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르담 마음 에세이>
언제 어른이 되는 걸까.
스무 살이 되면? 운전을 할 수 있을 때? 직업을 가지면? 결혼을 할 때?
나의 생각은 이렇다.
어린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한, 바로 그 순간.
이미 어른이지만, 자신이 어른인지도 모른 채 감당할 수 없는 사회적 상처와 아픔을 꾸역꾸역 참으며 하루하루 살다 내뱉는 한숨과 같은 생각.
또 하나.
'책임'으로도 어른과 그러하지 않은 존재의 경계를 그을 수 있다. '책임'을 지닌 순간 어른이 되기 때문이다. 부모님을 여의고, 어린 동생을 보살피며 어렵게 살아가는 12살 소녀의 이야기를 TV에서 본 적이 있다. 그 아이의 생활 패턴과 눈빛, 집안을 꾸려가야 한다는 다짐을 볼 때 나는 그 아이가 그 누구보다 어른 같아 보였다. 실제로 그 아이는 어른이다. '책임'이란 운명을 묵묵히 받아내고 있었으니까.
우리 모두는 '먹고사니즘'에 종속되어 있다.
'먹고사니즘'은 '돈'과 연계되어 있다. 어른이 되기 전, 학생이란 신분도 결국 졸업과 함께 먹고살아야 한다는 책임의 유예를 누리는 존재일 뿐. 좋은 대학 가서, 좋은 기업에 취업하거나 사업 아이템으로 성공하라고 말하는 그 모두가 '잘 먹고, 잘 살기'위한 것임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결국, '책임'은 '돈'과 연계되어 있다.
책임을 진다는 건, 그만큼의 경제적 형편이 된다는 것이고.
'돈'이 있다는 건, '책임' 질 능력이 있다는 것이다.
사회적 시스템이 그러하다.
인류의 역사가 그것을 증명하며, 향후 우리의 역사 또한 그것에서 크게 벗어나진 못할 것이다.
벌기는 힘들고, 쓰기는 쉬운 세상이다.
SNS로 남의 삶을 엿보며, 우리가 느끼는 건 나만 조금 벌고 남은 펑펑 쓰며 살아간다는 상대적 박탈감이다.
남들은 돈 복사를 하는데... 내 돈은 피임을 했는지 늘어나지 않고.
나만 뒤처져 남들만 앞으로 뛰어 나가는 것만 같은 불안감.
하나의 동의도 없이, 월급이 들어오자마자 쉽게 사라지는 돈을 보면 허망하지만.
가족이 잘 먹고, 잘 살고 있는 걸 보면 그나마 위안이 된다.
돈은 쓰라고 버는 것이라는 걸.
새삼 느끼는 순간.
그래, 어른은 그저 돈 내는 직업인 거야.
사라지는 돈 들을, '책임'이라는 이름으로 바라보니 이전보다는 덜 억울하다.
어린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은 멈춰지지 않지만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