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테르담 Sep 21. 2017

여행의 고단함을 어루만져준 자다르의 석양

우리 가족에게 위로가 된 그 순간


- 여정 -


[Intro] 여행은 고단함이다.

암스테르담 To 독일 뒤셀도르프 (228km)

독일 뒤셀도르프 To 오스트리아 비엔나 (차 싣고 12시간 기차 이동, 침대칸 1박)

오스트리아 비엔나 To 크로아티아 자그레브 (373km)

크로아티아 자그레브 To 크로아티아 플리체비체 (130km, 1박)

크로아티아 플리체비체 To 크로아티아 스플리트 (242km)

크로아티아 스플리트 To 크로아티아 흐바르 섬 (차 싣고 2시간 배 이동, 2박)

크로아티아 흐바르 섬 To 크로아티아 스플리트 (차 싣고 2시간 배 이동)

크로아티아 스플리트 To 크로아티아 자다르 (159km, 1박)

크로아티아 자다르 To 슬로베니아 피란 (381km, 1박)

슬로베니아 피란 To 슬로베니아 포스타냐 동굴 (75km)

슬로베니아 포스타냐 동굴 To 슬로베니아 블레드 호수 (105km)

슬로베니아 블레드 호수 To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 (400km, 1박)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 To 독일 뒤셀도르프 (차 싣고 12시간 기차 이동, 침대칸 1박)

독일 뒤셀도르프 To 암스테르담 (228km)



여정의 중간


여행에 있어 여정은 말 그대로 여행의 과정이다. 그 과정의 중간 지점에 이르러 우리는 자다르를 만났다. 여정의 중간에 이르니 고단함이 몰려왔다. 출발할 때의 여행에 대한 활기찬 기대가 조금씩 사라지면, 고단함이 금세 그 자리를 꿰찬다. 여전히 모든 것이 새롭고 즐겁게 다가옴에도 불구하고. 앞으로의 여정도 기대되었지만, 소설책을 중간까지 내리 읽었을 때의 기분처럼 기지개를 켜고 잠시 쉬고 싶었다.

스플리트에서 보낸 하루는 만만치 않았다. 북적거리는 거리 곳곳은 뜨거운 태양과 열기가 가득했다. 그곳을 떠나 159km를 달린 우리는 마침내 자다르에 도착한 것이다. 도착한 시간은 완벽했다. 자다르는 석양으로 유명한 곳이니 숙소를 찾고 주위를 좀 둘러보면 석양을 맞이할 시간. 지치고 힘들었지만 때에 맞춰 무사히 도착한 그 사실 하나에 우리 가족은 감사해하자고 마음을 모았다.


여전히 덥고 습한 공기는 우리를 지치게 했다. 공영 주차장에 차를 세운 뒤, 짐을 주섬주섬 내리고는 숙소를 찾았다. 바닥이 맨들맨들한 것이 인상적인 자다르의 골목골목은 활기찼다. 상점들이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있었고 그 번화가 중심에 우리가 묵을 아파트가 자리 잡고 있었다. 처음엔 들어가도 되나 싶을 정도로 일반 주민이 사는 곳처럼 보였는데, 아니나 다를까 아파트 계단을 하나 둘 올라갔지만 리셉션은 없었다. 예약자에게 전화를 거니, 어눌한 영어로 자기 아들을 보내겠단다. 몇 분이 지나자 한 청년이 계단을 오르다 우리를 보고는 고개를 갸우뚱하고 지나쳤다. 숨을 헐떡이며 다시 내려온 그 청년이 우리 이름을 묻더니 환하게 웃음 지었다. 어머니의 심부름을 잘 완수해내겠다고 다짐한듯한 그 순수한 청년은 아주 친절하게 이것저것을 설명해줬다. 이제 그만 나가도 될 것 같았는데, 그 청년의 설명은 멈추지 않았다. 고맙기도 하고 당황스럽기도 한 그 시간이 지나고, 우리 가족은 자다르를 느끼기 위해 밖으로 나섰다.

숙소를 나와 골목을 지나면 자다르의 종탑이 보인다.


숙소 앞 번화한 골목, 맨들맨들한 바닥을 훑으며 조금만 걸으면 자다르 종탑과 교회가 나온다. 그 앞 공터에는 수천 년 전부터 내려왔을 법한 유적들이 제각각 놓여있다. 사람들은 그곳에서 서슴없이 올라앉아 사진을 찍는다. 그 공터를 지나 길 하나를 건너면 바로 바다와 마주한다. 굳이 어디로 걸어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사람들은 질서 정연하게 움직인다. 사람들이 향하는 곳이 곧 석양을 보게 될 곳이라는 걸 쉽사리 짐작할 수 있었다. 바다는 아직 환하게 빛나고 있었지만, 잠시라도 다시 고개를 들어보면 하늘은 점점 빠르게 석양과 함께 붉어지고 있었다.

