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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라는 여행
by 스테르담 Jul 12. 2017

네덜란드의 제주도 'Texel 아일랜드'

네덜란드스럽지 않은 이국스러움


진짜 네덜란드 이야기 출간 정보

교보문고Yes24알라딘인터파크



아침부터 비가 부슬거렸다.


출장을 다녀오느라 바빴던 시간을 뒤로하고, 마침내 가족들과 함께 할 시간. 주말엔 가족 여행을 계획한 터였다. 평소 같았으면 목적지를 정하지도 않고 훌쩍 떠나 몇 천 킬로 미터를 운전하며 국경 넘어 발길 닿는 곳으로 갔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제는 네덜란드에 있을 시간이 점점 줄어가므로 가능하면 네덜란드를 좀 더 곱씹기로 했다.

몇 군데 후보지가 떠올랐다. 갔던 곳. 또는 가보지 못한 곳. 갔던 곳 중에서는 부임하자마자 뭣도 모르고 다녀왔던 곳들이 주된 후보지가 되었다. 정신없이 가본 그곳들을, 다시 가면 좀 더 여유로운 마음으로 즐길 수 있을까 싶어서였다. 그래서 목적지는 Texel 섬으로 정해졌다. 2년 전인가 한 번 가봤던 그곳의 기억은 나쁘진 않았지만, 뭔가 아쉬움이 많이 남는 무엇이었기 때문이다. 뒤져보니 사진도 그다지 많이 찍지 않었더랬다.

아침의 부슬거리는 비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네덜란드에 좀 살다 보면 안다. 햇살이 비취다가도 비가 내리치고, 비가 거세다가도 갑자기 햇살이 거세지는. 아침을 부슬거린 비로 시작했으니, 뭐 오후에는 햇살이 부슬거릴 거란 밑도 끝도 없는 허세가 생겼다. 그러다가 비가 오면 비가 오는 대로, 그런 거지 뭐... 하는 마음가짐. 네덜란드의 참맛이다. 햇살이 뜰 거란 근자감에 아이들의 수영복을 챙긴다.


Texel은 섬이니 배를 타고 간다.


그리고 섬이니 우리의 제주도를 떠올려 본다. '섬'이라는 공통분모로 묶은 제주도와 Texel의 공통점은 몇 가지가 있다. 각 국가의 가장 큰 섬이라는 것. 그리고 이국적인 풍모를 가지고 있다는 것. 우리가 제주도를 선호하는 이유는 특유의 느낌과 경치 때문이고, 이는 반도에서는 느낄 수 없는 '이국적인' 모습에 기인한다. Texel 또한 여느 네덜란드의 곳곳과는 현저히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어디에나 있는 운하가 보이질 않고, 네덜란드 땅덩이에서는 매우 보기 힘든 (산이라고 까지는 못하지만) 높고 낮은 언덕이 군데군데 존재한다. 처음 왔을 땐 느끼지 못했는데, 네덜란드에 몇 년을 살다 다시 Texel에 와보니 확연히 '이국적인' 모습이 느껴지는 것이다.

물론, 다른 점은 있다. 먼저, 제주도는 한반도의 가장 남쪽에 있지만, Texel은 네덜란드 땅의 북쪽에 있다. 면적도 463 제곱킬로미터로 1,845 제곱킬로미터의 제주도보다 한참 작다. 제주도는 4계절을 모두 즐길 수 있는 곳이지만, Texel은 여름을 제외하고는 그리 추천하고 싶지가 않다.

그럼에도 Texel은 즐길 가치가 있다. 날씨 때문에 당황스러운 네덜란드도 한 여름의 햇살로 모든 것이 용서될 수 있듯이, Texel도 그렇다. Texel에는 비교적 큰 아쿠아리움이 있고, 일정의 돈을 내면 과일을 마음껏 따먹을 수 있는 농장이 있다. 섬이기 때문에 물론 바다가 있어 뜨거운 햇살 아래 상쾌한 물놀이를 할 수도 있고 풍성한 해산물을 즐기는 것도 또 다른 즐거움이다. 예전에 아쿠아리움과 농장을 다녀온 터라, 이번엔 Texel 곳곳을 다니기로 했다. 물론, 날씨가 좋아지면 주섬주섬 싸놓았던 수영복을 꺼내 아이들에게 입힐 요량으로.

