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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Aug 21. 2017

자동차 싣고 기차로 달리면 크로아티아 [Intro]

이번 여름, 일상의 고단함을 잠시 잊게 한 또 다른 고단함


- 여정 -


[Intro] 여행은 고단함이다.

암스테르담 To 독일 뒤셀도르프 (228km)

독일 뒤셀도르프 To 오스트리아 비엔나 (차 싣고 12시간 기차 이동, 침대칸 1박)

오스트리아 비엔나 To 크로아티아 자그레브 (373km)

크로아티아 자그레브 To 크로아티아 플리체비체 (130km, 1박)

크로아티아 플리체비체 To 크로아티아 스플리트 (242km)

크로아티아 스플리트 To 크로아티아 흐바르 섬 (차 싣고 2시간 배 이동, 2박)

크로아티아 흐바르 섬 To 크로아티아 스플리트 (차 싣고 2시간 배 이동)

크로아티아 스플리트 To 크로아티아 자다르 (159km, 1박)

크로아티아 자다르 To 슬로베니아 피란 (381km, 1박)

슬로베니아 피란 To 슬로베니아 포스타냐 동굴 (75km)

슬로베니아 포스타냐 동굴 To 슬로베니아 블레드 호수 (105km)

슬로베니아 블레드 호수 To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 (400km, 1박)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 To 독일 뒤셀도르프 (차 싣고 12시간 기차 이동, 침대칸 1박)

독일 뒤셀도르프 To 암스테르담 (228km)



사실, 여행은 고단함이다.


우선 어디로 갈까부터가 머리를 지끈하게 한다. 어렵게 시간을 내어 가는 것이니 신중해야 한다. 또한 여기 유럽 친구들처럼 3주나 긴 시간을 다녀올 수는 없다. 고로, 길지 않지만 임팩트 있어야 하고, 다녀와서 후회는 없어야 한다. 거리는 물론 동선도 중요하다. 아이들에게도 적합한 곳. 이러한 것들을 모두 고려하다 보면 수많은 조건에 목표지는 쉽게 바뀌기도 한다. 미리 끊어 놓지 않으면 가격이 천정부지인 성수기 비행기표 비용도 그것을 좌지우지하는 중요한 요소중 하나. 임기가 정해진 주재원 신분이다 보니, 여기 있을 때 많은 곳을 가보자는 욕심이자 간절함도 한 몫한다. 

목표지가 정해지고, 바쁜 나를 대신해 와이프가 가족여행 준비를 한다. 동선을 짜고, 이동 경로를 파악. 호텔을 예약한다. 호텔을 예약할 땐 아이들을 위해 요리를 할 수 있는 아파트를 선호한다. 만약을 대비해, 무료 취소가 가능한 곳을 두어 개 잡아 놓는다. 가능하면 도심 중심지에 위치해 한 번 자리를 잡으면 걸어서도 여기저기를 둘러볼 수 있는 목 좋은 곳. 그것을 조사하고 거리를 가늠하여 최종 결정하는 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나는 바쁘다는 핑계로 그 고단한 여정에 같이 못한 것을 운전으로 보답한다. 비행기표가 비싼 것도 있지만, 두 아이들과 함께 하는 여행이다 보니 짐이 적지 않다. 더불어, 식욕이 왕성한 아이들을 위해서는 작은 밥솥과 한국음식, 식수를 대응할 많은 것들이 필요하다. 이것을 차에 싣고 여기저기 다니면 참 든든하다. 물론, 때에 따라 1천 ~ 4천 킬로미터를 운전해야 하는 고단함은 내 몫이지만 나 하나 힘들어서 가족들이 좋다면야...

개인적으론, 오랜 시간 운전을 하면서 무아지경에 빠지고, 그것으로부터 오는 사색과 인사이트를 즐기는 편이라 가능한 일이기도 한다.

