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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Jun 17. 2018

저 사람은 왜 저럴까?

Part 3. 심리학으로 바라보는 직장생활 #21

Part 3. 심리학으로 바라보는 직장생활 #21

도대체 저 사람은 왜 저러지?


우리는 직장에 '일'을 하러 간다.

그리고 그 '일'은 사람이 한다. 그러니 '일'을 하려면 결국 사람과 부대껴야 한다. 그것을 우리는 '커뮤니케이션', 또는 '사회생활'이라고 표현한다. 혹자는 직장생활은 "사람으로 시작해 사람으로 끝난다"라고까지 한다. 맞는 말이다. 그러니 직장생활에서 보람을 얻을 때나, 죽을 것 같이 힘들 때도 모든 것은 '사람'으로부터 온다. 직장 내에서 '사람'들로부터 인정받으면 날아갈 듯 기분이 좋고, '사람'들로부터 인정받지 못하면 그것은 곧 스트레스가 된다. '갈등'도 사람과 사람 간의 문제다. 내가 '일'과 아웅다웅해본 경험은 별로 없다. '일'을 사이에 두고 벌이는 각각의 KPI(Key Performance Index)의 상충이 곧 '갈등'이다.


이렇다 보니, 우리는 사람들에게 실망한다. 상처받고, 상처 주며 같은 월급쟁이들끼리 불편한 상황을 만들고야 만다. '도대체 저 사람은 왜 저럴까?', '왜 날 못 괴롭혀서 안달일까?', '왜 이 상황을 이해하지 못할까?' 등의 생각은 하루에도 수 십 번이다. 그러한 사람을 만났을 때 나는 어떻게 받아들이고 행동하는가? 혹시 나는 다른 사람에게 그러한 행동을 하고 있는 건 아닐까? (분명, 하고 있을 것이다.)


세상과 타인을 바라보는 관점


'아는 것이 힘이다'로 유명한 영국의 철학자 프란시스 베이컨은 '4대 우상'을 명명했다. 그는 경험주의 철학자였으며 새로운 학문으로 '귀납법'을 제시했는데, '4대 우상'이 경험을 통해 참다운 인식을 하려는 그 과정을 방해한다고 보았다. 이 '4대 우상'이 우리네 직장인에게도 얼마나 잘 들어맞는지를 보고 입술을 씰룩거렸던 기억이 난다.


첫째, 종족의 우상

종족의 우상은 인류라는 종족이기에 갖게 되는 선입관을 말한다. 예를 들어, 신의 모습이 사람과 같다고 생각하거나 '새들이 노래한다'라고 표현하는 것도 그렇다. 우리네 직장인은 '직장인'이라는 종족의 관점에서 사람을 대한다. 어찌 보면 '투영'일 수도 있겠다. 누군가를 보고 사내에서 '정치'를 한다고 표현하거나, 직장인의 삶을 희화화하며 직장인의 삶을 회화된 에피소드에 끼워 맞추고 공감하는 것이 그렇다.


둘째, 동굴의 우상

동굴의 우상은 개인의 편협한 경험에서 출발되는 편견을 말한다. 자신의 경험이 마치 보편적 진리인양 말하는 사람들이 여기에 속한다. 흔히들 '꼰대'라고 부르는 그것이다. 중요한 것은 상대방을 '꼰대'라고 판단하기 전에, 내가 '역꼰대(도움이 되는 말도 무조건 들으려 하지 않는)'는 아닌지 살펴봐야 한다. 물론, '꼰대'는 자신이 '꼰대'인지 모른다. 남을 보기 전에 나부터 돌아봐야 한다.


셋째, 시장의 우상

시장의 우상은 뚜렷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단어가 존재하면, 그 단어에 대비되는 대상이 실재할 것이라 여기는 것이다. 이것은 개념적 혼란을 일으키고, 편견을 불러온다. 직장에선 '루머'나 '이미지'가 그렇다. 실재가 없더라도 떠도는 누군가에 대한 이야기나 이미지는 그 대상을 심하게 규정하고 만다. 대개는 그 상대방과 직접 이야기해보면 자신이 알고 있던 것과 달라 놀란다.