긴 거리를 가지 않지만 배의 규모는 상당하다.
차를 배에 싣기 위해 줄을 서 기다린다.


왕복 37 유로면 차를 배에 실을 수 있다. 암스테르담에서 배를 탈 수 있는 Den Helder까지는 꼬박 1시간이 좀 넘게 걸린다. 약 90km의 거리를 넓게 펼쳐진 목초지와 풀을 뜯는 몇몇 유유한 동물들을 보며 내달린다. 조금 멀리 간다고 제법 어딘가 매우 낯선 곳을 여행하는 느낌이다. 네덜란드는 아침 12시 이전에 움직이면 매우 한적하다. 대부분은 점심시간이 지나고 나면 조금은 북적북적 대는 모양새다. Den Helder 항구에 도착한 시간은 오전 10시. 역시 그리 많지 않은 차들이 그 한적함을 말해주고 있었다.

배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 운전석에 앉았다.
드디어 배로 입장. 배의 1층과 2층을 모두 차량들로 채운다.
차곡차곡 차들이 정리된다.


차들이 질서 정연하게 줄을 맞춰 주차를 하면 차에서 내려 위로 오른다. 거기에는 넓은 대합실이 자리 잡고 있고, 갖가지 음식을 판다. 처음엔 뭣도 모르고 이것저것 시켜서 먹다가, 생각보다 빨리 도착한 탓에 허겁지겁 차로 돌아갔었다. Den Helder에서 Texel까지는 배로 15분 ~ 20분 정도만 소요되기 때문이다. 제주도와 비교하긴 했지만, 배를 타고 가는 여정만 본다면 인천 영종도를 간다고 하는 것이 맞겠다.

수평선 너머에 Texel 섬이 있다.
바다를 볼 수 있게 해줘서 좋았다. 아이들에게.
배는 파도를 가르고 나간다. 파도는 스스로를 갈라 길을 내준다.


도착하여 처음 간 곳은 식후경을 위한 식당이었다. 허기짐도 그렇지만, 아직까진 하늘이 마음의 문을 닫고 있어 햇살이 좀 보일 때까지 기다려 보기로 한 것이다. 대신, 식당이 해변가에 있어 아이들은 신나게 모래 놀이를 할 수 있었다. 물에 들어가진 못해도 바다가 있으니 그런대로 괜찮은 거였다. 물가로 가는 길. 역시 네덜란드 내륙과는 색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저 높이의 언덕만 있어도 풍경이 달라 보이는 걸 보면, 네덜란드 땅은 정말 평평한 것이다. 몇몇 언덕과, 이름 모를 낯선 풀들을 보니 문득 라바가 만연했던 아이슬란드의 어느 길가가 떠올랐다. 주위를 둘러보니, 아이슬란드의 어느 한 곳이라고 해도 큰 무리가 없을 정도였다.

높지 않은 언덕도 꽤 이국적으로 보일 정도.
드넓은 하늘과 이름 모를 풀들의 향연이 아이슬란드의 어느 곳을 떠올리게 했다.
비빌언덕이 있으니, 아이들은 신났다.


한국에서 어디를 가던, 음식을 고를 때 평균 이상을 보장받으려면 자장면을 시키라는 말이 있다. 어디나 맛이 비슷하고, 또 실패할 확률이 적기 때문이다. 네덜란드에서는 자장면 대신 햄버거를 시키면 된다. 언제나 평균 이상은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햄버거는 맛없게 먹기도 힘든 음식 중 하나다. 정히 입에 안 맞으면 빵만 먹거나, 고기만 먹거나, 안에 야채를 샐러드처럼 먹으면 된다. 그것도 안되면 최후의 보루 감자튀김이 있다.

