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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Nov 30. 2017

직장은 왜 정치가 판을 칠까?

Part 3. 심리학으로 바라보는 직장생활 #9

직장인은 만능 엔터테이너


직장인이 되어서 느낀 건데, 직장인은 정말 다재다능한 만능 엔터테이너다. 직장인이라고 일만 하는 것 같지만, 그 외에 다양한 역할과 업무를 수행해야 하는데 이게 생각했던 것 이상이다. 아, 생각지 못했던 일이 더 많기도 하다. 원해서 하기보다는 해야 해서 하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좋게 생각하면 전에 없던 경험을 한다는 것에 의미를 둘 수 있지만, 원하지 않는 역할과 페르소나를 겹겹이 써야 하는 것에서 오는 심적 부담은 우리네 직장인들에게 큰 스트레스다.

우선 기본적으로 맡은 바 '일'은 완수해야 한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 말이다. 이것이 우리가 기대한 직장인 본연의 모습이다. 하지만 직장 생활을 하다 보면 회식 자리에서 분위기를 띄워야 하는 연예인이 되고, 해외 바이어 접대를 위해 구경할 곳과 맛집을 줄줄 꿰고 있는 여행사 가이드가 되기도 한다. 윗사람을 설득하기 위한 보고서를 작성할 때는 전체적인 스토리라인과 논리를 고민하는 것이 영락없는 작가다. 발표할 때는 마음속으로 나는 실력 있는 강연자라고 수십 번을 되뇐다. 언제는, 내부 어르신(VIP) 방문을 맞이해 코너링이 훌륭한 운전기사가 된 적도 있고, 후배들의 고민을 들어주는 상담사의 역할을 자처하기도 한다.

일만 열심히 하면 될 줄 알았던 직장생활은 이와 같이 역동적이다. 나와 어울릴 수도, 아니 대부분은 어울리지 않는 페르소나를 쓰고 울고 웃는 것이 직장 생활인 것이다. 게다가 직급이 올라갈수록 우리는 '정치가'의 역할도 수행해야 한다. '아생연후'와 '각자도생'이 미덕인 직장 내에서 '정치'는 생존을 위한 중요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직장은 왜 정치가 판을 칠까?


정치(政治)
1. 통치자나 정치가가 사회 구성원들의 다양한 이해관계를 조정하거나 통제하고 국가의 정책과 목적을 실현시키는 일
2. 개인이나 집단이 이익과 권력을 얻거나 늘이기 위하여 사회적으로 교섭하고 정략적으로 활동하는 일

- 어학사전 -

하다 하다 '정치가'의 가면까지 써야 하니 직장인의 삶은 참으로 고되다. 하지만 그리 나쁘게 볼 것만도 아니다. 우리는 사는 매 순간 스스로를 드러내려 노력한다. 사전적 의미의 두 번째 뜻에서 볼 수 있듯이, '정치'는 우리네 직장인들에게 그리 낯선 단어가 아니다. 누구나 (자신의)'이익과 권력'을 얻으려 노력하기 때문이다. 그것의 경중(輕重)이 있을 뿐,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알게 모르게 '정치'를 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보통 직장에서 "저 사람은 너무 정치적이야!"라며 손가락질을 하곤 한다. 그런데 알고 보면 그 의미는 곧 "저 사람은 (나 또는 우리보다 더) 너무 정치적이야!"인 것이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욕구'가 있다. 더불어, 더 강력한 욕구는 바로 '생존 욕구'다. 사람 공부에서도 살펴봤듯이, 그것은 우리 신체와 마음의 메커니즘을 좌우하는 강력한 에너지다. 살아남는 과정 중에 체험한 '공포'는 어느새 학습되어 '불안'이라는 기제가 생겨났다. 그리고 우리는 그 '불안'과 함께 평생을 함께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직장인의 '생존 욕구'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볼 수 있다. 첫째는 '생물학적 생존'이고 둘째는 '사회적 생존'이 그것이다. 전자는 말 그대로 굶어 죽지 않기 위해 먹고, 살기 위해 추위를 피하는 1차적 생존이다. 후자는 직장 내에서 진급을 하여 좋은 위치를 점하고, 누구보다 오래 살아남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이 두 가지 종류의 생존 욕구는 어쩐지 독립되어 보이지 않고 종속적인 양상을 띤다. 즉, '사회적 생존'을 하지 못하면 결국 우리는 '생물학적 생존'까지 위협을 받는 세상에 살고 있다. 어쩌면 이것이 직장인이 가장 두려워하는 '불안'이자, 그토록 살아남으려 노력하는 '생존 욕구'를 점점 더 강하게 하는 원인일 것이다.


정치는 곧 인정받기 위한 몸부림이자
생존 방식이다!


