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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Jun 11. 2017

생일이라는 쉼터

나이를 먹으면, 좀 더 거듭나야한다는 방정식

가족과 함께 살아가다 보면 생일을 맞이한다.

가족이라는 여행을 함께 하는 가족들에게, 생일은 그렇게 잠시 서로를 돌아볼 수 있는 쉼터가 된다. 1월의 와이프 생일을 지나 5월의 둘째 생일, 그리고 6월의 내 생일을 맞이했다. 10월에는 첫째 녀석의 생일이 있다. 아이들에게는 '좋은 아빠', '멋있는 아빠', '개념 있는 아빠'가 되고 싶어서 항상 생일에는 엄마에게 감사해하라고 가르친다. 너희가 태어날 때 엄마 배가 매우 아팠으니, 그걸 알라는 것이다. 그래서 아이들은 나의 세뇌교육에 길들여저 생일이면 와이프에게 쪼르르 달려가 말한다.


"엄마, 낳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좋은 아빠 코스프레를 하는 나는, 나의 어머니께 그렇게 말해본 적이 없다. 오늘에 이르러 양심에 찔렸는지, 아이들과 함께 어머니께 전화를 걸어, "할머니께 아빠 낳아 주셔서 고맙다고 이야기해."라며 간접적으로 감사함을 표시했다. 내 입으로는 도저히 그 말을 다 할 수가 없어서, 그렇게 아이들의 입을 빌린 것이다. 해외에서 주재 중이기 때문에 물리적으로 먼 거리가 하나의 구실이 되었다. 아, 그리고 문자로도 그것을 에둘러 표현하긴 했다.

아마, 이 녀석들도 그럴 날이 올 것이다. 지금에야 동글동글한 눈망울로, 뭣도 모르고 아빠가 시킨 말을 그대로 전달하는 것이 그저 기쁨이겠지만, 일상적인 말 한마디를 하더라도 대면대면할 그 날. 벌써부터 섭섭해야 하는 것인지는 미루어 생각하고자 한다. 내가 지금 어머니께 속시원히 그 마음을 다 표현하지 못하는 것을 구실 삼아. 즉, 난 그것을 섭섭해할 자격이 없다.




아이들에게 "아빠, 생일 선물로 뭐 줄 거야?"

라는 운을 떼어본다.


"음.... 우리들이요!"라고 당당하게 말한다.


"그건 이미 받은 것 같은데... 너희는 생일 선물로 많은 선물을 기대하잖아. 아빤 뭘 갖고 싶은 것 같아?"


한참을 생각한 아이들이 걱정스러운 눈빛을 되묻는다.

"혹시 비싼 건가요?"


이제는 '돈'에 대해 어느 정도 감이 있는 아이들은, 용돈을 최대한 아낄 수 있는 방법을 아는 것이다. 자신들이 나의 선물 아니냐며 우겨대는 모습이 귀엽기도 하지만, 속내가 들여다보이기도 한다. 그냥, 웃어넘겨야지 어찌할까. 이러한 모습마저도 귀엽고 예뻐 보이는 것은 부모의 마음 이리라. 결국, 'Big Hug'와 아이들이 지금까지 배운 피아노를 쳐주는 것으로 내 생일 선물은 합의되었다.




그리고 부모가 되니, 생일이 온전히 나의 날은 아니게 된다.

맞춤법이 몇 개 틀린 생일 축하카드. 그리고 아이들이 축하한다며 꼭 안아주기는 했지만, 우리는 서둘러 집을 나서야 했다. 둘째 녀석의 친구 생일에 초대받았기 때문이다. 생일이 주말이면 흔 발생하는 일이다. 나의 생일날, 다른 누군가의 생일 파티에 가야 한다니. 나이가 들면서 생일에 대한 별 감흥이 없고, 그리 특별한 날이 아니게 된무덤덤함에 감사할 뿐이다.




그럼에도 생일은, 가족이라는 여행 중의 쉼터다.

쉬고 돌아볼 수 있다. 내가 지구에 발을 디뎠다는 사실. 그리고 나는 어머니의 뱃속에서 나왔다는 것. 사랑의 결실이자, 태어나야 했다는 운명의 방점이라는 것을 잊고 살다가 그것을 뜨문뜨문 생각하게 해주는 휴게소와 같다. 그리고 가족이 한 목소리라 축하해주는 이 날은 즐겨야 함이 마땅하다. 꼭 재미있는 이벤트를 하지 않더라도. 온전히 나의 날이 아니더라도. 부모로서 역할을 해야 하고, 크고 비싼 선물을 받지 않더라도.


조카가 이모티콘으로 생일을 축하해왔다.

겹겹이 쌓인 케이크 위에 '또 나이 먹어?'라는 글자가 나를 웃게 했다.

누군가 말했던, 생일은 매년 거듭나는 것이라는 말도 동시에 생각났다.

나이를 먹었으면, 좀 더 성숙해져야 한다는 방정식인 것이다.


그런데, 어째 난 그 방정식에 자꾸 오답을 내어 놓는 것 같다.

답이 하나이지만은 않을 거라는 희망과 바람으로, 그렇게 오늘의 생각을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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