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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Sep 29. 2017

대표적인 심리학자들의 이론

Part 1. 심리학이란 무엇일까? #3

심리학을 조금이라도 공부했거나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가장 주의해야 할 것이 있다. 바로 얕은 지식으로 남을 판단하는 것. 자신의 내면을 돌아보기는커녕, 시험 때 바짝 외웠던 지식이나 SNS에 돌아다니는 짧은 심리학 글을 본 뒤 그것을 남에게 대입하고 판단 내리는 것이다. 이미 눈치챘을 수도 있지만, 나 또한 다르지 않았다. 심리학에 대한 꿈을 가지고 공부를 막 시작했을 때 내 눈에는 구강기에 고착된 사람, 항문기에 고착된 사람, 남근기에 고착된 사람밖에 보이지 않았다. 저 사람은 과거에 어떤 트라우마가 있기에 이렇게 모가 난 것이라 생각했고, 사람들의 얼굴엔 페르소나(사회적 가면)가 가득할 거라는 무조건적인 불신의 시선을 보냈다. 지금 돌아보면 정말 우습지도 않다는 생각이 든다. 모든 지식을 수렴하여 바라봐도 모를 나 자신을 뒤로하고, 나는 얕디 얕은 지식으로 다른 사람들의 행동을 보고 판단했던 것이다.

그런데 직장에서 정말 이성적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 사람들을 만날 때면, 솔직히 얕은 지식으로라도 그들을 판단해보고자 하는 욕구가 끓어오른다. 그러지 않고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아 머리와 마음에 과부하가 걸릴 것 같기 때문이다. 내가 미쳐버리기 전에, 그들은 원래 그런 사람이라던가 어렸을 적 뭔가 잘못되었었다고 생각하는 편이 좋을 수도 있다. 일단, 나부터 살고 봐야 하므로.


어찌 되었건, 심리학을 알아가는 과정에 있어서 대표적인 학자들의 이론은 짚고 넘어가야 한다. 특히, 직장생활에 적용하여 깊이 생각해볼 이론들로 채워보고자 한다. 앞에서도 강조했듯이 이것이 남을 판단하는 도구로 쓰여서는 안 된다. 오히려, 자신에 대해 곱씹어보는 도구로 써보는 것이 좋다. 그리고 앞으로 언급할 이론들은 그저 요약 정도에 지나지 않으니, 더 깊은 지식을 위해서는 관련 서적을 읽거나 검색을 통해 지식을 보충하는 것을 추천한다. 그러고 나서 자신을 바라보면 좀 더 명쾌한 자신과의 대화를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성적으로 이해가 안 되는 상대를 만났을 때 저 사람은 '이래서 저런 거야!'라고 자신의 생존을 위해 임기응변으로 이 이론들을 사용하는 것에 대해서는 충분히 동의한다. 다시 한번 더 말하지만, 나부터 살고 봐야 심리학이고 뭐고 있을 테니까.


"심리학은 과학이다!"


분트는 심리학의 아버지라고도 불린다. 그는 '철학'에서 '심리학'을 떼어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가 추구한 건 심리학의 과학화다. 즉, 보이지 않는 실체를 어떻게든 증명하려 한 것이다. 1897년에는 라이프치히 대학에 최초로 심리학 '실험실'을 마련하기도 했다. 분트는 남의 마음을 주시할 수 없기 때문에 '내관법(Instrospection)'을 주창했다. 굳이 내관법이란 이름을 붙이지 않아도, 우리는 그것을 우리 생활 속에서 사용하고 있다. 즉, 저 사람이 왜 저럴까에 대한 것을 자신의 마음속으로 생각해보는 것이다. 같은 사람이기에 큰 예외가 없는 한, 보편적인 감정과 심리적 작용 등은 동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눈 앞에 놓인 과자 앞에서 우물쭈물하다 허겁지겁 그것을 먹는 아이를 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이의 마음을 쉽게 유추할 수 있는 것과 같다. 아이는 과자를 먹고 싶어 하나, 허락 없이 먹으면 혼날 것 같아 주저하다가도 끝내 과자를 먹고 싶다는 욕구를 못 이겨 먹게 되는 것. 100% 그 아이의 마음을 대변했다고 볼 수는 없지만, 누구든 수긍할 수 있는 설명이다. 서두에서도 말했듯이, 분트는 의식에 대한 관찰에서 그친 것이 아니라 의식을 구성하고 있는 '요소'를 구조화하려 노력했다. 그래서 그의 이론은 '구조주의'로 불렸다.

