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케스트라의 지휘자가 되어보자
지휘자는 작곡가의 뜻을 무대 위로 끌어올려, 단원들을 통해 좌중에게 화합된 소리로 그것을 전달하는 사람이다. 지휘자는 그 단원들에게 사전에 방향과 비전, 그리고 자신의 감정에 대해 충분한 설명을 한다. 그들이 없으면 안 된다. 지휘자가 각자의 악기를 연주할 수 없을뿐더러, 그래서도 안된다.
이를 업무에 반영하여 나를 오케스트라의 지휘자라고 생각해보자. 나에게 주어진 업무가 있다. 직장에서는 나 혼자 알파와 오메가를 모두 수행하고 책임지는 일은 거의 없다. 모든 것이 협업이다. 그 안에 나에게 주어진 일이 있을 뿐이다. 급하다고 다른 부서의 일을 내가 대신할 수 없다. 그래서도 안된다.
지위가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그 책임은 커지지만 실무는 줄어든다. 반대로 지위가 낮으면 낮을수록 책임은 크지 않지만 실무는 늘어난다. '협업'은 '책임'과 '실무'를 망라한다. 즉, 직장인의 업무가 경중의 차이는 있더라도, '책임'과 '실무'를 모두 아우른다는 말이다. '협업' 안에서 말이다. 시스템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누구도 거기서 자유로울 수 없다. 오케스트라의 지휘자가 되어야 하는 이유다.
나는 사원인데, 대리인데 어떻게 지휘자가 되라는 말인가?라는 질문이 벌써부터 들린다. 물론, 지휘자는 오케스트라의 우두머리라는 인식이 있기 때문에 단적인 비유를 하면, 지휘자는 리더나 상사에 좀 더 걸맞은 비유일지 모른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협업'이라는 직장 업무를 상기해본다면 어느 정도 설명이 될 것이다. 지휘자가 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지시를 내려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말 그대로 리더나 상사가 해야 하는 일이다. 내가 말하는 '지휘자'는 업무의 중심이 되어 유관부서나 조력자들을 '수렴'해야 한다는 의미에서 가져다 쓴 말이다.
그렇다면 '수렴적으로 일한다'라는 말이 뭘까? 일단 그것을 위해서는 나를 중심으로 봐야 한다. 내가 사원이라서, 대리라서 누구에게 지시할 사람이 없다고 중심이 되지 못한다는 뜻은 아니다. 속된 말로 '나부랭이'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은 잠시 접어두자. 나의 일이 하찮든 그렇지 않든 간에, 일의 중심에 나를 두면 수렴해야 할 대상들이 보인다. 판을 그릴 수 있다는 말이다. 즉, 지시받은 일에 대한 수동적 자세를 탈피하여, 적극적인 이미지를 형성할 수 있고 더불어 실제로 일도 효율적으로 진행된다.
이처럼 업무를 바라봐야 하는 이유는 아래와 같다.
회사는 시스템으로 돌아간다.
각 부서와 담당자와의 협업은 필수다.
급하다고, 어리다고 타 부서의 일을 대신 해선 안된다. 그럴 수도 없다.
혼자서 '모든 일'을 진행하고 책임질 수 없다. (그런 업무도 별로 존재하지 않는다.)
더불어, 혼자 해결하려고 끙끙 앓다가 골로 갈 수도 있고, 작거나 큰 사고를 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하나의 업무 지시가 우리 젊음들에게 떨어졌다고 하자. 앞서 언급한 것처럼 '나'를 중심으로 두고 보자. 그리고 '업무'를 파악해보자. 이 일은 나 혼자 해결할 수 있는 일인가? 그렇다면 죽이 되든 밥이 되는 혼자 해보면 된다. 모르면 선배에게 물어가면서.
그렇지 않은 경우라면, 어떤 부서로부터 도움을 받아야 하는지, 담당자는 누구인지를 파악해야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 하나.
우리 젊음들은 회사 내 각 부서의 역할과
KPI (Key Performance Indicator)를 사전에, 미리 파악해두어야 한다.
나를 '중심'으로 두기 위한 첫 번째 과제다. 저 부서는 왜 존재하는지, 어떤 일을 주로 하는지, 내가 어떻게 하면 원하는 것을 받아낼 수 있을지, 담당자 성향은 어떤지를 파악해야 한다. 내가 '중심'이 되었을 때 일을 진행시키기 위한 방편이기 때문이다. 회사 내 부서는 저마다의 존재 목적이 있다. 그 존재의 목적을 적절히 활용해야 한다. 내가 주니어이고, 사원이라고 해도 나의 부탁을 들어줄 수밖에 없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사전 파악이 중요하다. 그래야 판을 짜고 중심이 되어 여기저기 요청을 하고 원하는 바를 얻을 수 있다. 일이 진행된다.
간혹, 후배들의 어떤 업무에 대한 요청 이메일을 받다 보면, 확연히 느껴진다. 그 친구가 '중심'이 되어서 일을 하는지 아닌지를. '중심'에 있는 친구의 요청은, 큰 판을 보고 필요한 것들에 대해 적재적소의 사람들에게 간결하게 요청한다. 메일을 읽어보면 그 친구가 판을 읽는 역량이 보인다. 그리고 도와줄 수밖에 없게 된다. 우리 부서가 왜 존재하고,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알고 요청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은 친구의 예는 길게 들 필요가 없을 것이다. 가끔은 어이없는 요청을 해서, 지원에 대한 본질적 논의보다는 R&R에 대한 Argue를 양산하는 경우다.
주의해야 할 점은 물론 있다.
각 부서의 존재 목적과 KPI를 적극 활용하되,
'공'을 던진다는 느낌을 주면 안 된다.
