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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Oct 17. 2017

흐바르(Hvar)가 나에게 천천히 가라고 말했다. #1

크로아티아 스플리트에서 흐바르 섬으로 가는 길


- 여정 -


[Intro] 여행은 고단함이다.

암스테르담 To 독일 뒤셀도르프 (228km)

독일 뒤셀도르프 To 오스트리아 비엔나 (차 싣고 12시간 기차 이동, 침대칸 1박)

오스트리아 비엔나 To 크로아티아 자그레브 (373km)

크로아티아 자그레브 To 크로아티아 플리체비체 (130km, 1박)

크로아티아 플리체비체 To 크로아티아 스플리트 (242km)

크로아티아 스플리트 To 크로아티아 흐바르 섬 (차 싣고 2시간 배 이동, 2박)

크로아티아 흐바르 섬 To 크로아티아 스플리트 (차 싣고 2시간 배 이동)

크로아티아 스플리트 To 크로아티아 자다르 (159km, 1박)

크로아티아 자다르 To 슬로베니아 피란 (381km, 1박)

슬로베니아 피란 To 슬로베니아 포스타냐 동굴 (75km)

슬로베니아 포스타냐 동굴 To 슬로베니아 블레드 호수 (105km)

슬로베니아 블레드 호수 To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 (400km, 1박)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 To 독일 뒤셀도르프 (차 싣고 12시간 기차 이동, 침대칸 1박)

독일 뒤셀도르프 To 암스테르담 (228km)



플리체비체에서 스플리트로 도착한 건 햇살이 어스름하던 어느 때였다.

여전히 뜨거운 공기는 주위를 감싸고 있었다. 하지만 눈앞에 펼쳐진 바다는 마음을 시원하게 했다. 불어오는 바람이 후덥지근했지만, 가뿐히 견딜 수 있는 이유였다. 흐바르 섬까지는 배로 1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우리는 자동차를 싣고 가야 하므로 2시간을 가야 하는 상황. 아마도 흐바르 섬에 도착한 시간은 밤 10시가 늦은 밤이었던 것 같다. 

항구의 지정된 자리에 줄을 맞춰 주차를 하니 갑자기 한 청년이 살갑게 다가왔다. 배가 올 시간이 한 시간 정도가 남았으니 여기에 차를 대고 있다가, 출발 20분 전에 오라는 설명을 해줬다. 이렇게 친절한 청년이 있을까 하던 찰나, 갑자기 손에 들고 있던 물병으로 차 앞유리에 물을 뿌려대기 시작했다. 반사적으로 "No!"를 강하게 외치고는 그 행동을 제지했다. 역시나 유리를 대충 닦고 돈을 받기 위한 기습적인 행동이었다. 친절한 젊은 청년에게 자발적으로 사례를 하고 싶은 마음이야 생기면 생길 수 있겠지만, 의사를 묻지 않고 일방적으로 행하는 것에는 반발감이 들고 만다. 양손을 들어 어깨를 한 번 들썩인 그 청년은, 유료로 친절을 베풀러 다른 목표를 물색하기 시작했다. 괜한 해코지를 하지는 않을까 하는 불안감에 나는 차에서 기다리기로 하고, 와이프와 아이들은 스플리트를 잠시 둘러보고 요깃거리를 사 오기로 했다. 바다를 향한 창문 쪽으로 거센 바람이 들어오고 있었고, 나는 창문을 조금만 연 채 문을 열고 나와 바다 쪽으로 향했다. 잠시 불쾌했던 상황을, 바다가 금세 그것을 잊게 했다.

차들이 가지런히 줄을 맞춰 배를 기다린다.
바다는 언제 어디서 봐도 기분이 좋다. 


'석양'하면 자다르지만, 드넓은 바다와 뉘엿한 해가 만드는 것이 석양이기에 스플리트의 그것도 그저 아름다웠다. 요깃거리를 쇼핑하고 온 가족들과 그 석양을 마음껏 즐겼다. 두 아이는 바닥에 걸터앉아 저들끼리 대화를 이어나갔다. 자못 진지하게 석양을 바라보는 모습에서, 몇 년 되지 않은 저들의 인생을 곱씹는 듯한 분위기가 물씬 느껴졌다. 석양 앞에 앉아 있으면 아이들도 겸허해지는 것일까. 

아주 잠시지만 아이들의 소란은 잦아들었고, 아이들은 석양과 함께 어우러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앞의 차들이 시동을 걸며 우리의 발걸음을 재촉했다. 열을 지어 들어가는 자동차들을 커다란 배가 입을 벌려 하나 둘 삼키기 시작했다. 우리도 기꺼이 그곳으로 들어갔다. 배 안에는 이미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하루의 일과가 끝나가는 시점이기에 사람들의 얼굴에는 고단함이 가득했다. 그래도 여행으로 인한 고단함이었기에, 어쩐지 그것들이 마냥 우울해 보이진 않았다. 얼굴을 찡그리고 있었지만, 자세히 보지 않아도 웃을 때 움직이는 얼굴의 근육들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어쩌면 눈빛이 그 역할을 다했는지도 모른다. 사람이 웃을 때 진심으로 웃는 것인지 아닌 것인지를 판단하려면 눈을 보라는 말이 있듯이. 사람들의 눈빛은 말 그대로 초롱초롱했다.

주차를 하고 잠시 갑판에 올라 바라본 스플리트는 예상대로 아름다웠다. 거대한 항구도시답게 저 자신을 잘 정돈한 모습이다. 흐바르의 일정을 마치고 다시 돌아오게 될 스플리트에 기대감이 생겼다. 그러니, 그렇게 잠시만 안녕.


먹을 수 있을 만큼의 자동차를 삼킨 배는 드디어 움직이기 시작했다. 빠르지 않은 속도는 한가로운 여행의 시간과 잘 어울렸다. 파도는 적당한 부서짐으로 배에게 길을 내줬다. 하늘의 속도는 배보다 빨라 금세 어두워졌다. 달빛이 밝을 정도로 어두워진 하늘은 바다와 맞닿아 고요함을 선사했다. 배안의 사람들은 저마다 여행의 고단함과, 앞으로 남은 여정에 대한 기대감을 앉고 몸을 뉘어 쉬고 있었다. 

바다 한가운데에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때, 달빛이 정말 아름다웠다. 밝은 달빛은, 맞닿은 바다 위에 그 빛을 수놓았는데 문득 뭉크의 그림이 떠올랐다. 뭉크는 물가에 비친 달빛을 원통형으로 쭈욱 내려 그리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것이 바로 눈 앞에 있는 것이었다. 아마도 뭉크가 봤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길었던 하루. 아이들은 몸에 힘을 빼고 난간에 매달려 달빛을 구경하고 있었고, 와이프는 아이들의 먹을거리를 주섬주섬 준비하고 있었다. 섬에 도착해 보내게 될 기분 좋은 여정이 내일에 있음을 감사하며, 우리는 그렇게 바다에 몸과 마음을 맡겼다.

2층 내부 선실은 이미 꽉 찼다. 3층 야외 선실
달빛이 빛나고 바다 위로 그 빛이 내려 앉았다. 흡사 뭉크가 그린 달빛이 이곳에 와있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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