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습작노트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테르담 Sep 30. 2015

[너를 만난 그곳] #8. 내 직장의 기억 Part 2

먼저 온 자가 나중 되고, 나중 온 자가 먼저 된다

-6-

첫 업무는 영업이었다.
국내 마케팅 본부에 입사한 신입사원에게는 반드시 거쳐가야 할 과정이었다.

그중에서도 내가 맡은 영업은 소위 맨 땅에 헤딩하기라 불리는 납품 영업.
무엇이든 만들어 와야 하는, 말 그대로 무에서 유를 창조해야 하는 업무였다.

오후엔 외근을 나갔다.
임산부 눈에는 임산부만 보이듯이, 내 눈엔 외근을 하는 많은 영업 사원들이 보였다.
학생 때는 보이지 않던 풍경이다.

다들 바쁜 사람들, 그리고 그들 어깨 위에 보이지는 않아도 느껴지는 실적 압박과 성취해야 하는 목표. 

입사 1년 차인 내게도 보이는 그러한 것들을 받아 들이기에는 사실 좀 힘들었다.

광고 부서에 들어가 우리 제품 모델인 영애 씨와 사진을 찍어 미니홈피에 올리는 동기를 보며,
상대적 초라해짐을 느끼기도 했다.

-7-

신촌에 줄기차게 들어선 모텔과 노래방은 나의 주 타깃이었다.
당시 브라운관 TV에서 LCD나 PDP 같은 평판 TV로 바뀌는  그때는 영업 사원인 내게 기회였다.

더불어 중, 고등학교도 평판 TV 수요가 늘며 천장 거치대로 바꾸어 설치하면 어떻겠냐는 나의 아이디어는 소위 말해 대박을 터뜨렸고 현재 거의 모든 교실에서 쉽게 이러한 모습을 볼 수 있다.

각종 입찰에서 경쟁사를 이기고, 경쟁 프레젠테이션을 하며 납품을 수주하고, 겁 없이 아무 회사에나 들어가 노조 위원장에게 임직원 판매를 하자고 제안을 하기도 했다.

왼쪽 가슴에 박힌 회사 로고와 영업직에 대한 존경심, 그리고 어머니에게서 물려 받은 긍정적인 마음이 이루어낸 즐거운 시간이었으리라.

이런 와중에서도 난 해외 영업/ 마케팅에 대한 열망은 마음 중심에 두고 있었다.

세상 물정 모르고 자란, 그리고 유럽 배낭여행을 목전에 두고 집안 문제로 해외로 나가 보지 못했던 내겐 사무치는 바람이었는지 모른다.

-8-

멋들어진 슈트. 한 손에 이끌리는 여행용 가방.
연신 울려 대는 전화기와 고개를 비틀어 턱과 어깨 사이에 전화기를 두고 통화하는 프로페셔널 한 모습.
입에서 흘러나오는 유창한 외국어.

해외 영업/ 마케팅에 대한 끊이지 않는 막연한 동경.
다행히 우리 회사는 매우 큰 회사 였기에 본인의 노력에 따라, 부서 이동을 할 수 있는 기회가 꽤 있었다.

문제는 언제, 어디로냐 였다.

현실은 군대 문화가 만연한 국내 영업직이었고, 소위 말하는 조인트를 까이며 선배 말을 들어야 했다.
조인트를 까였던 이유는 단순했다. 술에 취해 단란주점에 가자는 선배의 말에 동조하지 않아서.

그래도 내 책상 앞에는 우리 회사의 해외 법인 위치를 표기한 세계 지도가 붙여져 있었다.
너무 힘들었지만, 지도를 보며 참았다.

그리고 현재 나의 일에 최선을 다했다.
언젠간, 저기 어느 법인 하나에 가 있으리라는 스스로의 믿음과 함께.

- 9 -

입사 후 정확히 4년 후였다.

첫 해외 출장지인 중동으로 가기 위해 두바이행 비행기에 오른 것은.

많은 투자를 했는데 어디를 가느냐며 국내 영업 인사팀에서는 투덜투덜 댔다.
그 투덜댐을 뒤로 하고 사내 공모를 통해 해외팀으로 부서 이동을 했다.
그리고 내가 처음으로 맡은 지역은 중동과 아프리카 지역이었다.

기대와 다르게 멋들어진 슈트와 뭔가 화려한 것은 없었지만, 그래도 행복하고 기분이 좋았다.

뭔가 조금이라도 삶을 개척한 느낌이었다.
물론, 당장 바뀐 환경에 적응하고 살아남아야 하는 과제가 주어지긴 했지만.

- 10 -

"먼저 온 자가 나중 되고, 나중 온 자가 먼저 된다"라는 유명한 문구가 있다.
지금도 떠오르는 말이고, 회사 생활을 하며 앞으로도 떠 오를 말이다.

첫 해외 영업/ 마케팅 근무를 시작한 나에게 텃세라는 다소 해외 부서에서는 어울리지 않는 놈이 찾아왔다.

"넌 내가 만만해 보이냐?, 누구 맘대로 형이라고 불러? 앞으로 그러지 마라."

국내 영업에서 배운 특유의 친화력(?)이 통할 줄 알았다.
나보다 한 살 많은 외교관 아버지를 둔 대리는 나에게 커피 한 잔 하자며 경고를 날렸다.

당황 스러웠지만,  이해하기로 했다.
처음 시작하는 사람에게 선택권이 그리 많은 것은 아니니까.

주위를 둘러보면 그 사람과 같이 소위 말해 부모 잘 만난 사람이 생각보다 많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해외에서 학교를 나왔고, 이는 그 집안의 경제력을 짐작케 했다.

10년이 지나 돌아본 지금, 나는 나중 온 자가 먼저 되었고 나에게 경고를 날렸던 그 선배는
먼저 온 자가 나중이 된 상황이 되어 내가 그를 "형"이라고 불러 주는 것을 매우  고마워하고 있다.

하지만 안심하긴 이르다. 나 또한 나중이 될 수도 있으니, 누구 하나 무시하거나 적으로 만들어서는 안된다.
10년 간 회사 생활을 하며 배운 소중한 경험이자 깨달음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너를 만난 그곳] #7. 내 직장의 기억 Part 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