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테르담 Feb 12. 2017

뜻밖의 위대한 선물, 코르도바

좁은 골목과 거대한 문화의 공존, 그리고 소박한 휴식


- 여정 -


암스테르담 To 말라가 (비행 3시간)
말라가 To 론다 (110km)
론다 To 세비아 (134km, 2박)

세비아 To 코르도바 (141km)

코르도바 To 그라나다 (208km, 2박)

그라나다 To 네르하 (93km)

네르하 To 프리질리아나 (10km)

프리질리아나 To 말라가 (54km, 1박)

말라가 To 암스테르담 (비행 3시간)



살아가다 보면, 예상치 못한 곳에서 감동을 받는 경우가 있다.

코르도바가 그랬다. 세비아에서 그라나다로 가는 길에 잠시 들르는 여정의 '코르도바'는 그렇게 나의 기대를 크게 받지 못했다. 어쩌면 그것부터가 선물이었는지 모른다. 기대하지 않은 것에서 올 감동을 그 당시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아는 것도 하나 없는 것도 한 몫했다.

인기가 많은 건지, 주차장이 작은 건지 도착하자마자 주차장 앞에는 차들이 줄지어 서있었다. 돌로 쌓은 성벽은 세월의 흔적을 말해주고 있었다. 겨울과 어울리지 않는 푸른색 나무들은 어느새 친근해져 있었다.


주차를 하고 나오면 성벽으로 들어가는 문이 사람들을 맞이한다. 오렌지 나무들이 그 앞을 지키고, 작은 분수대가 입구의 풍경을 좀 더 풍부하게 한다. 문을 들어서면 거대한 것이 나올 것 같지만, 오히려 좁은 골목들이 즐비하다. 첫인상이 나쁘지 않았다. 기대하며 걸어가는 골목골목이 그것을 저버리지 않았다. 다시 이름을 곱씹어보니 어쩐지 유럽의 지명이라기보다는, 저기 어딘가 중남미 어딘가에 있을 것 같은 느낌에 모든 것이 새로이 보였다. 하늘이 좁아 보일 정도로 골목골목은 아기자기했다. 바닥엔 역사의 굴곡을 함께 했을 돌들이 우리의 발을 안내하고 있었다.

코르도바는 기독교와 이슬람교 문화가 공존하는 도시다. 한 때 인구가 100만 명에 달했을 정도로 문화와 학문이 융성했던 곳. 어느새 우리는 그렇게 시간 여행을 하고 있었다.



골목을 굽이굽이 돌아 어느 벽면에 닿으면 코르도바의 색채를 느낄 수 있다. 벽에 붙은 콜라주가 사람들을 맞이한다. 그것을 사람들이 그냥 지나칠리 없다. 독사진을 찍기 힘들 정도로 사람들의 사진 행렬은 줄을 잇는다.



좁은 골목을 지나 조금 더 큰 골목이 나온다. 기념품을 파는 가게들의 색상이 예사롭지 않다. 하얀 벽에 포인트를 준 창틀과 베란다는 그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골목 사이로 보는 하늘이 조화로운 것이 크나큰 매력으로 다가왔다.



골목을 헤집다, 유대인 지구를 맞이한다. 유대인들이 살았던, 그러나 유대인 추방령으로 인해 그들이 떠난 곳이다. 안달루시아의 유일하게 남아있는 유대 교회로 그 규모는 크지 않다. 조밀한 공간에 남은 그들의 흔적이 어쩐지 집이 없었던 그네들의 아픔을 이야기하는 듯했다.


좁은 골목으로 끝날 줄 알았던 코르도바는 나에게 뜻밖의 선물을 주었다. 그리고 그 선물은 참으로 위대했다. 기독교와 이슬람의 문화를 동시에 제대로 느껴보라는 듯이 '메스끼따'가 떡하니 앞에 나타난 것이다. 이슬람 사원을 개축하여 만든 대성당이다. ('메스끼따'라는 것도 스페인 말로 '이슬람 사원'이란 뜻.)

가슴이 벅찰 정도의 규모, 그리고 아름다운 850개의 기둥은 코르도바 여행의 묘미다. 입구에 들어가 맞이하는 오렌지 정원도 여독으로 지친 심신을 어루만져주는 좋은 약과 같다. 안으로 들어가 보는 성당의 이곳저곳은 감탄을 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들의 연속이다. 중간중간 보이는 이슬람 디자인과 기독교 예수의 흔적이 상충하는 듯 보이지만, 알고 보면 같은 뿌리를 다르게 해석한 사람들에 의해 갈라진 문화임을 생각해보면 놀랄 일도 아니다.



성벽 옆으로 돌아가면 하늘과 맞닿은 탑 하나가 보이고, 그 뒤로는 강이 펼쳐진 풍경이 보인다. 다리로 가는 작은 문을 지나면 사람들이 산뜻한 바람을 즐기고, 다리 위에서 펼쳐지는 작은 공연들을 관람한다. 자신의 그림을 그 자리에서 그려 파는 화가, 인형극을 하며 사람을 불러 모으는 인형사 등. 모든 것이 다채롭다.



성벽 또 다른 부근에 가보니, 사람들이 웅성하며 서있다. 줄을 선 모습과 더불어 시계를 보니 점심시간. 아이들은 이미 배고프다며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마침, 줄을 선 그 가게가 먹는 것으로 유명해 보여 줄을 섰다. 노란색의 무언가를 들고 있는 포스터, 그리고 양손 가득 접시를 들고 행복하게 문을 나서는 사람들을 보고 그러지 않을 수가 없었다. 짐작 가는 맛과 맞아떨어진 으깬 감자는 허기를 달래기 좋았다. 함께 나온 붉은색의 토마토 수프는 기대와 달리 차가워 첫맛에 흠칫 놀랐지만 허기진 뱃속으로 들어가기에는 손색이 없었다.


성벽의 네 번째 분면에 다다르면 면죄의 문을 만난다. 그리고 그 부근엔 '작은 꽃길'이 있다. 좁은 골목. 흰 벽. 제라늄 화분. 이 세 가지 요소로도 작지만 유명한 관광지를 만들 수 있다. 좁은 골목의 끝에 다다르면, 골목 사이로 비치는 햇살을 강렬하게 사진에 담을 수 있다. 작은 분수는 휴식을 선사한다. 졸졸 흐르는 분수는 기념품 가게로 둘러 싸여 있는데, 한적함이 푸근하다.

작은 골목으로 시작해, 좀 더 큰 골목. 그리고 그곳을 지나 만난 웅장한 선물. 같은 뿌리에서 나온 다른 종교의 색채가 우리의 마음을 더욱더 풍족하게 했다. 벅차오른 감동을 오렌지 정원이 달래 주었고, 작은 꽃길과 다다른 그 길의 끝 소박한 분수. 우리 가족의 여행은 그렇게 이어지고 있었다. 뜻밖에 받은 위대한 선물 코르도바에서.


매거진의 이전글 체온의 중력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