에베레스트를 최초로 오른 것으로 알려진 영국의 '조지 말로리'는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유명한 말을 남겼다.

"왜 산(에베레스트)에 오르려고 하는 거죠?"
"산(에베레스트)이 거기 있으니까요!"

자, 당신은 왜 직장에서 진급을 하고 오래 남아 있으려 하는가? "나는 진급이나 직책에 연연하지 않는다"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아직 직장에 남아 있고 내일 당장 퇴사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그 말은 100% 진심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어찌 되었건 우리네 직장인은 조지 말로리처럼 하루하루 직장이라는 큰 산을 오르고 있다. 때로는 왜 올라가는지 모르면서도 말이다. 이것은 매우 본능적이다. 저 산 모양, 피라미드 모양의 끝. 아니, 내가 있는 지점보다 앞인 9부 능선, 5부 능선은 우리를 유혹한다.

이러한 와중에 우리는 '정치'를 한다. 다 함께 가면 좋겠지만 때로는 누군가를 밟고 올라서야 하는 것이 직장인의 숙명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러한 생존 방식을 어려서부터 배워왔다. 남들이 말하는 더 나은 교육 환경, 더 유명한 대학을 가기 위해서 말이다. 학교에서야 성적으로 자신을 어필하면 되지만, 직장인은 서두에서 언급한 것처럼 다이내믹한 역할을 수행해야 하기에 일만 잘해서는 성공할 수가 없는 구조다. 회사에 아무리 큰 이익을 가져다주었어도, 회사 내 어르신(VIP)을 차로 모실 때 과속방지턱 하나 실수로 잘못 넘거나 회식 자리에서 분위기 한 번 잘못 띄운 것들이 하나둘 쌓이면 살아남는데 큰 부정적 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 직장인이 매사에 벌벌 떨고 초라해 보이는 이유다. 사람은 누구나 남에게 잘 보이고 싶어 한다. 즉, '인정'받고 싶다는 것. 직장에서는 '인정'받아야 승승장구한다. 그래야 진급도 하고 월급도 오른다. 그러면서 직장인은 내가 인정받고 있구나라고 안도한다.

직장에 정치가 만연한 이유 중 또 하나는 '결과중시'문화기 때문이다. 직장에서는 과정에 대한 칭찬을 해주는 일이 거의 없다. 과정이야 어찌 되었건 결과가 좋으면 모든 것이 용서된다. 그러니 어떤 이들은 이것에만 집중하고, 이런 사람들은 '정치적'이다 라는 말을 듣는다. 직장 내에서 '정치'는 모두가 하고 있고 좋은 의미도 있지만, 이러한 사람들 때문에 직장 내 '정치'라는 단어의 의미가 퇴색된다. 특히, 실력은 없으면서 광만파는 경우나, 남의 성과를 가로채고 다른 사람의 성과를 깎아내려 자신의 성과를 내세우는 사람들은 최악이다.




지금까지는 정치적인 사람들을 바라보며 손가락질을 했을지 모른다. 이제는 그 손가락을 그대로 유지한 채 거울을 보자. 손가락은 어디를 향하는가. 나를 향하는 그 손가락을 통해 맘도 들여다보자. 나는 나의 이익과 생존을 위해 힘쓰고 있지 않은가?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내 편을 만들고, 필요한 사람과 교섭하며 의도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부분이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나도 당신도, 우리 모두 직장 내에서 '정치'를 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이 너무 정치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직장 생활을 스스로 힘들게 하는 자충수(自充手)다.


인정하고 받아들이면 달리 보인다. 직장에서 정치하는 사람의 행동(결과, 반응)을 혐오하지 말고, 그 뒤에 있는 것을 보자. 그 사람의 마음속엔 살고자 하는 욕망이 있다.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있다. 그것의 경중에 따라 어떤 이는 괴물이 되기도 한다. 당장 나는 어떤가? 나의 생존 욕망은? 인정받고 싶은 욕구는 어느 정도인가? 중요한 것은 남들이 나보다 더 정치적이라는 것에 연연하지 말고, 누구나 직장 내에서는 정치적인 것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더불어, '정치'를 하려면 '실력'이 있어야 함을 잊지 말자. 그리고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은 지양하고, 다른 이의 성과를 진심으로 떠받들어주는 것은 지향해보자. 속은 탐욕으로 가득하고 실력도 없는 정치가가, 연설이나 보이는 것으로만 승부한 이후의 결과를 우리는 안다. 우리가 '정치인'을 잘 믿지 못하는 이유다. 직장 내에서 우리는 '정치인'이라는 또 하나의 페르소나를 쓰고 살아나아가야 하니, 각자 자신은 어떤 '정치인'이 될 것인지 다짐을 해보는 것도 좋겠다. 스스로에게 한 공약은 지켜나가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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