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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Feb 04. 2018

[영화 에세이] 이터널 선샤인과 번지점프를 하다

언젠가 누군가에게 이유와 조건 없이 강하게 끌린 적이 있다면

사랑은 기억과 죽음을 거스를 수 있을까?


라쿠나는 혁신적인 회사다.

사람의 기억을 지워준단다.


사랑했던 클레멘타인이 자신의 기억을 지운 것을 알게 된 조엘은 그 자신도 그녀와의 기억을 지우기로 결심한다. 기억은 지우기로 하지만, 추억은 남겨두려는 조엘의 무의식이 예사롭지 않다.




죽음은 기억을 지우기에 가장 확실한 방법일지 모른다.

국문학과 82학번 서인우는 같은 학번의 사랑스러운 그녀 인태희를 만난다. 그녀는 결국 죽음을 맞이하고, 인우는 갑자기 사라진 그녀를 잊어간다. 하지만 부지불식간에 찾아오는 그녀라는 존재의 어떤 단서는 인우의 기억을 들춰냄은 물론 정체성마저 혼란스럽게 만든다.


"'기억'과 '죽음' 그리고 '사랑'"


무릇, 사람의 인생은 '경험'하는 것보다는 '기억'하는 것에 더 가깝다.

'지금'은 '순간'으로 지나가고, 그렇게 하루하루 살다 보면 놓아진 화살 같은 시간을 되돌아보게 된다.


경험에 기반한 생생한 실증을 일일이 할 수 없는 사람은 '기억'이라는 도구를 통해 인생을 반추한다.

그리고 차곡차곡 인생을 만들어 간다. 그러기에, 어쩌면 왜곡이 있을 정도다.


재밌는 것은 왜곡된 기억을 가지고 있어도 결국 그것이 그 사람의 인생이 되고 만다.

인연으로 기억하느냐, 악연으로 기억하느냐는 발생한 현실과  상관없이 오롯이 기억하는 자의 몫이다.


그래서 '기억'은 아주 강력하다.

이렇게, 강력한 '기억'을 지워냄으로써 인생을 바꿀 수도 있다는 것을, 이터널 선샤인의 감독 미셸 공드리는 전제로 삼는다.




사람의 존재를 가장 흔들리게 만드는 것은 '죽음'이다.

우리는 모두 죽음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어쩌면 죽기 위해 사는지도 모르겠다.


시간의 차이가 있을 뿐, 피할 수 없는 이 어마 무시한 존재는 그래서 많은 영화와 드라마, 소설에서 사랑을  갈라놓거나 불태우는 유용한 도구로 사용된다.


로미오와 줄리엣이 그랬고, 젊은 베르테르가 그랬고, 영화 '편지'의 환유와 정인이 그랬다.

죽음 앞에 무너지고, 죽음 앞에 강해졌다.


그래서 '죽음'은 아주 강력한 것이다.

'죽음' 앞에 사랑의 변신은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고 이는 세상 모든 사람들이 공통으로 느끼고 있다는 대전제로 승화된다.


"'사랑'은 '기억'과 '죽음'보다 강할까?"


어쩌면 지극히 신파적 일지 모른다.

'이터널 선샤인'은 사랑이 '기억'보다 강하다고 말하고.

'번지점프를 하다'는 '죽음'도 두 연인을  갈라놓지 못했다고 말한다.


사랑 만능론이자, 어쩌면 사랑이 마법의 저주를 풀어주는 열쇠라는 고전의 고전보다 어쩌면 더 노골적이고 지루한 메시지일지 모른다.


메트릭스의 네오가 트리니티를 사랑의 눈물로 살려내는 장면은 장엄하기도 했지만 실소를 자아내게 만드는 것과 같은 맥락이자, 죽어가는 야수에게 사랑 고백을 했더니 야수가 이내 멋진 왕자로 변한다는 아름답다 못해 뻔뻔한 그것과 같다.


그럼에도 이 두 영화의 파급력은 강하다. 강하다 못해 영화를 보는 사람들의 주변을 돌아보게 만든다.

내 옆에 있는 사람이, 혹은 내 주위의 사람들이 나의 어떤 기억과 죽음, 전생에 엮여 있는 사람들이 아닐까 하는.


"사랑이란 무엇일까에 대한 반추"


그리곤 사랑에 대해 되짚어 본다.

사람들의 사랑은 어렸을 적 동화 속 아름다운 왕자와 공주로 시작해, 아픈 이별의 신파를 거쳐 마침내 소스라치게 현실적인 현실의 사랑에 봉착하고 만다.


지지고 볶고 싸우며, 물질과 육체의 문제로 아웅다웅하고 다른 사랑을 갈구하며 상처를 주고, 그래도 암담한 현실 속에서도 한 송이 꽃을 피우리라는 낭만적인 사랑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그래서 이러한 현실 속에서도, 영화는 말한다.


조엘

-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은 널 싫어할 이유를 못 찾겠어."
- (기억이 지워져 가는 가운데) "그냥 음미하자."
- "난 너 없는 곳은 기억이 안 나."
서인우

-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당신을 사랑합니다."
- "늦게라도 와줘서 고마워."
인태희

- "근데 왜 아는 척 안했냐 면요, 조심하고 싶었어요. 아는 척하는 순간 아무것도 아닌 게 될까 봐. 그렇게 되고 싶진 않았거든요."


다행히, 영화는 신파의 플롯을 따라 흘러가지만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가 제법 무겁고 현실적이다.


다시 사랑하게 되더라도 서로를 헐뜯고 지겨운 현실로 돌아갈 것이라는 것을 알고도.

또 환생한 사랑이 예전과 같이 그리 아름답지 못한 모습일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도.


사랑은 다시 하게 되니, 그렇게 다시 한 번 사랑을 돌아보라고 말한다.


"지금 우리 주위에 있는 사랑의 모습은..."


사랑에 대한 종류를 나열하고 싶진 않지만, 우리 주위에는 다양한 사랑의 모습이 존재한다.

어떤 것은 규정을 해야 명확해지고, 또 어떤 것은 규정을 하려고 하면 할수록 희미해진다.


사랑의 종류를 파악하고 규정하기 이전에, 본질적인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사랑은 왜 하는 것일까?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일까? 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하는 것일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랑 만능주의의 고전과 문학이 이토록 전해내려 온다는 것은 수천 년 전의 사람들과 우리의 '사랑'에 대한 생각과 현실이 그리 많이 다르지 않다는 것을 말해준다.


어느 날, 문득.

갑자기 다가오는 인연에 대해. 그리고 존재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자.


내게 지워진 기억은 없는지.

내게 사랑했던 전생의 누군가가 있었던 것은 아닌지.

어느 날 문득, 이유 없이 어딘가를 가지 않고는 못 배기겠다는 생각이 들거나, 갑자기 딸꾹질이 나온다면 좀 더 극적일 것이다.


가끔은 소스라친 현실을 잊고라도, 그러한 꿈과 생각에 빠져볼 수 있는 것도 삶에 플러스가 되는 활력소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그런 생각을 할 수 있게 해주는 존재가 있다는 것 그 자체만으로, 감사하고 소중한 일이다.


오늘은 다시 한 번 더,

이터널 선샤인과 함께 번지점프를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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