도 않는 소재와 씨름하고 있는가. 도파민의 속도가 확연히 느리다. 아니, 아예 도파민을 느끼지 못할 때도 허다하다.


그러하니 글쓰기는 길게 이어지지 않는다.

배고픔을 허하지 않고, 지루함을 죄악으로 여기는 시대.


일상은 지루하다.

재밌게 편집된 예고편이 아니라, 끊기지 않고 찍어내는 롱테이크샷이다. 간혹 터지는 도파민이 부족해, 돈을 주거나 시간을 소모하면서까지 도파민에 중독되어 있다. 글쓰기와 같은 지루함엔 관심을 가질 여력이 없다. 그러다 자신을 잃고, 그러다 무언가를 다시 결심하지만 이러한 악순환은 계속된다.


글쓰기는 일상을 닮았다.

일상도 글쓰기를 닮았다.


지루하지만 소중하고.

소중하면서 꾸준하다.


글쓰기를 이어가려는 의지는, 결국 일상을 잘 살아내야겠다는 다짐과 같다.

마음은 언제나 늘 상처받고. 각박한 세상에 나를 끝까지 지켜낼 존재는 나 자신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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