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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Apr 03. 2017

마감과 신사

새롭게 출발해야 한다. 한 번도 '마감'에 상처 받지 않은 것처럼

결국 이번 달도 난 신사가 되지 못했다.


직장인에게 있어, 그것도 영업과 마케팅을 동시에 해내어야 하는 업(業)을 가진 내게는 '마감'이 잘 되는 날보다는 그렇지 않은 날들이 더 많다. 게다가 회사에서는 상당한 투자를 해서 해외 주재원으로 내보냈으니, 그 본전을 생각해서라도 주는 압박과 목표는 상상을 초월한다. 그러니, 잘 해야 본전이다. 어렵사리 그 목표를 초과라도 한다면 그 이후에 받는 더 높은 그것이 나를 기다린다. 이 바닥에서, 그렇게, 잘했던 건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다. 8~90년대 하얀 대롱이 달린 음주 측정기로 경찰이 운전석에 앉아 있는 사람들에게 그토록 크게 외치던 말이 생각난다.


"더, 더더더더더더더!!!!"


마감이라는 압박


'어떤 일의 정해진 기한이 끝남', '어떤 일을 잘 다루어 끝을 맺음'이라는 사전적 의미의 이 녀석은 돌이켜보면 그리 나쁜 존재는 아니다. 다만, 그럼에도 '마감'이라는 단어를 듣자마자 '압박'이라는 단어가 떠오르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뭐랄까. 생각뿐만 아니라 단 몇 초간 숨이 턱 막히는 실제적 느낌도 함께다.

조물주도 세상을 창조하다 스스로 6일째 되는 날에 마감을 하고 7일째는 쉬었다. 그렇게 최초의 '마감'은 휴식을 위한 것이었으며, 또 새로운 날을 맞이 하기 위한 것이었다. '마감'의 순기능이다. 자의든, 타의든 무언가를 끝내야 우리는 시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마감'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에 사람들은 각자의 그것에 대한 느낌이 다를 것이다. 나와 같은 비즈니스맨에겐 실적에 대한 부담일 것이고, 글을 쓰는 작가에겐 원고 송부를 목전에 둔 초조함일 것이다. 리포트를 제출해야 하는 대학생에겐 미리 챙기지 않은 후회일 것이며 집을 짓는 사람에겐 끝마무리이자 완성의 개념일 것이다.


마감과 신사


이번 달도 신사가 되지 못했다는 것에서, 대충의 분위기를 짐작했을 것이다. 마감을 앞둔 2주 전부터 시그널이 좋지 않았다. 내 맘대로 되지 않는 것들이 많다는 건 어른이 되어서 많이도 깨달아 왔지만, 그렇다고 그것을 항상 받아들일 수 있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눈에 뻔히 보이는 문제와, 아직 그것을 보고 하지 못하거나 오픈하지 못한 자는 마음의 발을 동동 구르기 일쑤. 결국, 분노와 화로 넘쳐흘러 함께 일하는 동료들에게 보이지 말아야 할 모습을 보이고야 말았다. 그리고 그 분노는 밖을 향하다 이내 스스로를 향한다. 결국, 내가 챙기지 않아서 일어난 일이라는 자책과 자기반성이 주를 이룬다. 그리고는 순순히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아니 스스로 걸어가는 모습을 떠올린다.




요즘은 '마감'의 순간을 더 쪼개는 것이 유행이다. 집요하다 못해 닦달하는 우리네의 정서로는 충분히 이해가 되는 대목이다. (문제는 내가 유럽에 있다는 사실이다. 나만 집요하고 닦달하고... 여기 친구들의 삶은 고즈넉하고 평화롭고 여유 있다.) 직장인이 되기 전에는 월과 분기, 반기와 연간 마감은 각오하고 있었으나 저성장의 시대라는 하 수상한 시절이기에, 그 마감은 '주(週)'를 지나 '일(日)'까지 쪼개어진다. 하루가 일주일을 만들고, 일주일이 한 달을 만드니 그것을 역으로 쪼개어 관리하면 더 나아질 것이라는 단순한 관리 논리에 의거한다. '마감'이 어느 하나의 성과의 결과라는 것으로 본다면, 그것은 직장인에게 '시험'과 같다. 그러니 매일을 시험 보는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 어디 그뿐일까. 높은 사람에게는 잘 하고, 동료와는 원만한, 후배에게는 귀감이 되어야 하는 이미지 관리와 사내 정치라는 실기 시험도 본의 아니게 매일 행해진다.


그러니 한 달에도, 하루에도 자존감의 롤러코스터는 그 높이와 떨어지는 정도를 가늠할 수가 없다.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은 기분도 순간이요,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은 그보다 더 짧은 찰나와 같다. 그래 봤자 사표 쓰거나 잘리는 거지...라는 진심이 1%도 섞이지 않은 한탄에 스스로를 위로하지만 당장 이 분위기를 전도할 수 없는 무기력함은 직장인으로서 내재화해야 하는 내공이다. 밥벌이를 잃는 두려움도 있지만, 자존심과 책임감에 대한 스스로의 다짐도 한몫한다. 그것이 알량하더라도 말이다.


마감의 순간에 어느 성인군자를 앉혀 놓은들, 그들은 이 상황을 바꾸거나 아니면 그저 받아들일 수 있을까? 난 그렇지 않다고 본다. 다만, 그들이 이곳에 없었고 그들의 직업이 나와 달랐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즉, 그들도 이 자리에서 동일한 압박을 받는다면 똑같은 인간임을 깨달았을 것이다. 그렇다고 내가 그들의 자리에 있어, 그와 같은 깨달음을 얻어 성인군자가 되었으리라고도 말하진 못하겠다. 아무튼, 이 자리에서 버티는 나와 세상 모든 마감 노동자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마감'은 끝이 아니다.

이것은 지금의 힘든 고리를 끊고 새롭게 출발하라는 신호다.

마감을 하고 새로운 시작을 한다고 해서 다음은 더 나으리란 법은 없지만, 잘 될 거란 '희망' 따위 하나 없으면 어쩌란 말인가. 물론, 여기에 스스로도 잘 해야겠다는 다짐 한 스푼도 필요하다. 그렇게 도전해야 한다. 하루를, 한 주를, 한 달을, 분기를, 반기를, 일 년을, 향후 수 십 년을.


마치, 한 번도 '마감'에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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