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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스타트 루틴은 글쓰기

<스테르담 페르소나 글쓰기>

by 스테르담

'시작'하는 데에는 생각보다 큰 에너지가 필요하다.

<생산자의 법칙> 저서에서, 나는 엔트로피 법칙을 이야기했는데, 이는 쉽게 말해 '무질서의 법칙'이며 무질서를 질서로 바꾸는 데에는 '에너지'가 필요하다는 걸 역설했다.


뭐든 시작이 가장 힘들다.

바꿔 말하면, '시작'에는 큰 의미가 있고, 거대한 에너지가 내포되어 있다.


아무것도 시작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가장 큰 문제점이자 공통점은, '어설픈 완벽주의'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건 누구보다 내가 잘 안다. 나는 지금도 어설픈 완벽주의의 함정에 간혹 빠지기 때문이다. 제대로 하지 않을 거라면 시작도 하지 말자는 간교한 마음은, 시작하지 못하는 자신을 정당화하기 위한 자가당착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세상의 혁명은 고사하더라도, 내 삶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데엔 이러한 쓸데없는 생각과 관념을 어서 빨리 버려야 한다.

버려도 버려도 다시 생겨날 것이니, 버리지 않으면 그것에 잠식될 것이니 이 부분을 늘 염두하고 살아야 한다. 자동차의 순간 에너지가 가장 크게 발화하는 지점은 바로 '시동'이다. 아무리 빠른 슈퍼카라 하더라도 시동이 걸리지 않으면 그 속도를 이룰 수 없고, 그 순간 자동차는 고철덩어리 무용지물로 전락한다.


다시 엔트로피 법칙, 그러니까 무질서를 이겨내는 방법으로 돌아간다면.

나의 해법은 '불편한 선택'을 하는 것이다. 귀찮고, 해야만 하는 것들. 회피하고 싶은 것들에서 '에너지'가 발생한다.


처음 글을 쓸 때, 그것은 나에게 너무나 불편했고 큰 에너지가 필요했다.

쓸 수 있을까, 써서 뭐 하나. 계속 쓸 수 있을까. 이러다 또 흐지부지 되겠지. 그럴 거면 시작도 하지 말아야 하는 거 아닌가?


그럼에도 썼다.

묵묵히, 간절히. 그리하여 나는 이제 글쓰기로 숨을 쉰다. 숨이 쉬어지지 않으면 글을 쓰고, 글을 쓰며 나는 숨 쉬고 있음을 느낀다. 타인과 세상이 주는 상처들은 글쓰기로 치유된다. 나 조차도 나를 다그칠 때가 많은데, 내가 오롯이 나를 다독이고 진솔하게 대화하는 시간도 글쓰기의 순간들에 있다.


글쓰기에는 큰 에너지가 필요하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글을 쓰면 에너지가 발생한다.


이제 내게 '글쓰기'는 '스타트 루틴'이다.

무언가 하기 싫을 때, 무기력할 때. 아무것도 의미 없이 느껴질 때. 불편한 선택을 해야 할 때, 에너지가 필요할 때. 나는 쓴다.


스타트 루틴의 수준이 높아진 것이다.

쓰는 삶에 익숙해지니, 이제 내게 글쓰기는 에너지가 드는 일이 아니라 오히려 에너지가 생성되는 과정이 된다.


이전보다 더 많은 것들을 이루고 있는 지금.

모든 것엔 이유가 있음을 절실히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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