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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Aug 27. 2017

둔탁한 강렬함, '쾰른'

융단폭격이 만들어낸 아우라

처음 쾰른에 도착해 만났던,
현실적이지 않은 모습의 쾰른 대성당을
아직도 난, 잊을 수 없다. 


그것은 2010년 겨울의 일이었다. 독일 출장 중이었고, 주말에 머무르고 있던 뒤셀도르프에서 가깝다는 이유로 기차에 몸을 실었었다. '쾰른'이라는 이름이 유명해서, 잘은 몰라도 머릿속에 새겨진 이름이라 갈만하다고 판단한 이유도 있었다. 기차에서 내려 처음 쾰른 대성당을 맞이한 나는 분명 얼어있었다. 다시 기억을 되새겨봐도 그렇다. 분명 고개를 들고는 한동안 굳어 있었다. 뭔가, 비현실적인 비주얼이 눈 앞에 놓인 느낌. 그리고 보는 이로 하여금 압도당하게 만드는 그 무엇. 가우디의 건축물은 신기해서 쳐다보지만, 쾰른 대성당의 아우라는 사람을 초라하게 만들었다. 죄인이 된 것 같았고, 감히 함부로 눈에 담아서는 안될 것 같은 분위기. 검게 그을린듯한 외벽과 함께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솟은 두 첨탑은, 천사와 악마를 동시에 보는듯한 느낌이었다. 면죄부를 팔았다면 나는 샀을지도 모른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압도당했기 때문이다. 물론, 원래 유럽 대부분의 큰 성당은 그런 용도로 지어졌다. 예술가치도 있지만, 결국 신의 위대함과 사람의 초라함을 위해서. 너무나 강렬해서 인상 깊었지만, 그 강렬함은 환하거나 상쾌한 것이 아니었다. 무겁고 둔탁했다. 그 검은 아우라는 주위 날씨마저 좌우하는 듯했다. 햇살이 비추어도 마침내 주위는 무겁고 둔탁하기 이를 데 없었으니까.


하지만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이 기괴하지만 멋지고 웅장한 모습을 꼭 우리 가족에게 보여주고 싶다고. 출장을 많이 다니면서 본 멋있는 것들, 먹었던 맛있는 것들은 꼭 가족과 함께할 리스트로 옮겨놓았던 터였다. 마침, 유럽 주재원이 되었고, 마침내 가족들은 2014년 봄에 이르러 쾰른 대성당을 마주했다. 그것이 벌써 3년 반 전의 일이다. 부임 초기에 정신없이 달려갔던 터라, 아마 가족들도 기억이 가물가물 할 것이고 뇌리에서 잊히지 않는 그 둔탁한 강렬함을 다시금 느껴보고 싶었다. 더불어, 당시에는 광각 카메라가 없어 한 앵글에 그것을 담지 못한 것도 발길을 이끈 이유 중 하나였다. 다시 찾은 쾰른은 여전히 그 강렬함을 가지고 있었다. 다만, 몇 년 전 유모차가 필요했던 아이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쑥쑥 커져 있었다.


'융단폭격'이 만든 아우라, 쾰른 대성당


2차 세계 대전. 쾰른은 초토화가 되었다. 쾰른 대성당은 문화유산이라는 명목 하에 타겟에서 제외되었다. 6만여 명의 사람은 죽어나가는 동안에. '밀레니엄 작전'은 1080대의 폭격기가 20분 만에 한 도시를 불바다로 만들었다. 이를 지휘한 영국 공군 해리스 장군은 '융단폭격'이라는 개념을 만들어냈다.

쾰른 대성당의 색은 원래 하얀색이었다. 건축재료가 '조면암'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폭격 이후, 온 도시를 뒤덮은 불바다와 연기는 하얀색의 쾰른 대성당을 심하게 그을러 놓았다. 어쩌면, 죽어나간 6만 명의 사람들의 절규가 벽에 묻어난 것일지도 모른단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 강렬함이 내게는 둔탁하게 다가왔는지도.

13세기 중세에 착공되어 19세기에 이르러 완공된 그 규모만으로 압도적이고 강렬하지만, 실제로 만나봐야 하는 그 검은 아우라는 설명만으론 어렵다. 그저, 현실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이다. 주위 배경과 잘 어울리면서도 너무나 독보적이어서, 어쩌면 내 두 눈이 합성을 자체적으로 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거기에서 오는 아우라가 말 그대로 장난이 아니다. 쾰른 대주교 콘라트가 자신의 권력과 재력을 과시하기 위해 독일 최초의 고딕 양식으로 지었다니, 소기의 목적은 달성했다고 볼 수 있다. 그 과시욕으로 인해, 위대한 역사적 교회가 탄생했다는 것도 아이러니 하지만 사실, 대부분의 휘황찬란한 유럽 성당들의 탄생 배경은 크게 다르지 않다.

융단폭격이 만들어낸 아우라
쾰른 성당의 뒷모습
내부 또한 웅장하다. '조면암' 원래 색인 흰색이 남아있다. 쾰른 성당이 원래 흰색임을 알 수 있다.
주변 날씨도 좌우하는듯한 그을린 아우라.
남녀노소 비눗방울엔 반응한다.
거대한 건축물 앞에서도 아이들은 사소한 것에 더 재미를 느낀다.


거대하면서도 소소한 면모


융단폭격을 받아야 할 정도로 큰 도시지만, 쾰른의 구석구석은 의외로 소소한 자락을 가지고 있다. 쾰른 성당에서 조금만 걸어가면 구 시가지의 중심지에 있는 Old Market과 함께 시청사가 자리 잡고 있다. 비현실적인 모습의 거대한 성당을 가지고 있지만, 역시나 사람 사는 곳임을 일깨우는 곳. 시청사 앞 광장 앞에는 사자가 토해내는 분수대가 자리 잡고 있고 주변으로는 노천 카페와 레스토랑이 왁자지껄한 생동감을 만들어낸다. 

