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괜찮아도 괜찮을 거라는 마음가짐이 필요할 때
사는 게 각박하다 보니 우리는 무언가에 취해 있어야 한다.
미친 시대를 이성적으로 살기 위한 선택이다. 아니, 어쩌면 우리는 좀 미쳐야 살아갈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그런지, 사방이 달콤하다. 그저 괜찮단다. 나아질 거란다. '괜찮아', '괜찮아질 거야'란 말이 여기저기 남아돈다. 아주 달콤해 미칠 지경이다. 한 자리에 앉아 초코바 10개를 연속으로 먹는 기분이다. 그렇게 우리는 '괜찮다'라는 말에 흠뻑 취해 있다.
도대체 뭐가 '괜찮다'는 걸까?
스마트폰이 생기면서 '스마트'란 말이 흔해졌다. 흔하다 못해 오용까지 된다. 곳곳에 '스마트'라는 말을 갖다 붙이지만, '스마트'라는 뜻을 되새겨보면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갖다 붙인 그곳엔 정작 '스마트'는 없다. '괜찮다'라는 말도 그렇다. 뭐가, 왜? 괜찮다는 걸까? 우리는 시대를 탓한다. 나의 잘못 보단 세상이 잘못된 거라 쉽게 이야기한다. 시대가 바뀐 건 맞지만, 그것이 우리의 '노력하지 않는 이유'가 되어선 안된다. 또한, 나에게 일어난 일들이 안 괜찮은 일들일 수도 있다. 상황이 괜찮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런 것도 겪어봐야 성장한다. 노력을 얼마 했는지 모르지만, 그저 '난 괜찮을 거야'란 말을 읊조리며 주저앉아 있으면 안 된다. 우리는 스스로를 합리화시킬 때 '괜찮다'란 말을 자주 사용한다. 그러한 말을 찾아다닌다. 힘든 세태를 반영하여, TV나 책, 어느 미디어에서도 '위로'를 주제로 한 프로그램이나 글들이 넘쳐난다. 개개인의 어려움이나 가슴 깊은 곳의 아픔을 진심으로 헤아리기보다는 그저 달콤한 말을 뿌려대고 있을 뿐인데, 정작 아픈 사람들이 그 '위로'를 덥석 주워 먹는 모양새다. 궁극적인 해결책이 아닌데도 말이다. 그저 잠시, '괜찮다'라는 말을 듣고 그 달콤함에 취해 현실을 잊는 건데도 말이다.
안 괜찮아도 괜찮다!
괜찮을 거란 착각에서 깨어나자. 실행이 없는 긍정은 착각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입으로만 하는 긍정은, 괜찮을 거란 읊조림은 진정한 것이 아니다. 안 괜찮아도 괜찮을 수 있음을 받아들이자. 괜찮을 거란 달콤함에 빠져,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받아들이고, 내가 아닌 다른 것들을 탓하며 나를 돌아보지 않으면 그건 병이다. 점점 그저 '괜찮을 거야'란 착각에 중독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달콤함은 삶에 있어서 필요한 존재다. 가끔 느끼는 달콤함에 넘쳐나는 엔도르핀과 에너지는 그 누구도 부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달콤함에 중독되면 우리 몸은 병에 걸린다. 우리의 생각과 영혼이 달콤해지는 것이 아니라, 그저 망가지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이, 괜찮지 않음을 목도 하자. 무엇을 해야 할지 생각하자. 생각했으면 실천하자. 10개의 목표를 세우고 하나 이상이라도 한다면, 그러면 그때 비로소 '괜찮다'라고 말하자. 무어라도 한 나에겐 그러한 말을 할 자격이 있다. '괜찮다'라는 달콤한 간식을 주어도 좋다.
너무나 만연한 '괜찮다'라는 말에 착각이 들 것 같아, 스스로 쓰디쓴 글을 이렇게 써본다. 안 괜찮아도 괜찮다는 것을 받아들이기 시작하면, '괜찮을 거야'라는 달콤함에 무작정 빠지진 않는다. 테이블에 놓인 열 개의 초콜릿 앞에 서 있는 철없는 어린아이. 그 아이가 초콜릿을 그저 많이 먹는 것이 최고라고 생각했었다면, 이제는 그 초콜릿을 필요할 때, 즐기고 싶을 때 꺼내먹는 지혜를 갖추길 원한다.
바로, 내가 그럴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