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테르담 Aug 05. 2017

[연재] 나의 글쓰기, 어떻게 시작할까? #2

글을 쓰는 이유

"글 쓰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이건 내가 굳이 통계치를 드러내지 않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쉽게 공감할 것이다. 1인 출판사의 활성화부터, 사람들로 하여금 글을 쓰게 만드는 플랫폼들도 다양한 시대. 글 쓰는 수요가 많아져서 이러한 현상이 발생한 것인지, 아니면 글을 쓸 수 있는 멍석을 깔아주어 사람들이 글을 더 많이 쓰는 것인지는 분명치 않다. 하지만 그 둘을 모두 아울러 이유를 댄다 해도 큰 무리는 아니다. 확실한 것은, 자기표현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글을 통해 그것을 표출하는 성향이 강해졌다는 것이다. 더불어, '글 쓰는 사람 = 직업 작가'라는 공식이 무너지고, 글을 쓰고 책을 내는 진입 장벽이 낮아진 것도 그 이유를 뒷받침한다.


멀리 보지 않아도 된다. 여기 '브런치'나 '퍼블리'같은 CMS (Contents Management System) 지향 회사들은 오히려 글쓰기에 관심 없던 사람들마저 '왠지 글 한 편 써보고 싶은' 욕구를 들게 하고, 실제로 사람들을 끌어 모으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글 쓰는 사람에게 '작가'라는 이름을 부여한다. 이름만 붙인다고 '작가'냐라고 할 수 있겠지만, 이 대표적인 두 회사는 '폐쇄형 CMS'라는 것에서 신뢰를 구축한다. 즉, 파워블로거나 트위터처럼 누구든지 어떤 글을 올리는 방식이 아니라, 가입과 함께 '작가' 신청을 하고 심사를 거쳐 승인이 나야 글을 쓸 수 있는 것이다. 이로써, 광고글이나 상식 밖의 선정적인 Contents가 득실 할 수 있는 것을 사전에 방지한다. 그래서 '브런치'나 '퍼블리' 같은 곳에서 글을 쓴다고 하면, '작가'로 불리는 것이 영 어색하지가 않다. 더불어, '작가'라는 호칭을 달게 된 '글 쓰는 사람들'은 전문성과 개성을 확보하고, 자신의 글에 대한 질(Quality)를 높이려 노력하게 되는 선순환이 일어난다.


그렇다고, 블로거나 SNS의 글쓰기에 대한 역할을 폄하하는 것은 아니다. 엄밀히 보면, '브런치'나 '퍼블리'도 큰 범주에서는 블로그로 분류된다. 다만, 앞서도 말했지만 이것을 '오픈'하여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기회를 줄 것인지, 아니면 '폐쇄 (또는 부분 오픈)'하여 그 질(Quality)을 올릴 것인지에 대한 차이다. 전통적으로 사람들은 벽이나 종이에 글을 써왔고, 디지털 시대에 접어들면서부터는 게시판이나 개인 홈페이지에서 글쓰기를 해왔다. 그러니 기존의 게시판이나 블로그도 사람들이 글을 쓰게 하는데 큰 역할을 해왔고, 분명 이것들은 지금 양질의 플랫폼을 있게 한 초석인 것이다.




글 쓰는 사람이 많아졌다는 것은, 그만큼 읽는 사람도 있다는 뜻이다. 읽는 사람도 글 쓰는 사람 이상으로 개성이 다양해지고, 원하는 콘텐츠가 다양해졌다. 그래서 아예, 자신이 글을 쓰는 경우도 많다. 자신의 관심분야를 찾아보니 없어서, 내가 해도 이것보다는 잘 할 것 같아서. 즉, 글 쓰는 사람과 읽는 사람을 굳이 구분할 필요가 없는 시대다. 경계가 사라지면서 생기는 양자 간의 충돌은 그래서 시너지를 발휘한다. 더 쓰고, 더 읽고. 더 생산하고 더 소비하는 모양새다. 그리고 여러 회사가 (국내에는 앞서 이야기한 '브런치'와 '퍼블리', 해외에선 '미디움' 등이) 생겨나고 투자가 이루어진다는 것은 결국, 자본주의 사회에서 비즈니스 모델로의 발전이 가능하고, 다양한 콘텐츠가 엄청나게 확장될 것이라는 것을 예고한다.