빵이 맛있는 곳. 허기를 달래기 딱 좋다.
쾰른 성당은 두 눈으로 봐도 잘 안 믿긴다. 그저, 누군가 합성해 놓은듯하다.
구시가지 올드마켓 광장
시원한 물줄기를 토해내는 사자상
쾰른 시청사 건물.


그 골목골목으로 들어서면, 이미 중세 시대다. 화려하지 않지만 알록달록한 집들이 굽이굽이 이어진다. 검게 그을린 쾰른 성당과 대조적이어서 매우 이채롭다. 다시 골목을 지나면 확 트인 라인강이 모습을 드러내고, 라인강을 마음과 눈에 담으며 휴식을 취하는 많은 사람들이 보인다. 마침, 우리 가족도 강가에 자리 잡고 앉아 바람과 탁 트인 시야, 햇살을 즐겼다.

골목을 지나 나오면 탁 트인 전경이 라인강을 마주한다. 알록달록한 건물들이 검게 그을린 쾰른 성당과 대조적이다.
강가에서 휴식하는 사람들. 가족들.


라인강을 가로질러 쾰른의 큰 두 곳을 잇는 'Hohenzollern' 다리에는 프랑스 퐁네프 다리의 몇 십배에 달하는 사랑의 자물쇠들이 달려있다. 녀석들은 감탄사를 연발하지만, 아직까진 정확히 그 자물쇠의 의미를 모른다. 물론, 설명은 해줬지만 자신들이 나중에 사랑하는 누군가와 그 자물쇠를 걸게 될 거라는 걸 아직 실감하지 못한다. 그저, 다이얼식으로 된 자물쇠 몇 개를 풀어보려 애쓰다 내 잔소리를 듣는다.

쾰른 성당 뒷편으로 가면 다리를 걷게 된다.
다리에서 바라본 라인강
중앙역이 자리잡고 있어, 기차를 타고가면 쾰른 성당이 바로 보인다.


몇 년 전 왔던 것과 같이, 우리는 시티투어 열차에 올랐다. 이 시티투어 열차는 쾰른을 한 바퀴 둘러보는데 안성맞춤이다. 라인 강변은 물론, 골목골목을 다니는 것이 참 인상 깊다. 출발은 쾰른 성당 앞에서 하지만, 갈수록 보이는 소소함이 정겹다.

골목골목을 굽이굽이 돌아간다.
열차가 돌아오는 길에 보이는 쾰른 성당




가족들에게 꼭 보여주고 싶었던 곳 중 하나. 가슴 벅차게 봤던 그것을 가족들이 봤으면 하는 바람이 이루어져 기쁘기도 하고, 한결 마음이 가벼워지기도 했다. 교회 내부에서 또 아이들은 촛불에 불을 켜고 각자의 소원을 빌었다. 첫째 녀석에게 넌지시 물어보니 갖고 싶은 장난감 말고도 가족을 위해 기도했다고 한다. 아이들이 커가는 건, 키만이 아니다. 언젠가 어리다고만 생각했던 녀석들이 키는 물론 마음의 크기나 생각의 깊이가 내 것을 능가하는 날이 올 것이다. 더 이상 키울 것이 없다는 상황을 맞이하면 내 기분이 어떨까.


갑자기, 둔탁하고 강렬한 생각이 머리에 스쳤다.

여전히 고사리 같은 아이들의 손을 잡아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도.



쾰른 대성당을 보며 떠오른 다른 두 가지 성당이 있다. 하나는 바르셀로나의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과 아이슬란드의 할그림스키르캬다. 


먼저, 가우디의 미완성작인 사그라다 파밀리아와는 규모나 지어진 시기가 어떻게 다른지 궁금했다. 가우디의 사그라다 파밀리아와 대면했을 때도 느낀 강렬함은 잊을 수가 없었고, 두 거대한 교회가 내 머릿속에 당당히 서 있곤 했기 때문이다. 그 거대함에 압도당한 것은 다르지 않았지만 쾰른의 기괴한 그것과는 다른 사그라다 파밀리아는 외계인지 지은 것 같은 느낌. 심해 동굴 안에 들어와 있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었다.

지어진 시기를 보면 쾰른 대성당이 먼저다. 1248년에 시작하여 1880년 완공되었고, 사그라다 파밀리아는 1883년에 시작해서 가우디가 40년을 매달렸지만 미완성이다. 1926년 가우디가 죽었을 때가 가장 완성된 모습이라고 할 수 있겠으나, 바르셀로나는 그 완성의 시기를 2026년으로 보고 있다. 길이는 약 150미터로 쾰른성당과 사그라다 파밀리아가 비슷한 수준이다. 폭은 86.25미터로 쾰른 성당이 26미터 정도 넓지만, 높이는 사그라다 파밀리아가 약 170미터로 10미터 정도 더 높다.


아이슬란드의 금방이라도 날아올라갈 것 같은 할그림스키르캬 교회가 생각난 이유는 전체적인 색깔 때문이다. 만약 융단폭격의 그을음이 없었다면 쾰른 대성당도 이와 같지 않았을까. 반대로 할그림스키르캬가 그을음을 간직했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 색깔이 바뀐 두 교회가 머릿속에 나란히. 아니, 사그라다 파밀리아까지 세 개의 교회가 머릿속에 나란히 있게 된 이유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도 기괴한 느낌이 들지만, 그 분위기는 쾰른과 다르다. 거대함만이 공통분모다.
할그림스키르캬의 겉 색깔이 융단폭격 전의 쾰른 성당의 빛을 상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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