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남은 인생은 애매하게 살아야지

<스테르담 심리 에세이>

by 스테르담

나는 '노자'의 '유무상생(有無相生)'을 좋아한다.

'있음'과 '없음'이 서로를 낳는다. 서로가 있어야 살 수 있다. '존재하는 것'과 '존재하지 않는 것'이 서로 의존하며 공존한다는 원리를 말한다. 이 얼마나 멋진 말인가. 이 어찌 세상 정확한 개념이란 말인가.


컵에 물이 차 있다.

어느 정도 차있을까. 컵은 비어 있으므로 존재하고, 또한 채워짐으로도 존재한다. 물이 반 채워있다면, 컵은 비어있는 반을 통해서도 존재한다. 예술 작품엔 여지없이 여백의 미가 있으며, 인간관계에선 여러 말 보다 침묵이 주는 신뢰가 더 클 때가 있다. 빛은 어둠이 있어야 말 그대로 빛을 발하고, 어둠은 빛이라는 개념이 있을 때 그 정도를 다한다.


'유무상생'이 내게 주는 가장 큰 의미는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말라는 것이다.

우리는 빛 아래에서만 살 수 없고, 어둠에 갇혀만 살 수도 없다. 빛과 어둠을 왔다 갔다 해야 하며, 배고픔과 배부름을 반복하여 살아가야 한다. '없음'과 '있음', '있음'과 '없음'은 계속하여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다 보면 그것을 반복하거나, 어느 한쪽에 치우쳤을 때 다시금 반대편으로 자연스레 회귀하는 걸 목격하게 된다.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것은, 자칫 '애매함'의 표상이 될 수 있다.

한국이란 사회는, 어느 한쪽으로 치우쳐야 한다고 말한다. 이것은 강요가 되고, 아울러 이데올로기가 된다. 너희 색깔은 무엇이냐. 파랑이냐, 빨강이냐. 진보냐, 보수냐. MBTI는 무엇인가. 내성적인가 외향적인가. 찍먹인가 부먹인가. 배우자의 가치관은 같아야 하는가 달라야 하는가.


수많은 질문이, 어느 한쪽을 고르라고 말한다.

그래서 행복한가. 아니, 나는 그 반대라고 본다. 어느 한쪽에 치우친다는 건, 다른 한쪽을 이해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아니, 어찌 그리 살 수 있는가. 낮에만 살 수 있는가? 밤에만 살 수 있는가? 사람은 낮과 밤을 함께 살아야 하는 존재다. '분명한 것'이, '어느 한쪽에 치우친다는 것'이 삶을 선명하게 해주지 않는다. 오히려 더 많은 갈등과 폭력을 양산해 낸다.


'애매함'은 '중용'이다.

어느 한쪽으로도 치우치지 않는 것. 더 나아가, 어느 한쪽으로 치우쳐야 할 때와 그 정도를 아는 것. 중간에서 좌우를 왔다 갔다 하는 것. 애매함을 욕할 자격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다. 그들은 균형을 잡지 못해 아우성치는 것이다. 좌우로 흔들리는 걸 뭐라 하는 사람들의 소리는 무시해도 좋다. 평균대 위에서 양팔을 벌려, 좌우로 흔들리지 않을 사람들은 없다.


남은 인생은 애매하게 살아야지.

어느 한쪽으로 쏠리라고, 저쪽과 이쪽으로 가라는 세상의 폭압적 이데올로기에 놀아나지 말아야지. 빛이 필요할 때 빛 쪽으로 가고, 어둠이 필요할 때 어둠으로 침잠해야지. 존재를 내세울 때와, 굳이 내 존재를 드러내지 않아도 될 때를 구분해야지.


애매하지 않으려 발버둥 쳤던 날들이, 오히려 더 삶을 애매모호하게 해 왔다는 걸.

어느 한쪽으로 선명해야지... 란 욕심을 내려놓으니 깨닫게 된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세월의 속절없음에 대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