우리는 이미 이와 유사한 패턴을 목격한 바 있다. 이미지와 동영상을 주로 하는 SNS가 그렇다. 인스타그램이나 유튜브가 대표적이다. 사람들이 자신을 표현하고자 하는 욕구가 전통적으로 '글'을 통해서였지만, 디지털 기기가 발달하면서 우리는 어느샌가 '읽는 것'이 아닌 '보는 것'에 대한 욕구가 더 강해졌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이미지와 동영상 콘텐츠를 만들고, 소비하고 있다. 이 또한 생산자와 소비자가 딱히 구분이 되지 않는다. 없으면 내가 만들고, 내가 더 잘 만들도록 노력하고, 남이 만든 것도 재미있게 소비하고 공유한다. UCC (User Created Contents)라는 이름으로 시작한 이러한 현상에, 사람들은 콘텐츠를 자유롭게 만들어 공유하고 소비했고 어느 특정 회사들은 세계에서 (돈을 끌어모으는데) 으뜸 가는 기업이 되었다.

그러고 보면 최근 글쓰기의 현상은 이미지와 동영상 콘텐츠가 난무하는 이 세상에서 '아차, 글쓰기도 있었지'하고 무언가를 돌이킨 모양새다. 'User Created Contents'가 꼭 이미지와 동영상이라는 법은 없었는데 말이다. 또는, '글쓰기'는 이미지와 동영상보다는 '좀 더 상위의 콘텐츠'라고 생각했거나, '당장 돈이 되지 않는/ 산업화하기 어려운' 콘텐츠로 분류되어 왔을 수도 있다. 출판업계의 불황도 그렇고, 전자책 시장이 활성화되었다고는 하지만 기대만큼 확장되지 않았다. 전자책이냐 종이의 질감이냐에 대한 판단 유보로, 불황이라는 오프라인 서점이 꾸역꾸역 유지되어 나아가고 있는 아이러니한 현상 속에서 '글쓰기(Text)'를 사업모델로 확신을 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다. 이미지나 동영상은 그것을 잘 다루는 유튜버나 인스타그래머에 의해 쉽게 양산되지만, 글쓰기는 아직도 유명 작가에 의한 영향이 더 크고, 특히 일반 사람들은 웬만한 논리와 필력 그리고 콘텐츠를 가지지 않고는 주목받기가 힘든 부분도 그 어려움을 이해할 수 있는 요소다.




이미 '글쓰기'는 대세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렸을 적에는 '독서를 많이 해라'라는 말만들어 왔는데, 이제는 '글을 쓰고, 책을 써라'라는 말이 전혀 어색하지가 않다. 이미지나 동영상보다는 늦게 반응이 왔지만, '콘텐츠'로서의 매과 파급력에 대해서는 누구라도 인정을 한다. 그러니 투자가 몰리고, 공급과 수요도 팽창하고 있는 것이다.


글쓰기가 왜 대세가 되고 있는지, 참여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지를 다시 정리해보면 아래와 같다.


첫째, 글쓰기는 사람의 본능이다.


엄밀히 말하면, 사람은 '기록'의 본능을 가지고 있고, '글쓰기'는 이것의 수단이다. 고대 벽화에서도 볼 수 있듯이 인류는 무던히도 무언가를 '기록'하려 애썼다. 해서 처음 문자가 없었던 시절엔 형상이나 그림으로 자신들의 이야기를 써왔고, 기어코 문자를 만들어냈다. 문자는 인류의 역사를 구분한다. 문자가 있기 전 선사 시대를, 그래서 우리는 당시 사용하였던 도구를 기준으로 시대 구분한다. 결국, 문자가 만들어지고 글이 쓰여지면서 인류의 역사기록은 활발해졌다. 기록을 남기는 것이 인간의 본능이지만, 그 본능을 가장 잘 충족시켜준 것이 바로 '글쓰기'인 것이다.

그렇게 오래전을 돌아보지 않더라도 '글쓰기'는 사람들의 본능을 조력한다. 자신의 생각이나 개성, 논리와 의견을 피력하기에 가장 좋은 수단이기 때문이다. 예전엔 전문 작가들의 전유물이라 생각했던 그 '글쓰기'가 어느새 우리도 할 수 있는 것이 된 것이다. 이미, 보통 사람들도 이미지와 동영상으로 자신을 표현하는 법을 배운 사람들은, '글쓰기'도 하나의 콘텐츠로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글쓰기?', 슈어 와이낫!" 이 된 것이다.


둘째, 콘텐츠의 시대다.


