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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Oct 01. 2017

둘째 아들과 반 고흐 뮤지엄

오늘, 너와 나의 자화상

[참고 글: 첫째 아들과 반 고흐 뮤지엄]


사실, 첫째와 둘째를 구분 지어 데이트할 요량은 아니었다.


지난번 첫째 녀석만 데리고 반 고흐 뮤지엄을 다녀온 것은 갑작스러운 둘째 녀석의 구토 증세 때문이었다. 당시에 집에 돌아온 우리에게 온종일 구토로 수척했던 둘째 녀석은 우리에게 무얼 했냐며 질문을 했었다. 반 고흐 할아버지 그림 보고 사진 찍고 밀크셰이크와 햄버거를 먹었다는 말에, 녀석은 아파서였는지 섭섭해서였는지 힘 없이 늘어졌었다. 물론, 그다음 날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이 둘째 녀석은 활기차게 하루를 시작했던 걸로 기억한다.


둘째 녀석에게 데이트 신청을.


요즘은 둘째 녀석에게 좀 더 마음이 쓰이는 것이 사실이었다. 잘 자라주고 있어 큰 걱정은 없지만 어쩐지 조금은 허약해 보이기도 하고, 민감해 보이기도 하고. 첫째 녀석에게서는 볼 수 없었던 모습을 보면서, 이제는 아이들을 잘 알고 있다는 자만심의 콧대가 꺾이고 말았다. 첫째 녀석의 옷과 신발을 물려주듯이, 그저 첫째 녀석에게 했던 대로 둘째 녀석을 똑같이 키우려 했던 것은 역시나 무리였다. 둘째 녀석은 첫째 녀석과 한참 다르다. 그 둘의 성격을 두고 어느 누가 좋다고 말할 수 있는 성격의 것은 아니지만, 아주 다른 것은 분명하다. 마치 내 맘 속에 있는 내향성과 외향성이 그 비율을 두고 치열하게 움직이는 것처럼, 두 녀석의 성격은 같은 곳을 향하고 있지 않다. 다행인 건 그래도 두 녀석이 서로 잘 놀고, 아직까지는 다정하게 손도 잡고 다니는 우애를 뽐내기도 한다는 것이다. 어찌 되었건, 둘째 녀석의 첫째와는 다른 새로운 모습을 본 후 둘째 녀석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좀 더 세심하게 챙겨주지 못한 것 같다는 느낌.


그래서 불쑥 나도 모르게 물었다.


"둘째야, 우리 내일 아빠랑 둘째만 반 고흐 할아버지 뮤지엄 갔다 올까?
예전에 형이랑 아빠랑 둘이 갔다 온 것처럼?"


이게 뭐라고 순간의 마음이 조마조마했을까. 둘째의 대답이 나오기까지는 1초도 안 걸렸던 것 같은데, 순간의 느낌은 어느 이성에게 데이트를 신청하고 허락을 기다리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녀석의 "네!"라는 힘찬 대답을 듣고 난 후에도 얼마간은 그 느낌이 생생했다.


둘째 녀석과의 대화


첫째 녀석에게 했던 것과 같이 나는 앞 조수석 자리의 시트 높이를 최대한 올렸다. 역시나 앞에 탄 둘째 녀석은 싱글벙글이다. 항상 뒤에 앉았다 앞에 앉았으니 또 다른 세상이 펼쳐진 것이다.


"둘째야, '행복'이란 말 알지? '행복'이 뭘까?"

어린 녀석이지만 그 마음은 어떤지 알고 싶었다.


"아.. 그거 뭐 우리, 잘 지내는 거 뭐....."


"아, 우리 가족 같이 잘 지내는 거?"


"네!"

녀석이 배시시 웃는다.


"그럼 둘째는 뭘 할 때 가장 행복해?"


"어... 불고기 먹을 때랑 비디오 게임할 때요."


우리 가족이 같이 여행 갔을 때나, 함께 모여 밥 먹는 게 가장 행복하다는 대답을 기대하기는 아직 어려운 것이다. 더불어 비디오 게임은 친구 집에 가서 몇 번 한 것인데, 그것을 행복 리스트에 넣었더니 귀여우면서도 서운했다. 그래도 엄마가 해준 불고기를 먹는 게 행복하다고 하다니 기특하다고 해야 할까. 근데 생각해보니 내가 녀석의 행복을 좌우할 순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녀석이 행복하다면 행복한 거지. 물론, 그렇다고 비디오 게임기를 사줄 생각은 전혀 없다.


