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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Oct 11. 2015

[너를 만난 그곳] #13. 만남도 계획되지 않았다

그리고 난 그 젊음이 조금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1-


7월의 암스테르담은 화창한 햇살과  여름휴가를 준비하는 사람들의 기대로 환하게 가득 차 있었다. 

아마 일부 사람들은 이미 휴가 중일 테고, 네덜란드 이 곳으로 휴가를 즐기러 온 외국인들도 많아 보였다.


네덜란드 사람들의 캐러반 여행은 남다르다고 한다. 캐러반을 달고 유럽 여기저기를 다닌다고 하는데, 그들이 다녀간 곳은 자신들이 먹고 간 쓰레기만 덩그러니 놓인다고 한다. 

과연 검소한 그들의 모습에 참으로 걸맞다. 


이야기를 들으며, 과연 네덜란드 사람들 답다...라는 생각에 입꼬리가 올라갔다.


-2-


무계획이 계획이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무계획을 구체화하기 위해 카페로 나섰다. 

거리  여기저기에 즐비한 테이블과 의자들이 나름 질서 있게 놓여 있다.


네덜란드의 옛 시간을 한껏 즐길 수 있는 브라운 카페로 발길을 옮긴다. 

들어서니, 시간의 흐름에 켜켜이 쌓인 사람들과 그들의 사연이, 찌든 벽면의 색과 오래된 향기로 나를 반긴다. 


이 브라운 카페는 그렇게 나이를 먹어왔을 테다. 


-3-


이제 무얼 할까.


사실, 여행을 하기 전에 생각해야 하는 이 ‘과제’가 사람들을 설레게 한다. 

그래서 나는 무계획이라는 미명 아래 지금까지 이것을 아껴왔는지 모른다. 

어렸을 적, 가운데 있는 딸기 맛의 속살을 나중에 먹기 위해 겉의 껍데기 부분을 조심스럽게 깨물어 아껴 먹던 아이스바처럼.


모든 설렘은 그렇게 아껴도 좋다.

그것이 사람에 대한 것이든, 여행에 대한 것이든, 그 무엇에 관한 것이든. 


-4-


잠시 카페에 앉아 이방인의 눈으로 바라본다. 

선글라스를 끼고 있지만 햇살이 기꺼이 눈부시다.


이방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묘한 기분이다. 

내가 사는 곳에서는 이방인이 되지 않으려 발버둥 치며 치열하게 살지만, 여행이라는 것을 통해 사람들은 기꺼이 이방인이 되려 한다. 


한 발 벗어나 바라보는 일상은, 이방인의 특권이자 묘미다. 

멀리 보면 희극, 가까이 보면 비극이란 말이 새삼 어울리는 순간이다. 


-5-


내가 계획했던 무계획은 나 홀로 여행이었다. 

그 작은 소동이 있기 전까지는. 


무얼 할까에 대한 생각으로 기분 좋게 미간을 찌푸리며 잠시 눈을 감은 내 등 뒤로 영어와 더치가 섞인 격앙된 대화가 들려왔다. 자세히는 못 들었지만, 어째 남녀 간의  사랑싸움인  듯했다. 


대수롭지 않게 내 생각을 이어가던  그때, “이런 개새끼, 됐어 씨발놈아!”라는 친근하고 둔탁한 단어가 귓등을 때렸다. 


-6-


뒤를 돌아볼  수밖에 없는 나와, 그 친근한 단어를 알아듣고 고개를 돌리는 사람이 있다는 걸 눈치챈 그 아이? (적어도 내 눈엔 그랬다. 키가 작고 앳된 얼굴의 생기 있는 얼굴로 아마 어느 직장인이 봤더라도 ‘아이’란 표현이 어색하지 않았을 것이다.)의 눈이 마주쳤다. 


언쟁(?)인지 사랑의 격한 대화였는지 모를 소동의 장본인이었던 한 더치 남자는 의자를 박차고 이미 자리를 떠난 뒤였다. 


-7-


순간의 마주침이었지만, 두 사람의 정적과 서로에 대한 관찰은 그 '순간'을 몇 배로 늘려놨다.

그 아이가 어느새 내 앞에 와 있는 것을 바로 알아차리지도 못할 만큼.


“한국 분이세요? 저 잠깐 앉아도 되죠?”

어느새 내 앞에 서서,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의자의 두 다리를  돌바닥에 드르륵 끌며 털썩 앉았다. 

그 아이는.


부들부들 떠는 손의 그것이 목과 머리까지 전해져 얼마나 격앙되어 있는지, 눈으로도 바로 볼 수 있었다. 


-8-


지금 막 헤어졌다고 한다. 

그러고는 자신의 이야기를 쏟아 놓는다. 


이곳에는 유학을 왔고 잠시 휴학 중이며, 남자 친구와는 동거를 하고 있는데 지금 헤어졌으니 더 이상 동거는 하지 않게 되었고, 남자 친구와 함께 할  여름휴가 전에 헤어지니 기분이 몇 배로 나빴다는 걸 쉴 새 없이.  


물론, 난 그 어느 것 하나 먼저 묻지 않았다. 


-9-


내가 처음으로 입을 뗀 건 머릿속 시계로 약 15분 정도 뒤였다.

“이별, 그거 참 기분 더럽죠?”

괜찮아요? 많이 놀랐죠?라는 어설픈 위로보다는 현실적인 질문이 더 적절해 보였다.


그 아이는 이제야 자신이 내 앞에 갑작스레 앉아 있다는 것, 그리고 이러한 상황이 그리 빈번하고 흔하게 일어나는 일은 아니라는 것을 스스로 깨닫고는 민망한 웃음을 환하게 지어 보였다. 그리고 조금은 놀란 듯 특유의 토끼 눈을 크게 떠 보였다.


마치, 혼자 벽을 보고 이야기하다 갑작스레 벽이 말을 건 것처럼. 


-10-


그 아이가 방금 다른 테이블에서 이별을 하고 이 곳에 와 있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카페 종업원은 다시금 주문을 받아 갔고 따뜻한 민트 티가 그 아이 앞에 놓여 있었다.


7월의 햇살이 가득했지만, 방금 이별을 한 그 아이에게는 따뜻한 그 차 한잔이 왠지 어울리고 또 필요해 보였다. 


“이제 좀 괜찮아요?”라는 나의 물음에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그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아이는 끝내 울지 않았고, 그 모습이 무척이나 당당해 보였다. 

이별 앞에 당당함이라…역시 젊음이 좋긴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난 그 젊음이 조금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Place Information


1. Damrak Street: 오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눈에 담는 활기찬 거리

  - 1012 LM Amsterdam, Netherlands


2. Cafe de Sluyswacht: 그 아이의 차진 욕을 생생히 들은 브라운 카페

  - Jodenbreestraat 1,1011 NG Amsterdam, Netherlan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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