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르담 심리 에세이>
드디어 오징어 게임이 'Over' 되었다.
지난 몇 년간의 여정에, 감독과 배우 그리고 관계자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영화를 평론하고 싶진 않다. 재밌고 재미없고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오징어 게임은 내용을 떠나, 우리네 삶을 제대로 투영하고 있다. 오징어 게임의 성공은 '공감'과 '호기심'을 기반으로 한다. '공감'이라 한다면, 현대 사회의 각박함과 경쟁에서 비롯되는 갖가지 상황과 감정일 것이다. '호기심'은 한국의 정서에 관한 것이다. 공통분모는 있지만, 조금은 더 특별한 것. 아니, 어쩌면 조금은 더 기괴한 것에 대해. 왜 한국 사람은 이렇게 처절하게 사는 것일까. 외국인 친구들과 함께 오징어 게임에 대해 이야기할 때면, 나는 영화 속 삶이 한국 사람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호기심 가득한 친구들의 눈이, 오징어 게임의 성공을 말해준다.
오징어 게임의 마지막 여정에서, 내가 가장 크게 이입한 인물은 다름 아닌 그곳에서 태어난 아기였다.
말하지도, 투표를 하지도, 의사 결정 능력이나 남과 경쟁할 수도 없는 존재에게 내가 느낀 감정은 무엇이었을까. 그건 '부조리'다. 함께 이입해보면 좋겠다. 원해서 태어난 게 아니고. 태어나 보니 각박하게 경쟁이 일어나고 있는 곳. 아기땐 몰랐던 어른들의 살고 죽음. 동심이라는 보호막 속에서, 우유를 먹으며 자라날 때에도 세상은 온통 오징어 게임이 한창인 곳이었다.
이제 그 아기는 자라나며, 자의든 타의든 경쟁 속에 투입될 것이다.
우리도 그래왔다. 혼자가 아닌, 누군가와 함께일 때. 경쟁은 시작된다. 아니, 혼자 있을 때조차, 우리네 정서는 자신과의 싸움에 돌입하라고 말한다. 가만히 있으면 불안하고, 혼자 있는 내가 한심하고. 무어라도 하지 않으면 마음이 불편한 삶은, 어쩌면 한국인이라는 집단 무의식에 각인된 그 어떤 프로그램과도 같다.
감독은 결말을 해피엔딩에서 새드엔딩으로 바꾸었다.
주인공이 아기와 함께 게임장을 벗어나는 것을, 감독은 도저히 용납할 수가 없었다고 한다. 지금의 우리 삶을 투영한 것이다. 시대가, 영화의 흐름이. 자꾸만 절망적이라 했다. 그나마 남긴 희망과 상징이 '아기'였을 것이다. 슬프고 암울하지만, 그나마 남긴 감독의 희망. 결국, 마지막에 돈을 거머쥔 건, 아기와 아이였다.
영문도 모르고 태어나.
영문도 모르고 경쟁하고.
영문도 모르고 살아가고.
영문도 모르고 죽어야 하는 우리.
우리네 삶을 설계한 건 누구일까.
인생이란 게임을 만든 사람은 누구일까.
게임장 속 어리둥절한 우리는, 어제와 같이 기상 음악 소리에 눈을 뜨고 다시금 게임장으로 향한다.
드라마는 시즌이라도 있지.
드라마는 결말이라도 있지.
쉽고 곱게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삶이라는 게임은.
언제쯤 끝이 날까.
아기의 울음소리가.
마냥 남의 것만 같지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