아이들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고단하다 못해 매일을 곯아떨어지곤 한다. 고사리 같은 손과 통통한 다리로 유럽 여기저기를 휘저어 다니는 것이 만만치 않다. 유럽 여행의 대부분은 걷기로 시작해, 걷기로 끝난다. 하루에도 몇 번씩 아이스크림과 간식으로 우리에게 그 고단함을 호소하지만 와이프와 나는 강경하다. 원래 유럽 여행은 이렇게 하는 것이라는 조언과 함께 하루에 단 한 번의 간식만 허용한다. 그러니, 아이들 입장에선 얼마나 힘들까. 아무리 멋진 경관이나 유명한 곳을 봐도, 아직은 그 땅바닥에 놓인 작은 돌멩이나 화단 한 편에 있는 벌레들에 관심이 많을 나이이니 말이다. 나중에 찍어 놓은 사진을 보고, 아 내가 여기도 갔었구나...라는 깨달음이 언젠가는 오겠지만.

가족 여행은 이렇게 고단하다. 시작부터 과정, 그리고 현장에서도 말이다. 그런데, 재밌는 건 와이프도 그렇고 아이들도 그렇고, 다녀오면 또 가고 싶어 아우성이다. 그 고단함이 채 가시기도 전에 말이다. 그러니, 같은 고단함이라도 같은 것이 아니다. 하나의 고단함이, 다른 고단함을 어루만지는 아이러니. 하지만, 여행이 길어질수록 일상의 고단함이 그리워지는 웃지 못할 일도 벌어지는 것이 그 두 고단함의 매력이다. 그러고 보면, 먹고사는 고단함을 미워하기만 할 것이 아닌가 보다.


자동차 싣고 기차로 달려 크로아티아!


그 긴 고단함의 끝에 결정한 이번 여름 가족여행은 바로 크로아티아였다. 언젠가 차를 몰고 베네치아를 돌다가 바로 옆동네(?)여서 넘어갈까 했던 적이 있었지만, 돌아올 길이 엄두가 나지 않아 포기했던 곳. 이번에도 차를 가져가지만, 그 온 동선을 운전하자면 시간과 체력이 남아나지 않을 것 같아 '기차'를 동선에 넣었다. 이제껏 시도해보지 않은 것이라 의미도 있었고, 그 기차 안에서 하루를 잘 수 있다는 것이 매력적이었다. 차는 기차에 싣고, 우리 가족에게 주어진 침대칸에서 아이들이 마냥 신나 할 거라는 건 타보지 않고도 알 수 있었다.

기차는 독일 뒤셀도르프에서 출발해, 오스트리아 비엔나에 도착한다. 비엔나에서 출발해 크로아티아로 가는 길에는 슬로베니아 국경을 지나야 한다. 수많은 국경을 넘어봤지만, 왠지 긴장이 되는 것이 이번 여행이 그리 순탄하지만은 아닐 거라는 예감을 들게 했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보았을 때, 순탄하지 않았던 일들이 정말 많았지만, 어쩐지 그것마저 추억이 되는 건 여행의 매력일 것이다. 와이프와 아이들 함께 그 순간을 돌아보고 웃으며, 그때를 이야기하는 것이 어쩌면 우리가 가족여행을 통해 받은 선물일지 모른다. 이것이 우리 가족에게 깊이 각인되어 언제라도 꺼내볼 수 있는 이야기가 되었으면 한다. 차곡차곡 하나하나 쌓아가면 그것이 살아가는 데 있어 큰 도움이 되고, 그렇지 않더라도 쓰디쓴 인생의 여정을 걷다가 잠시 꺼내어 즐길 수 있는 휴식처가 되길 바라고 바라본다. 다시, 이 여정을 써 나아가는 것이 어쩌면 고단함일 수 있겠지만... 그때를 생각하며 기분이 좋은 건 가족여행이 남긴 또 다른 선물. 일상의 고단함을, 여행의 고단함으로 달래고, 다시 일상의 고단함이 그리워 돌아온 이 곳에서, 여행에서의 고단함을 곱씹는 즐거운 고단함. 달리는 기차의 좁은 침대에 몸을 구겨 넣고 온 몸으로 기차의 진동을 느끼며 잠을 설쳤던 그때가 떠오르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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