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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Mar 05. 2017

너희들과의 약속 '디즈니랜드 파리'

또한 아빠로서, 그것은 나와의 약속


- 여정 -


암스테르담 To 디즈니랜드 파리 (536km, 2박)

디즈니랜드 파리 To 암스테르담



이제 막 다섯 살이 된 아이는 떼를 썼다.

그 시절의 창경원에서였다. 일본의 민족혼 말살 정책의 일환으로 궁궐에 들어선 동물원과 몇 가지의 놀이기구는, 그 당시에 몇 안 되는 놀이동산이었다. 흐릿한 기억 속에, 천천히 돌아가는 오토바이 모양의 탈것을 더 타겠노라고 아빠에게 떼를 썼던 것은 나였다. 몇 번을 타고도 더 타려 했던 나와, 이제는 다른 것을 타러 가자는 실랑이였다. 결국 어떻게 되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나는 울며불며 다른 곳으로 향하는 아빠와 엄마, 그리고 누나의 뒤를 따랐다. 그것이 내가, 일찍이 돌아가신 아버지와 함께 한 놀이동산의 처음이자 마지막 기억이었다.


그것이 마지막이라는 것을 알았다면, 나는 좀 더 떼를 써야 했다. 그래서 어떤 사단을 만들어 기억을 생생히 했어야 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 기억은 생생하지 못하여 내 머릿속에 그저 낡은 흑백사진 한 장 정도의 장면으로 연상될 뿐이다. 그 이후에도 놀이동산의 기억은 계속 있어왔다. 자연농원이 에버랜드로 바뀌고, 새로운 롯데월드가 생기고, 각 지방 어느 도시에 있는 OO랜드 등이 그것들이었다. 물론, 가족들과 함께한 기억이 아니라 친구들과 함께한 그것이다. 부모와 아이들이 손잡고 방문하는 놀이동산의 전형적인 모습에 부합하지 않더라도, 친구와 애인 또는 단체로 놀이동산을 방문하는 일들이 있었기에 다행이었다. 놀이동산에 대한 '환상'은 대단한 것이어서, 가족으로만 그 접근이 가능했다면 얼마나 인생이 슬펐을까. 그럼에도, 가족 모두가 함께 놀이동산을 함께 방문한 기억이 생생하지 않거나, 그것이 많지 않음은 내게 서운함으로 남아있다.


그런 내가 가족을 이루어, 아이들과 함께 놀이동산을 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자 동시에 감격스러운 일이다. 바쁜 일상이지만, 놀이동산에서 천진난만하게 웃는 얼굴을 보면 내가 부모로서, 아빠로서 소임을 다하고 있구나라는 착각이 들 정도다. 그리고 내가 가지지 못한 소중한 추억을 가족과 아이들에게 주고 싶었던 조급함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사실, 놀이동산의 크기와 이름은 아이들에게 중요하지가 않다. 잘 알려진 곳이든, 그렇지 않은 곳이든. 돌이켜보면, 아이들도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을 최상으로 여기는 것 같다.


한국에서 지낼 때는 에버랜드와 롯데월드는 기본이었고, 작년에는 덴마크 레고랜드를 다녀왔다. 그리고 날씨가 좋을 때는 네덜란드의 에프텔링이나 헤이그 놀이동산도 수시로 다녀왔다. 아이들이 이제 하나 둘 우리가 다녀온 곳을 기억하기 시작하니 마음 한 편이 조금은 편안해진다. 바래지 않는 '증거 사진'들도 가득하니, 내가 가진 아련한 기억보다 그 녀석들의 기억은 더 확실할 것이다. 난 아이들과 약속을 했었다. 파리에 있는 디즈니랜드가 그것이었다. 약속에 대한 기억은 아이들에게 더 선명하다. 약속한 그곳을 언제 가냐는 수시 알림은 계속되어 왔었다. 마침내 주재 기간 마지막 해에, 주말에 시간을 내어 다녀왔다.


환상으로만 가득 찰 줄만 알았던 그곳에서, 타고 싶은 놀이기구의 길게 늘어선 줄을 감내하는 현실과의 만남. 하루 종일을 부지런히 힘들게 돌아다녀야 하는 수고까지. 녀석들은 즐거움과 피곤함을 동시에 즐기고 맞이했어야 했다. 부모로서 아이들의 즐거움을 최고조로 유지해줘야 하는 나와 와이프는 더욱더 기진맥진했다. 하지만, 여전히, 아이들의 웃음은 우리의 피곤함을 저 멀리 날려버리곤 한다.


이제는 와이프도 무서워 못 타는 놀이기구를 몇 번이고 타는 첫째. 무섭다며 억지로 끌려가 탄 놀이기구가 재미있다며 한번 더를 외치는 둘째. 그리고 지난날, 생떼를 쓰던 다섯 살의 어린이가 자라 이제는 아빠가 되어 아이들의 떼를 받아주는 나. 먹는 것에서부터 갖가지 뒷바라지를 하는 사랑스러운 와이프까지. 가족이 어느 하나의 행복을 느끼기 위한 협동이 그저 그렇게 감사하다. 녀석들과의 약속을 지켰으니 마음이 좀 더 한 결가벼워졌다. 아이들에게 그러한 시간을 주려했던 나와의 약속도 지켜졌다. 이제는 그 약속이 추억이 되어, 각자의 마음과 머리에 생생히 남아, 미래의 어느 날 힘든 그때. 그것을 꺼내어 힘을 내거나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다. 굳이 힘들 때가 아니더라도 갑자기 떠올라 미소를 지었으면 좋겠다. 우리 어렸을 때 이랬지... 라며 가족의 소중함을 이어갔으면 좋겠다. 


그렇게, 가족이라는 여행을 같이 꾸려갔으면 좋겠다. 언제까지나.




아침 일찍부터 차들의 행렬이 길다.
주차장에서 놀이동산으로 연결되는 무빙워크. 환영의 인사말이 아이들을 벌써 들뜨게 한다.
월트디즈니 스튜디오 쪽 입구. 각종 보안 검사가 진행 된다. 
각종 보안검사가 놀이동산의 환상과 낭만을 좀 깨긴 하지만, 안전이 우선이니.
카체이싱과 각종 스턴트 묘기가 가득했던. 유니버셜 스튜디오의 그것과 흡사하다.
와이프는 무서워서 못타는 놀이기구를, 첫째와 여러번을 탔다.
월트 디즈니 스튜디오에서 디즈니 랜드 쪽으로.
디즈니랜드의 상징. 디즈니랜드 성.
노이슈반스타인성과 닮은지는 잘 모르겠다.
둘째가 사달라고 조른 자석. 이것이 긴 여운과 감동이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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