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르담 심리 에세이>
'스톡데일 패러독스'라는 말이 있다.
제임스 스톡데일(James Stockdale)은 베트남 전쟁 중 포로로 8년간 억류되었던 미군 장교인데, 혹독한 포로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자신과 그러하지 못한 사람들의 심리적 차이를 관찰했다. 스톡데일과 반대로 죽어나간 사람들의 공통점은 '근거 없는 낙관주의'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크리스마스 전엔 집에 갈 수 있을 거야.", "부활절 전에는 풀려날 거야..."와 같은 막연한 희망을 품었지만, 그러한 희망이 번번이 좌절되면서 결국 절망감에 사로잡혀 무기력하게 죽어간 것이다.
반면, 스톡데일은 현실의 잔혹함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
통제 가능한 것에 집중했으며, 장기적인 목표에 대한 믿음을 토대로 '합리적 낙관주의'를 강화시켜 나갔다. 견디고 버티는 것의 의미를 차곡차곡 쌓아 나간 것이고, 이것이 그를 오랜 포로 생활에서도 꾸준히 숨 쉬게 했다.
'절망(絶望)'이란 말을 다시 돌아봤다.
놀랍게도, 한자어 어디에도 부정적인 뜻은 없었다. '끊을 절'과 '바랄 망'. 바라는 것을 끊는다. 더 이상 바라지 않는다. 오히려 주체적이고, 쿨하지 않은가.
'절망'을 늘 부정적인 것으로 생각하고, 그 앞에 털썩 주저앉아 있는 나를 떠올리는 건 어쩌면 그 단어를 '나쁜 것'이라 치부해 버린 무의식적 결단이 아닐까.
'절망', 그러니까 헛된 희망에 미련을 두지 말고, 더 이상 바라지 않게 된다면.
오히려 삶은 더 자유로워지지 않을까? 아니면, 재빨리 피봇하고 태세전환하여 또 다른 희망을 찾으면 되잖아?
스톡데일은 현명하게 성급한 희망의 끊을 끊은 것이다.
그 순간. 그는. 주어진 현실에서, 또 다른 희망을 찾은 것이 분명하다.
아무리 노력해도 닿지 않는 포도를 신 포도라 여기고 발길을 돌리는 이솝우화의 여우에게, 누가 돌을 던질 수 있을까?
그는 무언가를 쉽게 포기한 것일까, 아니면 과감하게 자신이 바라는 것을 끊은 것일까. '하면 된다'가 아니라 '되면 한다'라는 말이 더 공감되는 시대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는 것이 아니라, 피할 수 있다면 피하는 것이 상책인 세상이다. 주렁주렁 달렸던 포도가 정말, 입에 넣었을 때 바로 뱉을 정도로 신 포도일 수도 있다.
당신에겐, 자신이 바라는 걸 과감히 끊어버릴 용기가 있는가?
더 나아가, 우리가 가진 '희망'에 대해서도 돌아봐야 한다.
내가 가진 희망은 정말로 내가 원하는 것인가? 혹시, 부모가, 가족이, 질투가, 세상이 가져다준... 나만 뒤처질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사로 잡힌 바람이 아닐까? 그것을 이루지 못하면, 소유하지 못하면 세상이 끝날 줄 알았는데. 오히려 포기하고 나니, 바람을 끊고 나니... 속이 더 후련했던 적은 없었는지.
이루지도 못할 것에 목메다, 몇 백번은 이루고도 남을 것들을 놓치고 있는 건 아닌지.
내가 바라던 것 중, 내가 먼저 무엇을 끊어낼 수 있는지를 돌아봐야겠다.
생각보다 더 큰 용기가 필요하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