더불어, '활용'과 '이용'의 경계를 잘 구분해야 한다.
유관부서나 담당자에게 업무 요청을 할 수는 있지만, 자칫 이러한 것들이 '공'던지기 식으로 오해가 발생할 경우가 있다. "이 일은 그 부서 일이니, 기한 내에 꼭 해주세요!"는, 틀린 말은 아니지만 듣는 이로 하여금 그리 도와주고 싶은 류의 것이 아니다. 그리고 나의 진행 상황과 향후 계획이 빠져 있다면 더더욱 그렇다. 받는 사람 입장에서는 '이용'당한다는 느낌이 들 수도 있다. 한마디로 기분은 나쁘고, 도와주기는 싫게 된다. 사람이 하는 일이다. 갑자기, 감정에 호소하는 것으로 이야기가 흘러 당황스러울지 모르지만, 이것은 회사 생활에서 정말 중요한 일이다. 설명은 이전 글로 대체한다.
(참고 글: "감정이 아닌, 감성으로 일하기")
이러한 요청은 주로 다수의 수신자들을 넣고, 공개적으로 보내는 경우가 많으니 예의를 지키고 감성을 건드려, 모든 사람들이 수긍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가장 좋은 방법은 이성과 감성을 아우르는 방법이다. 상대방이 해야 하는 업무와 범위는 명확하게, 그리고 기분 좋게. (좋게 까지는 아니라도, 적어도 상하지는 않게 보내야 하는 것이 중요하다.)
나는 영업/ 마케터다. 문제가 터졌다. 내가 담당하는 제품에 품질 문제가 발생했다. 제품은 이미 거래선의 창고에 가있다.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감정이 앞설 것이다. 내가 잘못한 게 아닌데, 모든 결과는 내가 뒤집어쓰게 생겼다. 연신 미안하다고 말하는 유관부서에게 소리를 지르려다 참았다. 감정을 누르고 이성적으로 생각해본다. 감성적으로 생각해본다. 여기서 소리 질러 봤자 나만 손해다. 될 일도 안될 것이다.
침착하게 판을 들여다본다. 이 일을 해결하기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 그리고 해야 하는 일. 어느 부서, 누구에게 요청을 해야 할까. 해결의 시작과 끝을 스스로 되짚어 본다. 일종의 시나리오다. 제품은 이미 거래선에 나가 있으니, 공급을 담당하는 부서에 우선적으로 소비자에게 판매가 되지 않도록 문제의 제품 출하를 막아야 한다. 더불어 제조와 품질 부서에 재작업이나 교환 등의 여부를 파악한다. 서비스 부서에는 이미 혹시라도 팔린 제품에 대한 조치가 이루어져야 하니 현 상황을 즉시 알려 대응할 수 있게 한다. 그리고 일련의 흐름에 맞게 요청을 한다.
@공급 부서: 당장 거래선에 연락하여 소비자로의 출하를 막아줄 것. 재작업 및 교환에 대한 안내를 곧 드릴 테니 잠시만 대기해 달라고 전해줄 것.
@제조 및 품질: 현 품질 문제의 원인은 무엇인지. 수준은 어떠한지. 재작업을 할 수 있는 건지. 아니면 아예 폐기하고 새로운 제품으로 바꾸어줘야 하는지에 대한 결정 요청 및 해결을 위한 지원 범위 (인력/ 비용) 파악
@서비스: 현 상황을 즉시 알리고, 거래선에 즉각 출동하여 팔린 제품이 있는지, 있다면 몇 대나 어디로 나갔는지 파악하여 고객의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해 연락 및 선조치 요청
@나는 거래선으로 당장 달려가 사과를 하고, 재작업이든 교환이든 일이 해결될 수 있도록 안팎으로 일을 수시로 끝까지 챙긴다.
요청을 할 때는, 각 부서의 R&R을 명확히 하여 Top management를 참조에 넣되 각 부서가 해야 하는 경계 내의 일을 요청. (만약, 그 이상을 요구해야 한다면 사전에 전화 및 개인적 접촉을 통해 협의를 해야 함. 그렇지 않을 경우 문제의 해결을 위한 논의보다는, 업무 범위에 대한 논쟁으로 변질됨.) 더불어, 아무리 잘못의 책임이 제조/ 품질 부서에 있다고 하더라도, 메일의 논조는 "책임져라!"가 아니라, 상황이 이러하니 "도와주세요!"가 되어야 한다. 사람인지라 잘못을 들춰내고 공격하면, 방어적으로 모드가 바뀌어 될 일도 안 되는 경우가 많다.
다시 정리하면, 나를 '중심'에 둔다. 판을 읽는다. 업무의 스토리 라인을 짠다. 그리고 감성과 이성의 균형 잡힌 요청을 한다. 그것을 벗어나는 것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나, 전화 등을 통해 사전 협의한다. 그리고 책임지라는 식이나, 내가 할 일을 미룬다는 인상을 절대 주어서는 안 된다. 관련된 모든 부서와 사람들을 '수렴' 한다.
콘서트가 시작되었다. 지휘자가 '중심'에 선다. 오늘의 연주에 대한 흐름을 머릿속에 되새긴다. 감정은 지나치지 말아야 하고, 적재적소에 각각의 악기가 최상의 연주를 할 수 있도록 이끈다. 내가 답답하다고 지휘하다 말고 내려가 바이올린을 켜거나, 첼로를 연주할 순 없다. 그들을 감성과 이성으로 잘 이끌어야 한다. 활용하며 받들어야 한다.
우리 젊음이 어느 지위에 있든 간에, 언제나 늘 업무의 '중심'에 있는 오케스트라의 지휘자가 되어보자. 즉, 수렴을 해보자. 나와 우리 젊음들의 건승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