분트의 이론에 맞불을 놓은 건 '행동주의(Behaviorism)'자들이다. 과자를 먹은 아이로 돌아가 보면, 과자는 자극이고, 먹은 것은 반응이다. 이 자극과 반응 사이에서 발생한 관계에서 행동의 법칙을 찾아내려고 하는 것이 바로 행동주의다. 하지만 수학공식처럼 '자극은 반응이다'라는 전제는 너무나 즉각적인 것이어서 이는 '신행동주의'로 변했다. 독일에서 발생한 '형태 심리학(게슈탈트 심리학)'도 분트의 구조주의를 부정했다. 형태 심리학은 사람의 마음은 어느 부분이 모여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전체적인 것이며 부분의 합 이상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네온사인을 예로 들어보자. 전구 백여 개가 모여 불빛을 내면, 그것은 전구 백개의 불빛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글자가 되기도 하고 그림이 되기도 한다. 분트의 이론은 사람의 마음을 전구 백개로 구조화하여 분석한다고 볼 수 있고, 형태주의 심리학은 전구 백개가 만들어낸 글자와 그림도 의미 있게 봐야 한다는 주장이다.

분트의 '구조주의'는 미약하거나 틀린 이론이라고 보기보다는 심리학의 과학화에 큰 기여를 했다고 보는 것이 마땅하다. 그의 이론에서 발전한 행동주의와 형태 심리학, 그리고 후에 발생한 정신분석은 근대 심리학의 핵심이 되었기 때문이다.


"무의식적인 자아가 리비도를 꿈꾸다!"


이 글을 읽는 사람들 또는 수많은 사람들이 단 한 번만이라도 심리학에 흥미를 느낀 적이 있다면, 그것은 프로이트의 이론을 접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사실, 내가 이곳에서 굳이 프로이트의 이론을 말하지 않아도 많은 사람들이 이미 어렴풋이라도 그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의 이론을 지탱하고 있는 핵심 단어는 많고 많지만, 그중에서도 우리는 '무의식', '자아', '리비도', '꿈'을 상기해야 한다. 프로이트의 이론은 대단한 업적을 이룬 만큼이나 그 반대파도 많다. 증명할 수 없는 많은 것들에 대한 불신이자, 남성의 성(姓)에 편향된 관점 때문이다. 오죽하면 프로이트의 이론에 대해 논쟁하는것을 두고 '프로이트 전쟁' 이라는 말까지 생겼다. 그럼에도 프로이트의 이론은 수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지지를 얻어내고 통용된다.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핍박을 받아 그의 조국 오스트리아를 떠나야만 했던 프로이트의 이론을, 히틀러도 매우 흥미로워했을 정도다. 더 재미있는 것은 그의 이론에 푹 빠졌던 사람들이 프로이트의 이론을 반대하고, 또 그것을 바탕으로 새로운 것들을 정립해나갔다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융'이 그렇다.

프로이트의 이론은 증명할 순 없지만, 반박할 수가 없다. 도저히. 그것이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을 돌아보게 하며 다른 사람들을 쉽사리 판단하게 만든다. 어디에 적용해도 다 맞아떨어지기 때문이다. '무의식'이 있다고 한 번 받아들이고 나면, 우리는 우리가 설명할 수 없는 모든 행동과 반응을 '무의식' 탓으로 돌려 버릴 수 있다. 누구나 어떤 형태로든 성욕(姓慾)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인간의 에너지원이 '리비도'에서 비롯된다는 것에 그저 고개를 끄덕인다. 나는 개인적으로 프로이트의 이론이 100% 맞다기보다는, 말로 설명하지 못했던 것을 명쾌하게 규정했다는 것에 찬사를 보낸다. 그의 이론에 대한 단 하나의 맹점은, 누구나 쉽사리 떠벌릴 수가 있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그만큼 통용/ 적용 가능한 완성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의 반증일지 모른다.

