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질문하는 자만이 살아남는다.

<AI시대 필수, 페르소나 질문법>

by 스테르담
상상하던 시대의 도래


인류는 끊임없는 상상으로 발전해 왔다.

'상상'은 '질문'을 기반으로 한다. 새처럼 하늘을 날 수 있을까? 지구를 벗어나 달에 갈 수 있을까? 멀리 있는 사람과 이야기할 수 있을까? 얼굴을 보며 통화할 수 있을까? 부족함 없이 먹을 수 있을까? 전 세계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을까? 운전하지 않고 목적지에 다다를 수 있을까?


농업에서 산업 사회로 전환한 1차 산업 혁명, 대량 생산 체제를 확립한 2차 산업 혁명, 디지털 기반의 정보 사회로 진입한 3차 혁명, 연결과 인공지능이 태동한 지금의 시대까지.

1차에서 2차 혁명의 시작은 100여 년이 소요되었지만 이제는 매일이 'N차 혁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침에 눈 뜨면 신 기술과 새로운 개념이 생겨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속도에 편승하여 사람들의 상상은 현실이 되고 있고, 질문하기가 무섭게 상용화되고 있다.


상상하던 시대의 도래는 점점 빨라지고 있다.

상상이 곧 현실이 되는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는 것이다.


AI 시대,
유토피아가 될 것인가 디스토피아가 될 것인가?


AI는 인류 상상의 정점이다.

사람이 할 일을 대신해 주는 편리의 극치. 편리를 넘어 AI와 로봇은 사람을 대체할 수준에 이르게 된다.


나는 솔직히 두렵다.

이미 많은 영화나 소설에서 AI시대의 끝을 '디스토피아'로 그려내고 있기 때문이다. 유감스럽게도, 나 또한 AI의 끝은 유토피아보다는 디스토피아 쪽이라는데 마음이 더 간다.


1999년 작 '매트릭스(The Matrix)', 2004년 작 '아이, 로봇(I, Robot)', 2008년 작 '월-E(Wall-E)'에는 내가 우려하는 바를 잘 보여준다.


바로 '생각의 외주화'다.


가짜 질문 속에 갇힌 인류가 시스템의 배터리가 되거나, 논리로 무장한 AI가 인간의 자유를 구속하고, 생각하기를 멈춘 인류를 거대한 소비 기계로 만들어 버린다.

AI는 인간을 다스리기 위해 폭력, 통제, 인식 왜곡등의 방법을 사용한다. 그러나 더 무서운 건 바로 '지나친 친절과 편의'다. 악마는 뿔 달린 무서운 얼굴로 다가오지 않는다. 악마의 가장 큰 무기는 바로 '달콤한 유혹'이다. 도파민을 제공하거나, 편리를 제공하여 중독되거나 게으르게 만드는 게 목적이니까.


AI가 다 알아서 해주는 세상, 사람은 할 것이 없다.

대신해줘도 되는 게 있고, 그러지 말아야 할 것이 분명 있는데 '생각'만큼은 후자에 속한다.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Cogito, ergo sum)'라는 말을 모르는 사람이 없는데, 사람들은 이미 AI에게 생각의 주도권을 넘겨주고 있다. 그러나 생각 이전에 데카르트가 말한 또 다른 문장 하나를 떠올려야 한다.


'나는 의심한다, 그래서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Dubito, ergo cogito, ergo sum)'.

우리가 의심하고 있는 동안 우리는 (의심하고 있는) 자신의 존재를 의심할 수 없으니까.


질문하는 자만이 살아남는다.


AI의 끝이 디스토피아가 되지 않으면 좋겠다는 실낱같은 희망은, 이처럼 인류 고유의 '존재 인식'으로부터 온다고 나는 믿는다.

'존재 인식'은 '생각'으로부터 오고, '생각'은 '질문'에서 온다. '질문'은 '의심'에서 오는 것이므로, 우리는 늘 스스로를 의심하여 그 존재를 인식해야 한다.


즉, AI시대에는 질문하는 자만이 살아남는다.


존재 인식의 순환 by 스테르담


<대신 뛰어 드립니다>란 소설을 쓴 적이 있다.

사람들은 특별히 제작된 슈트에 들어가 그냥 누워만 있으면 된다. 그럼 시뮬레이터가 운동하는 영상과 이미지를 만들고, 운동하는 만큼의 칼로리가 빠진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 사람들은 열광한다. 열광하며 슈트에 들어간다. 이후, 제조사는 이 인기에 힘입어 후속 신제품을 내어 놓는다. 그 제품의 이름은, <대신 고민해 드립니다>, <대신 살아드립니다>이다.


AI의 편리는 상상 이상이다.

존재 인식보다 편리가 더 우선하는 매커니짐을 AI가 만들어 가고 있으며, 우리는 귀찮고 불편한 것들을 뒤로하고 그저 특별 슈트에 들어갈 궁리만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AI 시대에, '질문'이란 키워드를 잡아챈 건 살기 위해서다.

'존재'한다는 건, '산다는 것'과도 상통한다. 우리는 숨을 한 시라도 쉬지 않으면 안 된다. 달리 말하면, 매 순간 존재를 인식해야 하고 또 의심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가 숨 쉬고 있다는 걸 꽤 자주 잊고 만다. 공기가 탁하거나, 산소가 부족할 때 우리는 비로소 숨 쉬기의 소중함을 알게 되고, 살고 싶다는 욕망이 생긴다.


'질문'은 곧 '존재와 자아'를 인식하고 확인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AI는 경쟁의 대상이 아니다. AI는 협력의 대상이다. 경쟁하는 순간, 사람은 AI에게 지배받을 확률이 매우 크다. 이미 우리는 AI에게 너무나 큰 의존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협력의 대상이 되는 순간, 우리는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다.


AI시대, 데카르트의 말을 인용하여 나는 나만의 생존법을 만들어내고자 한다.

또한, 이 글을 읽는 여러분에게도 그 생존법을 제시한다.


"Quaero, ergo supersum"

"나는 질문한다, 고로 살아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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