"자신만의 콘텐츠가 있어야 한다"라는 말이 어느새 부턴가 통용되기 시작했다. 유명 강사뿐만 아니라, 직장 내에서도 선배들이 후배에게 조언을 줄 때 심심치 않게 사용하는 말 중 하나다. 콘텐츠의 사전적 의미를 보면 1) (논문, 연설, 예술 등이 표현하는) 내용, 2) (개념의) 내용, 3) 용량, 4) 함유량, 5) 부피를 말한다. 뭔가 확실하지 않고 모호한 개념을, 우리는 쉽게 사용하고 있다.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는 모양새다. 그만큼, 콘텐츠는 우리 삶과 밀접하게 맞닿아 있으며, 또 광범위하게 많은 것들을 아우르고 있다는 말이다. 자신의 성향이나 개성, 색깔 등을 가지라는 말이 곧 '자신만의 콘텐츠'를 가지라는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이미 언급한 CMS (ContentsManagemnet System) 서비스들이 나오면서 개인들의 콘텐츠 개발을 돕고 있다. 돈이 된다는 이야기다. 사람들이 알아서 콘텐츠를 생산, 소비, 공유하며 발생하는 경제효과와 그 현상은 이미 모두가 목도했다. 다양한 욕구와 개성을 수용하고 또 그것을 수렴함으로써 발생하는 재미있는 현상이자 시대의 조류다.

기존의 일방적인 광고나 정보 전달도, 콘텐츠라는 가면을 쓰지 않고는 더 이상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이제는 사람뿐만 아니라, 사물이나 광고 등도 자신만의 콘텐츠가 있어야 하는 시대다. 이러한 상황에서 '글쓰기'는 이미지와 동영상 콘텐츠에 지친 사람들에게 새로운 '콘텐츠'로 떠오르고 있다. 그리고 그 콘텐츠가 자리를 잘 잡게 되면, 개인의 값어치를 한껏 올려주는 역할도 하니 바야흐로 콘텐츠의 시대라 아니 말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셋째, 고(高) 퀄리티 콘텐츠에 대한 니즈가 있다.


현시대는 정보의 홍수 시대다. 수많은 콘텐츠와 정보, 안내들이 도처에 널렸다. 이 정보에 노출된 우리는 무기력하게 그것들을 받아들인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에 와 소파에 털썩 앉아 휴대폰을 무심코 보다 보면, 어느새 두세 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각종 이미지와 동영상, 자극적인 제목들의 기사들까지. 한 번 빠져들면 헤어 나오기가 여간 쉽지 않다. 또한 SNS가 우리 생활 깊숙이 자리매김하면서 짧은 텍스트나 선정적인 이미지, 동영상의 콘텐츠를 소비하다 보니 그것에 대한 한계를 느끼게 되었다. 무언가를 소비하긴 했는데, 머리나 가슴에는 남는 게 없다. 유용할 것 같아 집중해서 본 각종 Tip이라는 콘텐츠도 보긴 봤는데, 그것을 실생활에 써먹은 적은 거의 없다는 걸 깨달았을 땐 많은 시간이 흐른 뒤다.

그러니 사람들은 소비를 하더라도 뭔가 '남는 소비'를 하고 싶은 욕구가 커졌다. 스쳐 지나가는 대량의 정보가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콘텐츠를 천천히 그리고 보다 깊숙이 보고 싶은 것이다. 먹을거리에 대한 걱정이 필요 없는 지금, 각종 인스턴트식품이나 당류가 많이 든 음식을 허겁지겁 닥치는 대로 먹는 것에서, 이제는 건강을 위해 양질의 음식을 골라먹어야겠다는 이성적 판단이 선 것이다. 정신이나 마음의 건강도 이와 다르지 않다. 천천히 곱씹고 맛을 느끼며, 그것이 내 몸과 영혼에 미치는 영향을 느끼는 '고(高) 퀄리티 콘텐츠'에 대한 니즈가 생겨난 것이다.


넷째, 인문학의 중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Technology is not enough. It's technology married with liberal arts, married with the humanities, that yields us the result that makes our heart sing."
"기술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우리의 가삼을 뛰게 하는 것은, 인문학과 결합한 기술이다."

- 스티브 잡스 -

아직도 그가 말한 '인문학'에 대한 논쟁은 뜨겁다. 경쟁사인 한 한국 회사에서도 이를 의식해 소프트웨어 개발 직군에 인문학 전공자를 채용했다는 웃지 못할 일까지 벌어졌다. 물론, 큰 성과가 났다는 이야기는 들려오지 않는다. 혹자는, 연구원이 인문학 서적을 읽으면 뭔가 깨닫고 좋은 기계나 UX를 만들 수 있을 거란 착각에 빠지기도 했다. 이를 놓치지 않고, 각 서점가는 '인문학' 광풍이 불어, '인문학'을 정의 하기도 전에 필수로 읽어야 하는 '인문학' 전집을 패키지로 내놓기도 했다. 어찌 되었건 스티브 잡스는 기계에 사람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기계와 기술이 사람을 향해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은 큰 착각을 한 것이고.

