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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Feb 18. 2017

유럽의 시작, 크레타

에우로페부터 그리스인 조르바까지

꽃을 따러 나온 그녀의 이름은 에우로페였다.


그 모습에 반한 건 다름 아닌 제우스였다. 하얗고 멋진 황소로 변한 것도 그였고, 그녀를 등에 업고 바다를 건너 납치한 곳은 크레타였다. 에우로페의 이름은 그렇게 '유럽'의 그것이 되었다.


미궁(迷宮)을 만들게 한 건 미노스였다.


에우로페는 여왕이 되었다. 그리고 제우스와의 사이에는 어느덧 세 명의 아들이 생겼다. 장성하여 크레타 섬의 전설적인 왕이 되었다. 아테네마저 정복한 미노스는 조공으로 보내온 아테네의 젊은이들을 반인반수 괴물 미노타우로스에게 인신 제물로 바쳤다. 알고 보면 미노타우로스의 발단도 미노스였다. 포세이돈에게 부탁한 황소로 왕의 자리를 거머쥔 미노스의 욕심이었다. 그 욕심이 그의 아내였던 파시파에와 황소 사이에서 미노타우로스를 탄생시키게 했으니. 날개 제작자이자 이카로스의 아버지인 다이달로스에게 그 미노타우로스를 가둘 미로를 만들라 명했다.


날개를 잃은 건 이카로스였다.


영웅 테세우스가 미노타우로스를 물리치고 미궁을 빠져나왔다. 빠져나오는 법을 알려준 다이달로스는 미노스에 의해 아들과 함께 자신이 만든 미로에 갇혔다. 빠져나오기 위해 만든 날개였다. 깃털과 밀랍이면 충분했다. 어깨와 팔, 그렇게 아들과 함께 날아올랐다. 비행에 취해 태양 가까이 가지 말라는 아버지의 말을 잊은 이카로스는 그렇게 바다와 하나가 되어 '이카리아 해'라는 이름을 남기고 죽었다.


다시 크레타를 찾은 건, 그리스인 조르바였다.


몇 천년의 시간이 흘러 그리스인 조르바는 크레타에 도착한다. 젊은 지식인인 '나'와 함께. 운명은 그들을 크레타섬에 가져다 놓았다. 제우스와 에우로페도, 미궁을 만든 미노스도, 날개를 잃은 이카로스도 그 운명에 따른 것이었을 테다. 크레타섬과의 인연이랄까.

당최 조심스러운 '나'와는 달리 그의 행동은 기이하고 방탕하다. 즉흥적인 그와 이성적인 '나'와의 충돌이 상당하다. 하지만 그것이 싫지는 않다. 책 속의 이론에 파묻힌 '나'에게 그의 삶은 생생함 그 자체다. 모든 것을 잃은 상황에서의 대처법도 달랐다. '나'는 주춤했지만, 조르조바는 양고기를 굽고 포도주를 마시며 시르타키 춤을 춘다. '나'또한 그를 따라 하며 해방감을 기어이 맞이한다. 

그가 죽어 보낸, 산투르 악기를 남긴다는 편지와 함께 '나'는 진정한 자유의지를 깨닫는다.




그리스에서 가장 큰 섬 크레타. 유럽인들의 휴양지로 먼저 떠올려지는 이곳의 이야기를 훑어보니, 유럽의 시작이 있었다. 그리고 그리스인이 있었고, 자유의지가 있었다. 그 스토리를 알리 없었던 내게 그곳은, 겨울이어서 바람이 차고 바다로 둘러싸여 파도소리가 가득한 하나의 섬에 지나지 않았다. 그 옛날 문명에 감탄하기에는 그 보존 정도가 덜해 느껴지는 바도 그와 같았다. 기원전, 그것도 기원전 2500여 년 전이라는 이야기를 들으면 그나마 남아 있는 것이 기적이라 해야 할까. 영국 고고학자 에반스의 무분별한 유물 발굴도 아쉬운 부분이다. 그저 돌담과 터로 즐비한 어느 곳의 이야기는 그래서 필요하다. 돌덩이와 놓여진 공터가 그 이야기로 인해 재구성이 된다. 역사가 세워지고 위대함이 전해진다. 물을 능수능란하게 다루었던 그들의 지혜가 문명을 자아냈고, 사실인지 허구인지 모를 더 오래된 이야기에 우리는 고개를 끄덕인다. 누군가 만들어낸 이것들은 인류의 뿌리가 되고, 사실로 각인된다. 현실에선 실감되지 않는 것들이, 뿌리를 찾아가면 비현실적인 것들도 용인된다.


지중해식 음식은 어쩐지 신선하다. 올리브유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조리법의 결과 이리라. 얼마나 먹을 게 없었으면 나무와 잎을 쥐어짜 그것을 만들었겠냐는 생각이 들지만, 그것이 에우로페의 이름이 유럽의 기원이 된 것처럼, 모든 유럽 음식의 기본이 되었으니 가벼이 볼 일이 아니다.


기원 전. 기원 후. 그리고 요즘.

제우스와 에우로페의 시작에서 시작해, 그리스인 조르바를 거쳐 나도 스쳐간 이곳의 몇 천년 후가 궁금하다. 아직 생겨날 무엇이 더 있을지, 아니면 사라져 갈 것들이 더 많을지는 먼지처럼 스쳐가는 인생으로서의 질문이다. 어쩌면 사라지고 생겨나고 하는 것들의 무한 반복이 제우스와 조르바, 우리에게 공통으로 주어진 운명일지도. 


고고학자 에반스의 흉상. 복원하는 과정과 그 결과가 매우 아쉽다.


지진과 화재로 풍파를 겪은 모습이 역력하다.
나무였던 것을 시멘트로 발라 나뭇결을 그려냈다.


물을 다루었던 그들의 지혜가 보인다.
어쩐지 쓸쓸해 보이는 나무
베네치아 통치 400년의 산물. 베네치안 요새
이라페리온 중심가
식당에서 마주친 녀석
같은 채소이고 올리브유인데, 처음 만난 맛이 신선했다. 신기하기도하고.


집으로 가는 길. 그리운 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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