다행히 평균 한참 이상의 햄버거가 나왔다. 빵도 괜찮고, 고기도 괜찮고. 치즈는 더 괜찮았다.
아이들은 밥보다는 저 멀리 모래와 바다에 마음을 더 빼앗겼다.


아직도 하늘은 꾸물꾸물거렸다. 바로 물에 뛰어들긴 힘드니, 예전에 가보지 못한 섬의 끝자락을 가보기로 했다. 거기에는 등대 하나가 있는데, 화려하진 않지만 그래도 랜드마크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곳이다. 등대는 배를 인도하는 중요한 역할과 더불어, 어디에 있든지 특유의 스카이라인을 만들며 분위기를 자아낸다. 마치, 우리 삶의 이정표를 찾은 것 마냥 안도감이 들면서.

등대와 주변 집들의 색깔맞춤
오르는 길이 정겹다.
반대편 해변. 해수욕은 금지된 곳이지만 갖가지 레포츠를 즐기는 사람들이 많다.
등대 올라가는 길. 요금이 싸진 않다.
등대 위에서 본 전망. 점점 하늘이 개인다.


등대를 올랐다 내려오니, 드디어 하늘이 밝게 개어 있었다. 따사로운 햇살을 본 아이들은 수영복을 달라며 신나 있었다. 바로 해수욕을 하려 했으나, 등대 근처 바다는 해수욕이 금지된 터라, 점심을 먹은 그곳으로 다시 발을 돌렸다. 아이들은 바다로 곧장 달려 나갔고, 나와 와이프는 아이들이 보이는 모래사장에 자리를 깔았다. 다행히 우산 하나를 가져와 따사롭다 못해 따가운 햇살을 조금이라도 피할 수 있었다. 바다로부터 불어오는 바람은 시원했다. 나는 잠시 누워 잠을 청했고, 와이프는 아이들에게서 한시도 눈을 떼지 않으며 엎드려 있었다. 아이들이 노느라고 내는 소리가 귓가에 달콤하게 들리는 듯싶더니, 어느새 나는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요 근래 들어, 가장 달콤했던 잠이었다.

우산 아래서 바라본 하늘에 취해 스르르 잠이 들었다. 꽤 달콤했던 잠. 요근래 들어.


네덜란드는 어느 도시/ 마을을 가도 센트룸이 있다. 교회나 광장, 또는 큰 쇼핑몰들이 있는 곳이다. Texel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센트룸으로 향하면 작은 교회도 있고, 무엇보다 해산물을 즐길 수 있는 맛있는 식당이 있다. 오랜만에 들른 해산물 식당에서는 맛있는 Texel 맥주와 블링, 하링과 생선 요리를 즐겼다. 그 맛은, 배고픔의 허기짐과 더불어 몸과 마음을 모두 한껏 위로하고도 남았다.

Texel Centrum
Centrum 중앙, 해산물 식당 앞의 광장과 교회
각종 해산물 요리와 상큼한 피클드 하링브레드


식사를 한 후에는 가족 모두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입에 물었다. 아이들이 어쩌면 하루 중 가장 행복해할 시간. 얼굴엔 웃음이 한가득이다. 많은 걸 해주진 못해도, 아이들이 마음껏 즐길 수 있는 아이스크림을 사줄 수 있다는 사실 하나에 스스로를 위로하고 또 더 잘하자고 마음을 다잡았다. 아이스크림 하나에도 이렇게 행복한 아이들이지만, 무엇을 해줘도 부족한 그 날이 언젠가 올 것임을 알기에.


돌아오는 배안에서 바라본 하늘은 무척이나 아쉽게 빛나고 있었다.

아직은 하루가 끝난 게 아님을.

족이라는 여행은 그렇게, 계속되어야 함을 속삭이듯이.

돌아오는 길. 하늘이 아쉽게도 여전히 빛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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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고, 노래하고, 강의하는, 나는 스테르담입니다.
ch.songson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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