큰 혼란을 준 건 사실이지만, 그의 말은 기술 지향의 시대에 아날로그적인 감성과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경종을 울리면서 '인문학'계 사업을 부흥시켰다. 덕분에, 책을 읽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더불어 쓰는 사람도 늘어났다고 보인다. 이미지와 동영상으로 점철된 콘텐츠의 생산과 소비에 '글쓰기'가 비집고 들어올 수 있었던 큰 이유 중 하나라고 본다. 인문학은 말 그대로 사람을 공부하는 것으로, 그것이 꼭 학문일 필요는 없지만 세세한 것을 들여다보고 고민하는 것. 그리고 생각하고 느껴보고 곱씹는 것이 필요함을 주지시킨다. 그런 면에서 '글쓰기'와 '독서'는 인문학과 참 잘 어울린다. 그러니, 인문학의 중요성이 대두되고 있는 요즈음 '글쓰기'와 '독서'는 함께 나날이 성장하고 있다.

더불어, 저성장 시대에 접어들면서 각박해진 우리의 답답한 속내를 표출할 수 있는 또 하나의 방편으로 '글쓰기'는 큰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본다. 마음대로 안 되는 세상, 여러 가지 콘텐츠로 표현하고, 그들의 바람을 양산하는 데 있어서 '글쓰기'는 제약이 크지 않다. 이미지나 동영상을 꾸미기 위한 기기나 편집 프로그램도 필요 없다. 그저 쓰기만 하면 된다. 이러한 수순을 통해 상상의 나래를 핀 사람들은 해리포터나 반지의 제왕과 같은 신세계를 만들어내며,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주고 스스로도 성공이라는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유명 작가의 생각과 상상이, 많은 사람들의 상상력에 자극을 주고 마음을 얻어낸 것이다. 아마도 이 작가들은 자신뿐만 아니라, 사람들을 면밀히 관찰하고 공부했을 것이다. 인문학적으로다가.


다섯째, 진입 장벽이 낮아졌다.


'독서'는 우리에게 있어 미덕이었다. 책을 많이 읽으면 읽을수록, 얻어지는 것이 많고 그것을 통한 사색은 삶의 지혜를 풍부하게 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요즘은 '읽는 것'에만 그치지 않고 스스로 책이나 콘텐츠를 생산하는 시대에 접어들었다. 더 이상 '글쓰기'가 작가의 전유물이 아니게 된 것이다. 물론, 여전히 명망 있는 작가들의 영향력은 대단하지만 그것이 영원할 것이라곤 누구도 100% 장담하지 못한다. 전업 작가로 살아가기가 쉽지 않은 시대이기도 하기에, 수많은 작가들은 다른 일과 글쓰기를 병행하기도 한다. 이와 반대로 다른 일을 하는 사람들이 글쓰기를 병행하게 되는 일도 특별한 일이 아닌 시대. 즉, '글쓰기'라는 진입 장벽이 허물어지고 있는 것이다. 1인 출판사의 탄생. 개인이 손쉽게 전자책을 출판할 수 있는 플랫폼은 이미 도처에 널려있다. 그러니, 누구라도 마음만 먹으면 글을 쓸 수 있고, 그것을 양산하여 유통시킬 수 있다. 물론, 이러한 양적인 팽창이 질적인 수준을 보장할 수는 없지만, 누구라도 '글쓰기'를 할 수 있는 시대가 된 건 개인적으로 고무적인 일이라 생각한다.




다시, 글 쓰는 사람들이 많아진 이유를 살펴보았다. 나 또한 그 사람들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스스로 돌아보면, 자의적으로 글쓰기를 시작한 부분도 있지만 시대가 변해 도움을 받은 부분도 적지 않다. 예를 들어, 내가 10~20년 일찍 태어났었다면, 내 이름으로 된 책 한 권이 있다거나 꾸준히 글을 쓰는 지금의 모습은 상상하기 힘들었을지 모른다. 어쩌면 시대를 잘 타고난 것일 수도 있겠지만, 시대의 조류를 잘 활용하는 것은 각자의 의지와 삶의 방향에 달려 있겠다. 도처에 깔려 있어도 그 기회를 잘 살리지 못했던 내가 이제 간신히 찾아낸 기회가 '글쓰기'이기에, 이제는 삶을 조금은 더 의미 있게 바라보는 시선이 생겼다는 위로에 잠시라도 기쁜 이유다. 그래서 이 이야기를 풀어쓰고 있다. 스스로 정리하고 기억하기 위해. 내 글이 누구에게라도 도움이 되도록.




'직장내공' (나를 지키고 성장시키며 일하기!)

'오늘도 출근을 해냅니다' (생각보다 더 대단한 나!)

'아들에게 보내는 인생 편지' (이 땅의 모든 젊음에게!)

'진짜 네덜란드 이야기' (알려지지 않은 네덜란드의 매력!)

매거진의 이전글 [연재] 나의 글쓰기, 어떻게 시작할까? #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