프로이트는 많은 사람들을 심리학으로 이끈다. 심리학을 더욱더 매력적으로 만든 그다. 나 또한 프로이트의 무의식 이론에 이끌려 자아를 탐구하길 시도했고, 다른 사람들을 빗대기도 했다. 하지만 대학에서 심리학을 전공하면 프로이트를 만나기가 더 어렵다.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없는 그의 이론은, 실증주의 심리학을 표방하는 현대 심리학에서 찬밥 신세기 때문이다. 이런 것을 미리 알아차리기라도 한 듯이, 프로이트는 1915~1916년 정신분석학 강의를 하면서 과학적으로 증명이 어렵고, 대화로만 환자를 치료하며, 성적인 것을 근간으로 삼는 정신분석 이론을 배우기 위해서는 대단한 각오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신분석은 그것이 표방하고 있는 두 가지의 원칙 때문에 세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모욕감을 주었고, 그로 인해 그들의 반감을 사게 되었습니다. 그중 하나는 세상 사람들의 지적인 편견과 충돌하고 또 다른 하나는 심미적, 도덕적 편견과 어긋나는 것입니다. 이러한 편견들을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치부해서는 안됩니다. 그것들은 위력적인 것들로서 인간에게 유익하고도 필연적인 인류 발전의 산물이기 때문입니다. 그것들은 정서적인 힘들에 의해서 고착된 것이고 그러므로 그것과의 싸움은 아주 힘든 싸움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 프로이트 정신분석 강의 중에서 -


다시 그의 이론으로 돌아가 보면, 프로이트는 히스테리를 연구하다 '무의식'이라는 개념을 정의한다. 히스테리란 스스로 의식할 수 없는 마음의 한 부분(무의식)과 깊은 관계가 있다고 결론 내린 그는, '의식', '무의식', '전의식'으로 우리의 의식을 구조화/ 실체화한 것이다. 히스테리는 결국 이 무의식 속에 쌓여 있는 '과거의 불쾌한 생각'이 잘 처리되지 않아 일어난다고 그는 결론지었다. (히스테리의 어원은 '자궁'으로, 옛날에는 자궁이 체내에서 움직이는 부인병으로 알려져 있었다. 이러한 것을 보면 프로이트가 꽤 과학적으로 보인다.)

또한 그의 '자아' 이론은 유명하다. 자아를 '이드', '자아', '초자아'로 나누었다. '이드'는 쾌락 원리에 의해, '초자아'는 도덕 원리로 행동하는 부분이라 했다. '자아'는 현실 원리를 바탕으로 '이드'와 '초자아' 사이에서 조정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았다. 그래서 프로이트는 '신경증'의 원인이 자아가 초자아와 이드 사이의 괴로운 위치를 견뎌내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생각해보면 머릿속에 이드와 초자아 사이에서, 애써 그것들의 갈등을 조율하고 있는 '자아'의 모습이 쉽게 그려진다. 이것이 프로이트 이론의 매력이자 힘이다.

더불어 프로이트는 인간의 에너지는 '리비도'에서 비롯되고, 이는 무의식 중에 마음 깊숙한 곳에 축적된 욕망의 에너지라 정의했다. 리비도는 넓은 의미에서 성욕이라 할 수 있고, 이는 다양한 형태로도 나타날 수 있다고 봤다. 프로이트는 리비도의 충족 여부에 따라 개인의 성격이 달라진다고 생각했다.

이 외에도 프로이트는 무의식이 표출하는 '꿈'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졌고, 꿈을 해석하는 기법을 연구하고 발표하기도 했다. 삶의 본능과 죽음의 본능까지 아우르는 그의 이론은 과학적으로 증명이 100% 될 순 없지만, 우리의 마음과 무의식은 역시나 과학적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는 것에 한 표를 던질 수밖에 없는 이해심을 발동시키고 만다.


"무의식과 사회적 가면"


융(Jung, Carl Gustav)은 프로이트의 이론에 탐닉했다가 이를 반박하고 자신만의 이론을 정립한 대표적인 심리학자다. 프로이트와 같이 무의식을 강조했으나 그는 무의식이 개인뿐만 아니라 '집단적'으로도 전해 내려 온다 주장했다. 즉, 우리의 마음속에는 조상으로부터 전해 내려온, 전 인류에게 공통된 기억이나 이미지가 잠재해 있다고 봤다. 한국인의 예를 보더라도,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침략을 많이 받았기에 똘똘 뭉쳐야 했던 집단 문화가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는 것, 생존을 위해 빨리빨리 움직여야 했던 것이 그대로 표출되는 집단 무의식이다. 단순히 문화적 특성으로도 볼 수 있지만, 예를 들어 어렸을 적 입양되어 다른 나라에서 자란 한국인의 경우에도 이와 같은 정서나 특성이 나타나는 것은 융의 집단 무의식으로밖에 설명이 되지 않는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데자뷔 현상도 융은 우리 조상이 미리 본 것들이 우리에게 전해진 것이라고 봤다.