넷째, 극장의 우상

극장의 우상은 권위에 굴복하는 편견을 말한다. 전문가나 집단이 말하는 것에 대한 무조건적인 '동조'가 이에 속한다. 직장인은 '동조'뿐만 아니라, 상사의 '지시'에도 따라야 하기 때문에 '극장의 우상'에 쉽게 노출되어 있다. 물론, 똑똑한 직장인은 그 '지시'를 따르더라도 자신의 것으로 소화하거나 현명하게 '동조'하지 않는 법을 실천하기도 한다.


자, 우리는 '직장'이라는 세상을 어떻게 바라봐 왔을까. 또 타인에 대한 시선은 어떠했는가. 굳이 '4대 우상'에 우리의 시선을 끼워맞추자는 것은 아니지만, 어쩐지 크게 부정할 수 없음을 이내 깨닫고 만다. 

상대방을 '직장인'이라는 범주에 가두어서 보거나, 나의 편협한 경험을 보편적으로 받아들이라고 강요한 적은 없을까? 실제로 확인되지 않은 루머들을 듣고 사람을 판단한 적은 없는지, 그리고 상사의 지시에 맹목적으로 따르려고만 하지는 않았는지 등.


경험이 쌓이면서 직장과 타인을 바라보는 시선이 넓어지긴 하지만, 또 반대로 무언가에 고정되거나 오히려 편협해질 수 있다. 즉, 어떠한 '우상'에 사로잡혀 있진 않은지 스스로를 돌아봐야 한다.


'반응'에 '반응'하지 않아야 한다!


사실, 타인을 바라볼 때는 어떻게 봐야 하고 저 사람은 정말 왜 저러는지에 대한 힌트는 이 책의 서두에서 힌트를 준 바 있다. 그것은 내가 '직장인 심리학'이라는 글을 쓰기 시작한 이유기도 한다. 즉, 저 사람의 행동과 성격은 모두 '자극'으로부터 나온 '반응'이다. 상사가 나에게 짜증을 내며 호통을 쳤다면, 상사의 상사로부터 꾸지람을 들은 '자극(원인)'이 있었을 것이다. 항상 퉁명하게 말하는 동료나 선후배는 어렸을 때 누군가를 도와줬다가 오히려 피해를 입었던 기억, 또는 누군가에게 쉽게 보이지 않으려는 방어기제가 발동하고 있을지 모른다.


우리 맘 속에 누군가와의 '갈등' 때문에 튀어나가는 '감정'이나 '말', '행동'과 '생각'모두 '반응'이다. 그러니 우리는 누군가의 '반응'에 '반응'하고 있는 셈이다. 이렇게 되면 '본질'이 흐려진다. '원인(자극)'은 모르는데, '결과(짜증)'과 '결과(짜증)'이 만나 갈등을 고조화 하는 것이다.


말은 쉽지만 실천하기는 매우 어렵다. 하지만 그럴수록 우리는 더 노력해야 한다. 상대방의 '반응'의 원인이 무엇인지를 알고 이해하면 상대방이 덜 미워보이고, 나는 상처를 덜 받는다. 또 나의 '반응'이 갈등을 첨예화하는 방향이 아닌, 그것을 해결하는 방향으로 조정해 나갈 수 있다. 나는 이것을 연습하고 또 연습하고 싶다. 완벽한 상태에 이를 수는 없을 것이다. 그것은 '감정'이 전혀 없는 사람이나 신에게만 가능한 영역이다.


그래서 이번 '타인 바라보기'에서는, 우리는 직장 내에서 나 아닌 다른 사람들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어떠한 '우상'에 사로잡혀 잘못 보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리고 '반응'에 대한 '원인'이 무엇일까를 함께 고민하며 하나하나 짚어보고자 한다. 


우선, 우리는 '반응'에 '반응'하며 받지 않아도 될 상처와 기분 나쁨을 겪어왔다는 것을 '자각'하는 것으로부터 그 연습을 시작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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