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르담 심리 에세이>
단어 자체로도 피하고 싶은 것들이 있다.
'죽음', '슬픔' 그리고 '불행'.
그중에서 나는 '불행'이란 말에 좀 더 민감하다.
불행하니 슬프고, 슬프니 죽는 수순으로 생각해 보면. 분명 '불행'은 '만악의 근원'일지 모른다. 사람은 왜 긍정적이어야 하는가. 아니, 왜 행복해야 하는가. 나는 오히려 행복의 당위성에 대해 의문을 품는다. 불행하고 싶진 않지만, 그렇다고 매 순간을 행복해야 한다는 것에도 고개를 갸우뚱한다.
매 순간 행복하려면, 그 얼마나 피곤할까.
신경학적 의미에서 행복은 호르몬의 향연이다. 도파민, 세로토닌, 옥시토신, 엔도르핀이 대표적인 행복 호르몬들이다. 보상, 동기부여, 전반적인 평온함과 안정감, 친밀감과 신뢰 그리고 천연 진통제 역할까지.
웃어서 행복한 것인가.
행복하여 웃는 것인가.
행복하여 호르몬이 나오는 것인가.
호르몬이 나와 행복한 것인가.
규명할 수 없는 것은 잠시 잊기로 하자.
중요한 건, '불행'이란 것이 어디에서 촉발하는 것인지다.
삶은 참 역설적이다.
나는 이것에 동조하고 싶진 않지만, 역설을 파고들 때 꽤 많은 깨달음과 삶의 진리가 터져 나오곤 한다.
그러니까, 내가 불행하다 느끼는 때는 언제인가.
바로, 행복해야 한다는 강박과 함께다. 남들보다 행복하지 않아 보인다는 비교 심리에서다. 행운이 따르지 않으면 불행하다 여기는 이분법적 사고에 기인한다. 불행의 촉발이 행복으로부터 라니. 역설 고놈 참...
'생겨 난다'는 것은 분명, '근거'가 있다는 말이다.
새싹이 피었다면, 어디에서 왔을지 모르는 씨앗 하나가 '근거'인 셈이다. '행복'이 피어났다면, '불행'이 피어났다면. 내 마음은 텃밭이고, 그 둘의 근거는 '씨앗'이다.
'행복'과 '불행'은 공존한다.
'유(有) 무(無) 상생'의 의미와 일맥상통한다. 어느 한 가지만을 가지려 할 때, 반대편의 무언가는 어김없이 그 모습을 드러낸다.
불행의 촉발.
잘 생각해 보자. 너무 행복하려 애쓰다 보면, 오히려 더 불안해짐을 이미 경험을 통해 알고 있지 않은가. 행복에 대한 강박은 버려도 좋다. 불행에 대한 두려움도 너무 크게 가지고 있을 필요 없다.
행복도.
불행도.
실은, 하나의 씨앗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