융은 '원형(Archetype)'을 주창했다. '원형'이란 전인류 공통의 기억이나 이미지의 모티브가 된 것을 말한다. 그의 이론 안에서 그 '원형'의 종류를 살펴보면, '페르소나', '그림자', '아니마', '아니무스'가 있다.

'페르소나'는 서양의 고전극에서 배우들이 쓴 가면(Persona)을 착상하여 명명했다. 아마 우리 직장인들은 '페르소나'부자라고 불려도 무방할 것이다. 오늘도 우리는 수십 개의 가면을 쓰고 사회생활을 했음이 분명하다. 프로이트가 '무의식'을 실체화한 것처럼, 융은 우리 인격의 가면을 '페르소나'를 통해 보다 명확히 했다.

'그림자'는 '개인적 그림자'와 '보편적 그림자'로 구분된다. '개인적 그림자'는 성격에 바로 드러나지 않는 면을 말하며, 내성적인 사람의 그림자는 외향성으로 볼 수 있다. 반대로, 외향적인 사람의 그림자는 내성적인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어찌 보면 드러나는 성격의 반대 부분을 말하기도 하고 개인의 성격을 보완해주는 존재로 인식되기도 한다. '그림자'라고 표현하면 부정적, 비판적인 이미지이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대목이기도 하다. 다만, '보편적인 그림자'는 말 그대로 인간의 어두운 내면을 뜻한다. 즉, 나쁜 일을 저지를 수 있는 보편적인 부분을 말한다.

'아니마(Anima)'와 '아니무스(Animus)'는 각각 '남성 속의 여성적 요소', '여성 속의 남성적 요소'를 뜻한다. 융에 의하면 그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면 상대방에게 '아니마'나 '아니무스'를 투영하는 것이라고 봤다.

융은 종교나 신화, 동양사상, 신비 사상 등에도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그는 '오컬트(초심리학) 심리학'에 관심을 가지기도 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주장한 이론이 바로 '동시성'이론이다. 즉, 모든 우연에는 의미가 있다고 봤다. 환자와 장수풍뎅이에 대한 이야기를 하던 중에, 방안으로 한 마리의 장수풍뎅이가 들어온 것으로 인해 갑자기 치료가 순조롭게 풀린 경험에 대해 융은 그것을 가볍게 넘기지 않은 것이다. 그는 이러한 모든 우연이 합리적인 인과율로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가 다른 미지의 연관으로 맺어진 심리적 평행 현상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이는 증명될 수도 없을뿐더러 많은 사람들을 설득하기에 무리가 있었다. 모든 일에는 그 의미가 있고, 이유가 있다는 동양사상의 사고방식을 보면 그것에 심취해 있던 융이 왜 그러한 것을 주장했는지 이해가 된다. 가끔은, 내가 직장에서 왜 이러한 상사를 만났는지, 이런 버릇없고 개념도 없는 부하직원을 만난 것에 대한 의미를 곱씹어보기에 좋은 이론이라 여겨지기도 한다.


"콤플렉스는 장애물이 아니다. 발판이다!"


우리는 모두 열등감을 가지고 있다. 자신은 열등감이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그렇다고 해두자. 그래야 아들러의 이론을 이야기할 수 있게 된다. 실제로, 열등감은 그 경중의 여하에 따른 문제이지, 누구나 가지고 있다. 자신이 남보다 어떠한 이유에서건 열등하다는 것을 만회하려는 무의식의 작용을 '보상작용(Comensation)'이라 한다. 이 보상 욕구가 사람들이 그들의 미래를 개척하게 하는 원동력이라고 주장한 사람이 바로 아들러다.

아들러는 원래 안과 의사였다. 그랬던 그가 정신과 의사로 진로를 바꾸고는 눈이 나쁠수록 사람들은 탐욕스러운 독서가가 되기 원한다는 이론을 펼쳤다. (이 부분은 이견이 많겠다. 당장 나만 하더라도 눈은 나쁘지만 탐욕스럽게 독서를 해본 적이 없다.) 이 이론이 맞고 틀리고를 떠나, 아들러는 사람들의 무의식 중에 그들의 열등성, 즉 콤플렉스를 극복하기 위해 결국 발전은 이루어진다고 봤다. 듣지도 보지도 못한 헬렌 켈러가 노력의 끝에 교육가와 작가가 된 것, 청각 장애를 가진 베토벤이 다수의 명곡을 써낸 것들을 아들러는 예로 들었다. 물론, 이러한 열등의식을 제대로 극복하지 못할 경우 사람들은 우울증에 빠지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그것을 보강하려는 욕구가 지나쳐 사소한 성공을 크게 확대하거나 다소 폭력적으로 될 수도 있다.

