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테르담 Dec 30. 2017

자신을 통해 바라보는 '직장인 발달 단계'

Part 3. 심리학으로 바라보는 직장생활 #13

우리의 첫 입사 때는 어떠했는가?


기억하는가.

개구리 올챙이적 시절 말이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은 올챙이일 수도 있고, 개구리일 수도 있다. 아니면 아직 개구리 알이거나. 또는 개구리에서 다른 무언가로 탈바꿈한 존재일 수도 있겠다. 어찌 되었건 사회에 첫 발을 들여놓았을 그때를 그 누구도 잊을 리 없다. 만약, 당신이 잘 모르는 어느 상사와 어색한 자리를 함께 하고 있다면 그 상사의 입사 때는 어떠했는지 물어보자. 그러면 1시간은 금방 지나갈 것이다. 지나온 십수 년은 무얼 하고 살아왔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아도, 처음 그때의 기억은 또렷할 것이기 때문이다.


사회에 첫 발을 들였을 때, 즉 신입사원일 때 우리는 다시 태어난다고 표현해도 비약이 아니다.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 사방팔방이 낯선 것 투성이. 혼자서는 제대로 먹지도, 걷지도 못하는 존재와 같다. 속된 말로 똥오줌 못 가리는 상황은 별반 다를 것 없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직급이 올라가고 경험이 쌓이며 직장 내에서의 정체감을 확립해간다. 더불어 개개인의 성격도 확립해 나가는데, 직급과 직책에 따라 개인이 원래 가지고 있던 그것과 다른 경우도 있다. 이를 종합해보면 직장생활을 시작한 사람은 결국 다시 태어나 어려서부터 겪는 '발달단계'와 비슷한 과정을 겪는다는 것이다. 


심리학에서의 발달단계


심리학에는 유명한 발달단계 이론이 있다. 

바로 프로이트의 그것이다. 구강기, 항문기, 남근기, 잠복기, 생식기에 대해서는 아마 많이 들어봤을 것이다. 그리고 이 이론을 배우고 나면 알고 있는 모든 사람들을 각각의 단계에 고착된 사람이라고 섣불리 판단할 가능성이 높다. 프로이트의 이 이론은, 세상 어떤 사람도 이 이론에 끼워 맞출 수 있다는 데에 그 위대함이 있고 반대로 그러해서 비판을 받기도 한다.

이 성(姓)적인 에너지에 집중된 프로이트의 이론을 반박하고 재정립한 사람이 바로 '에릭 에릭슨 (Erik Homburger Erikson)'이다. 에릭슨은 '이드 (id)'의 역할보다는 '자아'의 역할을 중시한 '자아 심리학'을 주창했는데, 프로이트의 발달단계 중 '생식기'를 '청년기'로 바꾸고 성년기의 세 가지 단계를 추가하였다. 

에릭슨의 심리사회적 발달단계

1. 신뢰감 대 불신감 (영아기, 0-1세)
2. 자율성 대 수치심 (유아기, 2-3세)
3. 주도성 대 죄책감 (유치기, 3-6세)
4. 근면성 대 열등감 (아동기, 6-11세)
5. 정체감 대 정체감 혼미 (청소년기, 11-18세)
6. 친밀성 대 고립감 (청년기, 18-35)
7. 생산성 대 침체감 (장년기, 35-65)
8. 통합성 대 절망 (노년기, 65세 이상)

심리학의 발달 단계는 생물학적 과정에 근간을 두고 있다. 

즉, 태어나서 나이에 따라 맞이하는 낯선 환경과 가족 그리고 스스로의 외부 상호작용에 의해 성격이 형성되고 자아가 발달한다는 것이다. 직장인은 이미 생물학적으로는 다 자란 상태다. 생물학적으로는 다 자란 상태에서 사회에 첫 발을 들여놓는다. 하지만 서두에서도 언급했듯이 몸만 자란 것이지 직장에서의 첫 생활은 영아기의 그것과 다름이 없다. '어쩌다 어른'이라는 말이 크게 유행하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해서 사람은 생물학적으로는 이미 자라서 직장생활을 하지만 '심리/ 정서적'으로는 심리학에서 말하는 발달 단계를 처음부터 다시 거치게 된다. 아무것도 모르던 아이가 부모와 시간을 보내며 '관계'에 대해 깨닫고 상호작용 하는 것, 낯선 환경에 거침없이 도전하며 많은 것들을 배워가는 것, 그리고 그 안에서 나는 누구이고 왜 살아가는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하고 자아 정체감을 찾아가는 과정까지. 이 과정이 신입사원이 성장해가는 그것과 크게 다를 바가 없고, 실제로 우리네 직장인은 그렇게 발달/ 성장해왔다. 


특히나 주목해야 할 부분은 바로 에릭슨이 주창한 '정체감 혼미'라는 개념이다. 

직장인은 장성한 어른이지만 직장 생활 시작과 더불어 그 모든 체계가 해체되는데, 이는 급격하게 바뀐 역할 변화와 낯선 환경에 기인한다. 기존까지 살아오면서 내가 했던 역할이 아닌 회사가 원하는 역할을 해야 하는 존재로 탈바꿈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거기에서 오는 '정체감 혼미'의 충격은 대단해서 나의 모든 것이 해체되고, 발달단계 처음으로 돌아가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정체감을 (다시) 찾기 위한 긴 여정이 시작된다.


모라토리엄, 그 유예기간


자신의 성장 과정을 한 번 돌아보자. 혹시 사춘기 겪고 있거나 지난 자녀가 있다면 자녀를 관찰해 봐도 좋을 것이다. 우리 삶에서 가장 혹독하지만 그래도 의미 있고, 크게 성장할 수 있었던 때는 언제인가? 바로 질풍노도의 시기일 것이다. 그리고 이 시기는 바로 '모라토리엄'의 시기라고 에릭슨은 말했다. 

