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르담 심리 에세이>
공항엔 이별이 그득하다.
그와 같이 만남도 함께. 이별과 만남이 공존하는 곳이 공항인 걸 상기할 때, 분명 공항은 떠나고 도착하는 곳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떠나는가.
떠났으니 도착하는 것일 테니, 우리는 왜 떠나는 가를 더 먼저 물어야 한다.
떠남에 있어 그건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지 않을까.
‘자의’와 ‘타의’. 내가 원해서 가는가, 아니면 가야 하니까 가는가. 어떤 떠남은 만남을 기약하지 않고, 또 어떤 만남은 떠날 때 약속하지 않은 무엇이다.
공항은 내게 친숙한 공간이기도 하다.
전 세계를 돌아다녀야 하는 직업 특성상, 공항은 일상 공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앞선 자문과 자답에 의하면, 그렇다면 나의 공항은 조금은 더 타의적이다. 일을 위한 떠남이니, 돌아옴은 당연하다. 물론, 주재를 위해 공항에 이르는 건 어느 몇 년간의 이별을 뜻하기도 한다. 가족과 함께이니, 내 가족들의 그 어떤 인연들과도 잠시는 안녕인 셈이다. 달리 말하면, 먼 이국 땅에서 우리 가족은 친숙한 곳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덩그러니 놓이게 되는 것이고 철저히 서로 의지하며 타향살이를 견뎌내야 한다.
어느 날은, 브라질에 출장을 갔더니 그곳을 잘 아는 사람이 브라질 사람들은 정이 많다고 했다.
공항을 보면 안다나. 그러고 보니 일을 마치고 다시 귀국 길에 오를 때, 공항에서 짧지 않은 시간을 포옹하는 사람과 정말로 울음이 터져 서로를 어루만지는 사람들을 봤다. 어느 공항이나 이별은 있지만, 브라질 공항의 이별은 조금 더 절절해 보였다.
다시 첫 질문으로 돌아가보자.
왜 떠나는가. 자의라면 여행이나 유학일 가능성이 높고, 타의라면 일일 가능성이 높다. 아, 물론 소위 말하는 야반도주나 범죄와 연루되어 고국을 떠나는 사람도 있을 테고. 떠나지 않아도 되는데, 사람들은 청개구리 고집이 있다. 굳이 일상을 떠나, 떠난 곳에서 일상의 소중함을 알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또 다른 이별을 꿈꾸니까.
오늘, 이제 막 도착한 공항.
잠시 방학을 맞이해 한국에 들어갔던 가족들의 비행기가 이제 막 멕시코 시티에 착륙했다고 전광판이 말했다.
고로, 오늘 공항의 테마는 이별이 아닌, 만남이다.
출국장 문이 열리면, 한 명 한 명 꼭 안아줘야지.
공항엔 만남도 그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