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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Apr 09. 2017

어른들 눈엔 안 보여요

응, 우린 너희밖에 안 보여

우리의 발을 밖으로 이끈 건 날씨였다.

서머타임으로 한 시간을 일찍 하는 요즘. 하루는 길고 날씨는 좋다. 하늘은 높고 구름은 유유하다. 태양은 그 온도를 더 높이니 바람은 쌀쌀해도 온기는 가득하다. 그러니, 집에만 있을 수는 없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어디라도 나가야 한다는 긍정적인 강박관념이 고개를 빳빳하게 든다. 주말 한글학교를 마친 아이들을 데리고 어디로 갈지는 정해지지 않았다. 아이들을 차에 태우고는 그저 내달린 곳은 이름 모를 어느 동네의 한적한 호수 근처. 와이프와 나는 벤치에 앉아 있거나, 근처 식당에서 차 한잔을 할 요량이었다. 물과 모래, 그리고 돌멩이가 있으면 아이들은 몇 시간이고 잘 놀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요란함에 고개를 돌렸다.

이미 같이 돌아본 그 어느 곳. 뭐 그리 호들갑인지, 별 기대하지 않고 간 그곳에서 나는 카메라를 꺼내 드는데 심혈을 기울였다. 분명 아이들과 둘러본 그곳에서 우리는 미처 보지 못한 무언가를 그제야 발견했다. 그것은 오리알이 있는 둥지였다. 물이 있고, 돌이 있고 날씨가 좋아 풍경이 좋다고 생각하고는 그저 돌아선 곳이었다. 하지만 아이들은 그 호기심을 쉬이 버리지 않았다. 돌 사이사이에 있는 벌레가 몇 마리인지, 돌멩이들의 모습이 어떠하고 모래를 파면 무엇이 있을지를 확인한다. 그러다가 어느 구석에서 발견한 그 오리 알들로 인해 녀석들은 호들갑을 떤 것이다. 물로, 그 호들갑은 우리에게도 분명히 전해졌다.


어른의 눈엔 안 보인다. 우리는 너희만 보나 봐.

평소에 보던 것을 의미 없이 스쳐 지나간다. 그러면서 얻을 수 있고, 깨달을 수 있는 것들을 놓쳐가는 느낌. 어른이 되어가면서 마음의 여유는 그렇게 없어진다. 삶이 팍팍하다. 하지만 그 팍팍함 속에서도 녀석들이 노는 모습을 보면 희망을 되새긴다. 몸은 아니지만, 마음의 피로도 어느 정도 풀린다. 그래서 그런 거다. 오리알을 섬세히 보지 못한 건. 굳이 변명을 하자면. 너희라도 발견하게 되어 다행이다.

녀석들은 따스하지만 조금은 따가운 햇살 아래서 한참을 놀았다. 와이프와 나는 선글라스를 끼고도 눈부심에 미간을 찌푸린 채로 앉아 있었다. 물론, 마음은 평안했다. 한 폭의 그림을 보는 것처럼. 녀석들의 마음에도 오늘이 그렇게 그림처럼 남아 나중에 언제든 꺼내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오리알을 발견해줘서 고마워. 덕분에 우리도 너희처럼 호들갑을 떨었네. 우리는 너희만 봐서 다른 건 안 보이나 봐. 그러니까 다음에도 너희들이 신기하다고 생각되는 건 오늘처럼 알려줘. 우리도 같이 보고 호들갑을 떨게. 너희와 같이 웃으면서 말이야. 우린 가족이니까.


Westeinderplassen, Netherlan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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