달리는 차 안에서 우리는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밖에는 비가 오고 있었고, 약간 쌀쌀한 날씨였지만 자동차 안의 히터가 기분 좋은 온도를 유지해 주고 있었다. 흘러나오는 클래식 음악은 주위 풍경과 잘 어울렸고, 녀석의 웃음은 참 예뻤다. 어느 데이트와 다름없이 달달한 시간. 글쎄, 아들이 아빠와 이런 기분을 낼 수 있다는 게 평생 몇 번이나 가능할까?




박물관 투어는 성공적으로 마쳤다. 0층에서 시작해 3층에서 끝나는 코스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첫째 녀석과 함께한 것이 올해 1월이었는데, 아마도 2월인가 3월부터 박물관 내에서 사진 찍는 것이 금지되었다. 아직도 그것을 모르고 사진을 찍으려 시도하면 여지없이 저 멀리 뒤에서 "NO Picture!"라는 안내인의 소리가 들려온다.

생각보다 둘째는 반 고흐에 대해 많이 알고 있었다. 다행히 학교에서 좀 알려준 모양이다. 그리고 여러 번 와본 경험도 한 몫했겠다. 둘째는 나와 같이 반 고흐의 아몬드 나무 그림이 가장 좋다고 했다. 이 그림은 반 고흐가 동생 테오의 아들, 즉 조카가 태어난 것을 축하해주기 위해 정신 병원에서 그린 그림이다. 감금된 상태에서 그렸어야 했기 때문에 창 밖으로 몸을 내밀어 아래서 위로 바라봤다. 그래서 아름다운 아몬드 나무는 파란 하늘만을 뒷배경으로 하고있다. 이 그림을 선물로 받은 조카 빈센트는 후에 반 고흐 뮤지엄의 설립자가 되었다. 그 다음으로 둘째가 좋아한 그림은 해바라기였다. 반 고흐 할아버지는 노란색을 좋아했다고 하니, 자기도 그렇다며 상기된 얼굴이 개구져 보였다.


그림들을 둘러보고 우리는 기념품 샵으로 향했다. 여기서 오늘 같이 오지 않은 형이랑 엄마 선물을 사자고 하니 녀석은 신나게 샵으로 달려갔다. 형을 위해선 새로운 액체 볼을, 엄마를 위해서는 반 고흐의 아몬드 나무 문양을 머금은 곰인형 하나를 골랐다. 와이프에게 물어보니, 예전에 아이들 앞에서 이 곰이 예쁘다고 했던 적이 있다고 한다. 녀석, 나중에 연애할 때 좀 잘할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박물관을 나서 이제는 예전에 첫째와 갔었던 햄버거집으로 향했다. 아마 둘째 녀석이 가장 기대한 시간이 이때였는지도 모르겠다. 맛있는 햄버거와 밀크셰이크를 가장 많이 부러워했던 둘째의 눈빛이 아직도 생생하기 때문이다. 마침 적당한 허기도 찾아와 둘째는 엄지 손가락을 치켜세우며 밀크셰이크와 햄버거를 순식간에 없애 버렸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연신 하품을 하는 녀석은 잠이 들락말락거려했다. 손에는 형과 엄마에게 줄 선물이 꼭 쥐어있었다. 차 안에는 행복의 기운이 가득했다. 마음속 깊은 곳에 언젠가 이 행복의 기운이 잘 간직되어서, 열매를 맺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 열매가 살아가는데 큰 위안과 희망이 되기를.


예약된 시간에 무사히 도착. 각자 자신의 뮤지엄 카드를 들고 입장
형을 위한 선물로 고른 액체 볼.
엄마가 예쁘다고 했던 것을 기억하고 고른 반고흐의 아몬드나무 문양 곰인형
반고흐 뮤지엄 바로 옆에 있는 국립중앙 박물관 그리고 Iamsterdam City Let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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