아들러 또한 프로이트의 이론에 심취했다가 이를 비판한 학자 중 한 명이다. 프로이트는 인생을 현재에서 과거로 거슬러 원인을 탐색했지만, 아들러는 원인을 극복하는 인간의 가능성에 기대를 걸면서 미래를 응시했다. 즉, 과거 지향적 이론과 미래 지향적 이론의 대립인 것이다. 그럼에도, 그의 이론을 확립해 나아가는 데 있어서 프로이트의 이론 영향이 지대했음은 그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다. 나중에 언급이 되겠지만, 아들러의 보상작용은 직장 생활을 하는 데 있어서도 긍정적으로 잘 사용될 수가 있다. 즉, 콤플렉스는 장애물이 아니라 보상작용을 통해 자신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발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모라토리엄(Mratorium), 아이덴티티(Identity)의 창시자!"


'모라토리엄'을 이야기하면 고개를 갸우뚱하겠지만, '아이덴티티'를 이야기하면 바로 알아들을 것이다. 정신분석가 '에릭슨(Erikson, Erik Homburger)'이 제창한 용어다. 그는 인간의 사회성 발달이론으로 유명하고, '정체감 위기'를 만들어냈다. 그는 프로이트가 주장한 심리성적 발달의 다섯 단계를 부인하고 여덟 단계를 주장했다. 특히 그는 '청년기'에 집중했다. 청년기에는 특유의 심리가 그 안에 있다고 보고, 자아에 관한 이론을 추구했다. 어렸을 때는 멋모르고 주위 사람과 사물, 상황 등에 자신을 동일시하며 성장해나가지만, 청년기에 이르러서는 자아에 대한 탐색이 이루어지면서 더 이상 동일시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렸을 적부터 동일시해 온 모든 것들이, '자아'와 일치하지 않을 때 '진정한 나란 무엇인가'란 의문을 품게 되고 종합된 자아 동일성, 즉 '아이덴티티'를 만들기 위해 사력을 다한다. 이때 이러한 시도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거나 만족이 되지 않을 때, '정체감 위기(Identity Crisis)'를 겪는다.

이러한 시기에 마주하는 용어가 '모라토리엄'이다. 즉, 연령적으로는 충분히 성장했지만, 아직까지 미숙한 정신상태이기 때문에 어른 사회에 참여할 수 없는 어정쩡한 상태. 그러니까 분명 한 사람의 몫임에도 불구하고 사회인으로서 의무와 책임의 지불을 유예하고 있는 상태를 말한다.

나는 에릭슨의 발달 단계설을 보면서 나를 포함한 우리 직장인을 떠올렸다. 심리학적 이론들을 보면 우리는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발달하는 것으로 되어 있지만, 우리는 결국 사회에 발을 내딛거나 새로운 역할을 맡게 되면서 또 다른 발달 단계를 거치게 된다. 예를 들어, 우리는 이미 모라토리엄을 사춘기 때 겪었지만, 직장인이 되어서 신입사원의 페르소나를 쓰고 나면 또다시 지불유예기간은 시작되는 것이다.




심리학을 이해하고, 직장인의 삶을 재조명하기에 도움이 될만한 대표적인 심리학자와 그 이론을 다루어 보았다. 간간이 언급을 했지만, 이 이론들을 곱씹어보면 우리 직장 생활에 적용될 것들이 참 많다. 직장에 발을 들이고,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우리는 또 다른 발달 단계에 접어들고, 새로운 상황에 고착하게 되며, 나도 모르던 성격과 아이덴티티가 튀어나온다. 그래서 어쩌면, 우리는 우리 스스로 어른이 되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지도 모르겠다. '어쩌다 어른'이라는 말이 와 닿는 이유다. 결국 신체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심리적으로든 발달을 하고, 해야 하는 것이 우리네 삶이다. 원하지 않는 단계를 꾸역꾸역 밟아 나가면서 말이다. 원하지 않았는데 어른이 되어 나아가는 우리에게 심리학이 절실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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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서 모음]

'견디는 힘' (견디기는 역동적인 나의 의지!)

'직장내공' (나를 지키고 성장시키며 일하기!)

'오늘도 출근을 해냅니다' (생각보다 더 대단한 나!)

'아들에게 보내는 인생 편지' (이 땅의 모든 젊음에게!)

'진짜 네덜란드 이야기' (알지 못했던 네덜란드의 매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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