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르담 심리 에세이>
그의 이름은 'David'였다.
혼자 온 터라, 우리 조에 배정이 되었다. 그렇게 골프는 시작되었다. 어라. 뭔가 분위기가 싸했다. 75세 정도 되어 보이는 David은 잘 걷지 못했다. 다리를 절룩였고, 손을 떨었다. 아, 파킨슨 병이구나. 카트에서 내리기 전까지만 해도 그의 모습은 영락없는 유럽 노신사였다. 골프 필드에서도 전혀 이질감이 없는 그의 중절모. 초록색 셔츠. 시원하게 호리호리한 몸. 얼굴의 주름과 덥수룩한 하얀 수염이, 방금 어느 럭셔리 잡지의 화보를 뚫고 나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아... 우리 조는 아주 느리겠구나.
그나마 다행인 건, 공장에서 물건 찍어내듯 진행되는 한국 필드와는 다르다는 것이다. 나름의 여유가 있다고 할까.
그는 자신을 의사라 소개했다.
아마도 골프는 자신에게 처방한 하나의 운동법이 아닐까란 생각을 했다. 제대로 걷지 못하는, 게다가 손의 일부 어딘가가 파킨슨 병으로 인해 자유롭지 않은 사람에게, 그래. 골프는 어쩌면 최선의 운동일는지 모른다. 자연을 만끽하며, 크게 흥분하지 않고 공을 저 앞으로 보내면 되는 것이므로.
몸이 자유롭지 않지만, 그의 스윙은 훌륭했다.
멀리 나가진 않지만 똑바로. 강하게 맞진 않지만 공과 헤드는 정타 소리를 냈다. 구력이 느껴졌다.
잠시, 그의 젊은 시절을 상상했다.
잘 생긴 의사. 멋지게 늙어가는 남자. 이성뿐만 아니라, 그 이상의 사람들로부터 관심을 받지 않았을까.
그가 스윙할 때, 우리는 모두 숨을 죽였다.
잘 맞기를. 공이 조금은 더 멀리 날아가기를. 젊었을 때 세상까지는 아니더라도, 그의 행동반경을 호령했을 것만 같은 그는 우리 눈치를 살폈다. 자신이 방해가 되는 건 아닌지, 연신 미안하다는 말을 했다. 그의 손이 조금은 더 떨려 보였다. 아니, 미안해 하지 마시기를.
처음 그를 보았을 때, 우리 조가 늦게 나갈 것이란 생각부터 했던 스스로가 잠시 부끄러웠다.
나도 나이 들 텐데. 손이 떨리고, 다리가 후들거릴 텐데. 이후, 나는 David이 스윙할 땐, 공손하게 앞으로 두 손을 모으며 간절히 그를 응원했다.
세월은 속절없다.
세월엔 장사 없다.
야속하고, 비열하며, 자비가 없다 못해 잔인하다.
육체의 성장이 다하지 않은 존재에게, 세월은 어쩌면 약일지 모르지만.
더 이상 키 크지 않는 존재에게 세월은 죽음의 카운트다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다만, 내가 바라는 건.
육체의 성장이 멈췄을지라도, 생각과 마음과 지혜의 성장은 계속되는 것이다.
나이를 거꾸로 먹지 않도록.
세월이 나를 비껴가기를 바라지 않도록.
피하려 하면 할수록 세월은 오히려 더 잔인해지는 법.
세월의 속절없음은, 정통으로 맞이하는 게 최선이란 생각이 든다.
David, Good sho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