아직까진 밝은 자다르의 바다


자다르의 석양, 태양은 뜨는 존재인가, 지는 존재인가


출생 입사(出生入死). 우리는 태어나 살아가는 것일까, 아니면 서서히 죽어가고 있는 것일까. 동이 터서 쨍쨍한 햇살이, 여운을 남기며 사라지는 그 모양이 우리의 삶과 다르지 않아 보였다. 정오의 태양처럼, 우리는 언젠가 삶의 정점을 찍는다. 그 전후가 아마도 살아가는 순간과, 죽어가는 시점을 정의할 것이다. 물론, 그 시점은 육체적이고 생물학적인 기준이 되거나, 마음가짐에 따른 정신적 것으로 대체될 수도 있겠다. 떠오르는 태양에 염원을 담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곳 자다르에서는 붉은 석양에 사람들의 염원이 담긴다.


눈에 띄게, 빠르게 붉어지는 저쪽 하늘이 사람들을 그곳으로 불러 모았다. 여기저기 행위 예술을 하는 사람부터 이것저것을 팔고자 하는 사람들. 그리고 구경하는 분주한 시선들이 자연스레 모였다. 삼삼오오 모여 마치 일출을 보듯이 가지런히 정렬하여 서서히 져가는 해를 차분히 바라본다. 그 붉은 배경을 바탕으로 새 한 마리는 날아가고, 통통배 하나가 물살을 가른다.

자다르의 하늘이 갑자기 색을 바꾸기 시작한다.
마치 일출이라도 보는 것처럼, 사람들은 저마다의 염원을 담는다.
석양의 반대편을 보면 아직도 환하다. 아무리 져가는 해라도, 그 빛은 여전하다.
붉은 배경을 뒤로, 새 한마리가 날아간다.


마침내 해가 진다. 사람들은 박수를 친다. 저마다의 들뜬 기분들이 하루를 수고한 해를 그렇게 보내줬다. 역시나 아쉬워하는 기운이 느껴지지만, 사람들은 모두 안다. 태양은 여전히 불타오르고 있고, 우리 지구는 한 바퀴를 돌아 기어코 새로운 태양을 맞이하게 될 거란 걸. 반복될 일이지만, 그날의 오늘을 산 우리네에게 그 순간은 평생 없을 시간이란 것도 잘 알고 있다. 그러니 박수가 절로 나왔을 터.

마침내 진 태양에게 사람들은 박수를 보냈다.
아쉬움에 아이들은 바다 아래 있는 물고기와 소라들을 구경한다.


파도가 치면 칠수록 어디선가 피리 소리가 들려왔다. 누군가 그것을 분다는 느낌은 아니었다. 불규칙한 그 소리는 마침 파도의 부침과 같다는 느낌이 들기에 충분했다. 조금 지나다 보니 바닥에 그 소리를 내는 구멍이 여럿 있었다. 파도에 따라 노래하는 구멍. 지나가던 사람들이 신기한 듯 바닥에 귀를 대본다.

오묘한 피리소리가 파도의 움직임과 함께 들려온다.
저마다의 숙소로 돌아가는 사람들


자다르의 석양은 아름다운 위로였다.


그렇게 자다르의 석양은 우리 가족의 고단함을 어루만졌다. 낮에 덥고 힘들었던 것을 알고나 있었다는 듯이, 차분하게 내려앉은 석양이 그랬다. 마음 한 편이 가벼워지면서, 온몸의 긴장도 풀린 그때. 태양이 막 수평선 조금 위에 걸쳐져 주변을 붉게 만든 그 순간은 일출인지 석양인지 구분이 안되었다. 어쩌면 우리의 삶과 죽음도 하나일지 모른다. 삶은 본능이고, 죽음은 운명이지만 그 둘 다를 짊어져야 하는 것이 우리네 숙명이기 때문이다.




어디에나 일출과 석양은 있고, 바다와 바람이 있지만 우리 가족이 맞이했던 자다르의 석양은 평생 잊지 못할 또 하나의 추억이 되기에 충분했다. 다시 한번 더, 고된 여정이었지만 알맞은 시간에 도착하여 자다르의 석양을 볼 수 있었음을 감사해한다. 그리고 그것을 잊지 말라는 듯이, 잠자리에 들 때쯤 축제를 즐기는 한 무리들이 요란하게 북을 치며 거리를 활보했다. 소리에 놀라 호기심이 가득한 아이들은, 창문으로 머리를 내밀어 손을 흔들었다. 순간의 기억이 우리 아이들에게 그 언젠가 힘들 때 꺼내먹으면 위로가 되는 사탕과 같은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 자다르의 석양. 한 밤중의 축제 소리. 그리고 가족이라는 여행을 기억하며.

빼꼼히 밖을 쳐다보던 아이들은 어느새 쌔근쌔근 잠들었다.


* 글쓰기의 본질을 전하는 사람들, 팀라이트가 브런치 글쓰기 강의와 공저출판 프로젝트를 런칭 했습니다. 많은 관심과 함께 주변의 글쓰기가 필요하신 분들께 추천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팀라이트 클래스 안내] 브런치 글쓰기 x 공저 출판


[종합 정보]

스테르담 저서, 강의, 프로젝트

[신간 안내] '퇴근하며 한 줄씩 씁니다'


[소통채널]

스테르담 인스타그램 

매거진의 이전글 재건되었어도 괜찮아. 베를리너 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