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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Apr 02. 2017

너의 태명은

우리가 서로 만나기까지의 그 안간힘

큰 바다를 거르며 헤엄치는 물개 한 마리.

헬리콥터 뷰로 바라본 그 바다는 거대했고, 또 푸르렀다. 물개는 더없이 매끄럽게 그 바다를 헤엄치고 있었다. 어느 다큐멘터리에서와 같이, 그 물개를 쭈욱 하늘에서 바라보며 따라갔다. 바다 한가운데 떠 있던 빙판 위에 물개가 올라가 드러누웠는데, 그때 보이던 작은 고추가 아직도 눈에 선하다. 그 물개의 눈웃음과 드러누워 부리던 장난기는 그렇게 현실이 되었다.


또 한 번은 풍성한 나무에 걸린 사과 하나가 탐스러웠다.

선악과도 같아 보이는 그 사과의 색은 눈이 부시게 붉었다. 만져보지도 않고 느껴지는 뽀득뽀득함이 마치 그림 속에 살아 움직이는 사과 같았다. 신기한 듯 만져보던 그 사과의 생글생글함과 귀여운 모양 또한 어느새 현실이 되어 다가왔다.




소위 말하는 태몽은 그렇게 나의 몫이었다. 두 아이의 그것 모두 말이다. 그래서 첫째의 태명은 '온눌이'가 되었다. 첫째 이후 막 1년이 지났을 때 둘째의 태명은, 그렇게 '능금이'가 되었다. '온눌'은 물개의 순우리말이고, '능금'은 사과나무의 열매를 뜻한다. 그 둘을 모두 뒤섞어 다재다능하고 외모와 마음 모두 착하고 예쁜, 그리고 멋있는 아이가 되길 바라는 마음이 가득했다.




뒤집힌 물개가 보여준 선명한 고추는 그 아이가 아들이라는 것을 더 이상 의심치 않게 했다. 성별을 알게 되었을 때에도, 그래서 놀라지 않았다. 하지만 둘째는 달랐다. 빨간 사과라는 것에서 나와 와이프는 둘째를 딸로 규정했다. 나중에야 알았지만, 사과가 여러 개 (복수)라면 딸, 하나 (단수)라면 아들일 가능성이 크다는 말이 있더랬다. 내 꿈속 사과는 분명 하나였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고 있었던 우리다.


둘째는 딸을 기대했던 터라 와이프의 배가 불러 아들이라는 성별 결과를 들었을 때, 와이프는 펑펑 울었다. 그 우는 모습을 보고 의사가 위로를 할 정도였다. 그게 미안해서였을까, 내가 둘째의 탯줄을 자르자마자 와이프는 둘째를 끌어안고 '미안해, 사랑해'를 수 없이 읊어댔다.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둘째는 계속해서 울어 젖혔다. 갓난아기들의 울음은 기쁨인지 슬픔의 그것인지 알 수가 없으니. 첫째의 탯줄을 자르던 그 순간은 이제는 가물가물하기도 하지만, 어째 어벙벙한 나의 모습은 거울에 비친 듯 생생하다. '아빠'와 '부모'라는 또 하나의 타이틀이 생긴 순간이니 어떤 모습으로라도 잊을 수 없을 수밖에.




아들 둘은 옹기종기 잘 지낸다. 둘 다 초등학생이 된 녀석들은 가끔은 잘 때도 손을 잡고 자는 기염을 토한다. 체스를 하면 항상 첫째가 이기고, 둘째는 항상 뾰로통해지긴 하지만 그 이상으로 싸우거나 속 썩이는 일은 좀처럼 없다. 물론, 나는 회사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기에 와이프가 당하는 수모(?)는 내가 다 알지 못한다. 그러고 보니 와이프 미간에 연애 때는 보지 못했던 주름이 생긴 것도 같다. 또 하나. '여자'로만 보아왔던 와이프에게서 '부모'와 '엄마'라는 모습을 발견한다. 더불어, 그것에 언제부터 그리 능숙했는지 놀랍기도 하다.


제 밥벌이하게 하려면 아직도 키울 날이 멀지만, 아직은 품 안에 녀석들이 좋기만 하다. 품 안에 두어 온종일 잔소리를 하는 와이프도, 막상 녀석들이 품을 떠날 그 날이 오면 서운해할 것이다. 그래서 나는 항상 와이프에게, 애들 키워 봐야 소용없다. 우리 둘이 잘 지내야 한다고 강조한다. 나도 아이들이 자라 품을 떠나면, 그 외로움과 허전함을 감당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든다. 부부란, 부모란 그런 것인가 보다. 원래 없던 녀석들이 생겼다가, 원래대로 되는 것일 텐데 말이다. 부부는 그래서 사랑해야 한다.




소중한 아이들과의 만남에 대한 반추는 즐겁다. 그 여정이 행복하고, 돌아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서로가 만나기 위해 안간힘을 쓴 것에 대한 보상이다.


언젠가 아이들은 물어올 것이다. 아빠 엄마는 우리 태몽 꿨어요? 우리 태명은 뭐였어요?

그러면, 난 기다렸다는 듯이 상기된 얼굴로 그 여정을 다시 떠날 것이다. 다음의 말로 운을 떼면서 말이다.


"너의 태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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