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르담 페르소나 글쓰기>
책 두 장 넘기는 건 너무나 어려운데, 짧은 동영상 두 시간 보는 건 일도 아닌 세상이 되었다.
내가 만든 게 아니지만, 나의 소비와 소모로 그것들은 돌아가고, 그것들이 만들어 놓은 세상에 숨 쉬는 우리는 영문도 모르고 오늘도 지친 몸을 핑계로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
문제는 '집중력'이다.
세계 곳곳 대학에서 진행한 다양한 연구에 따르면, 2004년 평균 2분 30초였던 인간의 집중 지속 시간은 최근 들어 47초로 추락했다. 또 다른 기준으로 진행한 실험에선, 인간의 집중력이 금붕어의 9초보다 짧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 그런데, 정말 우리는 단 몇 초간이라도 집중할 수 있을까. 단 몇 초도 길어 보인다. 우리 '뇌'는 점점 '기다리는 법'을 잊고 있다.
우리가 톺아 보아야 할 것이 있다.
집중력보다 더 문제인 건 무엇인가. 그러니까, 본질은 '집중력'은 왜 필요하고, 또 무엇을 위해 추구해야 하는 가이다. 우리는 때로 본질과 수단을 혼동하곤 한다. 즉, '집중력'은 '수단'이다. 그렇다면 '본질'은 무엇일까.
본질은 '자아'다.
집중하는 시간 속에 내가 있다. 반대로 생각해 보면 쉽다. 숏폼을 보는 동안 '자아'를 절실히, 진하게 느낀 적이 있는가. 숏폼과 알고리즘의 끝엔 '소비'와 '결제창'이 있다. 기업이 소비자의 지갑을 열게 하려면, 생각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 필요 없는 물건이나 서비스를 사게 하려면 이성이 개입되어선 안된다. 무언가에 중독시키려면 자아를 잊게 해야 한다. 이것이 가장 강력한 마케팅이다.
'자아'가 본질이고, 우리 스스로를 자각하고 인식하고 제대로 존재하기 위해 우리는 '집중력'이 필요하다.
그래야 올바르고 강하게 생존할 수 있고, 우리가 추구하는 것들을 하나 둘 이루어 나갈 수 있다. 시간은 저만치 흘러갔는데, 이룬 것이 하나도 없다는 허탈감이 든다면 그것은 시간을 허비한 대가이며, 더 나아가 자아를 돌보지 않고 그것에 집중하지 않은 결과다.
뇌를 재구성하는 회복 훈련은 고로 나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그중, '글쓰기'는 순간의 도파민으로 범벅된 지금의 우리 삶을 점차 나아지게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수단이다. 도파민을 적정하게 분비하여 만족감을 지속하고, '안정'과 '사고'를 활성화하는 알파파와 감마파를 양산한다. 글쓰기는 최소 10분 이상, 내 경험에 비추어 보면 30분 이상 몰입을 해야 한다. (간혹, 글쓰기가 절박할 땐, 하루 종일 쓰기도 한다.) 47초와 비교하면 얼마나 오랜 시간을 집중할 수 있는지 알 것이다. 성인에게도 ADHD 위험이 증가하는 요즘. 글쓰기는 인지 저하를 지연하고, 창의성을 증진시킨다고 여러 연구에서 밝혀내고 있다.
돌아보면, 언제나 정답은 단순하고 당연한 것에 있다.
'글쓰기'와 '독서'와 같은 정적인 활동이, 얼마나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지를. 그러나 '알고 있는 것'과 '행하는 것'은 다르다. 이 괴리감은 평생 우리를 따라다닐 것이고, 얼마나 이 괴리를 줄이느냐에 따라 우리네 삶의 질은 결정된다.
숏폼의 천적은 글쓰기다.
글쓰기의 천적 또한 숏폼이다.
또한, 소비와 소모 그리고 알고리즘이란 천적도 있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나 자신'을 어떻게 지켜내느냐 하는 것이다.
나를 지키기 위해,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지는 말하지 않아도 잘 알 것이다.
늘.
불편한 선택은 나를 돌아보게 한다.
글쓰기는 불편하다.
그 불편함을 선택한 오늘이 많이 달라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