말 그대로 '유예기간'이란 이 뜻은, 심리학에서는 '지적/ 육체적/ 성적인 능력면에서 한 사람의 몫임에도 불구하고 사회인으로 의미와 책임의 지불을 유예하고 있는 상태'를 말한다.

즉, 자아 정체감을 찾기 전 단계에서 오는 기간이라 볼 수 있다. 나도 뭔가를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주위에서는 걱정스러운 눈빛을 보내고 아직까지 하지 말아야 할 것들 투성이다. 거기서 오는 욕구불만과 정체감의 혼미가 바로 질풍노도 시기의 핵심 에너지다. 


이 '유예기간'을 혹시 기억하는가? 신입사원 때를 말이다. 출근 첫날을 돌이켜보자. 장성한 어른임에도 선배의 뒤를 쫄래쫄래 따라다니며 인사를 하고 이것저것 안내를 받았던 그때. 화장실을 가거나 밥을 먹으러 갈 때도 혼자서는 도저히 의사결정을 자유롭게 하지 못했던 그때. 일이 주어지지 않아 책상 앞에서 멀뚱멀뚱 앉아 있거나 회사 카탈로그에 코를 박고 있던 그때를 말이다. 여기는 어디고, 난 누구인지에 대한 회의감이 몰려오기 시작한다. 내가 쓸모 있는 사람인지에 대한 의문도 생겨나면서. 이제 막 태어난 아이와 다른 점이 무엇일까? 겉으로는 키도 크고, 배울만큼 배우고, 말도 하지만 말이다.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나와 동기가 함께 같은 부서 배치받았을 때, 우리 부서에 과중한 업무가 배정되자 선배가 뱉어내던 푸념을.

"아, 우린 신입사원 두 명이나 받았는데 이걸 어떻게 하라는 거야!"

그러니까 선배 입장에서는 나와 동기는 전력 외 인원이었고, 무슨 일을 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두 눈 멀뚱멀뚱 뜨고 입이 있어도 아무 말도 못 하는 아기와 같은 존재. 어렸을 때부터 발달 단계를 다 거치고, 대학까지 들어가 고등교육까지 받은 한 존재가,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이제 막 영아기로 돌아간 것과 같은 순간이었다. 지금에야 나도 그 의미가 무엇인지 완전히 공감 하지만, 당시로서는 무시당한 듯한 마음에 그 말이 또렷이 기억나곤 한다.




심리학에서 연구한 발달 단계는 그리 어려운 개념이 아니다.

심리학이 '우리 마음'을 연구하는 것처럼, 발달단계 이론 또한 '우리가 자라온 과정'을 객관적으로 증명하려 노력한 흔적이다. 그리고 우리는 모두 그것을 직접 거쳐왔다. 그럼에도 심리학이 주는 선물은, 우리가 의식하지 못한 것들을 객관적으로 증명하고, 다시금 돌아보게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재미있게도 그 이론들은, 그것을 연구한 학자의 주관적 경험이 매우 깊게 반영되어 있다. 예를 들어, 리비도를 주창한 프로이트는 어렸을 적 자신의 어머니에 대한 이성적 감정을 바탕으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이론을 만들었고, 에릭슨은 본인이 경험했던 노르만인과 유대인 사이에서의 '정체감 혼란'을 바탕으로 발달단계 이론을 완성했다. '열등감'과 그것을 채워나가고자 하는 '보상작용'이 삶의 원동력이라 주장한 아들러는, 실제로 태어날 때부터 건강이 좋지 않았고 사이가 나빴던 형에게 밀려 열등감 속에서 자라왔다고 고백했다.


지금 태어나면서부터 우리가 겪었던 발달단계를 한 번 돌이켜보자. 나는 태어나서 어렸을 적, 어떤 기억부터 떠오르는가. 내가 부모님이나 형제에게 받은 영향은 무엇이었을까. 별로 기억하려 노력하지 않아도 떠오르는, 머리나 가슴에 새겨진 특별한 기억은 무엇이 있을까? 내 삶에 영향을 주었던 사건이나 말, 누군가의 행동은 무엇이었는가?

마찬가지로, 입사했을 때를 떠올려보자. 어떤 기억부터 나는가. 그때의 분위기, 그리고 내 기분은 어떠했는가. 부모님이나 형제에게 느꼈던 그것처럼, 나의 선배나 상사 그리고 멘토 등에게서 받은 영향은 무엇이었을까? 잊히지 않는 기억들을 되돌아보면 그것이 나의 직장 생활에 어떠한 영향을 주진 않았을까? 누군가를 보며 저렇게 되고 싶다던가, 저렇게 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지는 않은지? 내가 직장에서 행동하는 방식이 누군가에 의해 또는 어떤 사건에 의해 기인한 것은 아닐지?


그것은 자신만이 알 일이다. 내로라하는 유명한 심리학자들도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론을 정립해나갔다. 각자가 느낀 그 경험은 소중하다. 그러니 돌아보자는 거다. 

'직장 바라보기'를 거쳐 '자신 바라보기'의 시작인 것이다.




'견디는 힘' (견디기는 역동적인 나의 선택!)

'직장내공' (나를 지키고 성장시키며 일하기!)

'오늘도 출근을 해냅니다' (생각보다 더 대단한 나!)

'아들에게 보내는 인생 편지' (이 땅의 모든 젊음에게!)

'진짜 네덜란드 이야기' (알려지지 않은 네덜란드의 매력!)

매거진의 이전글 직장생활과 루머의 상관관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