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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Mar 17. 2018

브런치가 나를 바쁘게 한다.

앞으로 더 바빴으면 좋겠다.

언제부터 글쓰기를 시작했어요?


사람들이 묻는다.

나는 대답한다. "별로 안되었어요!"

그러면 사람들이 놀란다. 아니 그러면 그 많은 글을 언제 쓴 거예요?




나는 정확히 기억한다. 그것은 2015년 9월. 당시, 유럽 주재원으로 있을 때였다. 자동차로 가족여행을 갔을 때, 10시간 넘게 운전하며 문득 든 생각. 너무 소비적으로 사는 거 아닌가. 뭐라도 생산해보자. 그리고 나는 말 그대로 '글'을 생산해내기 시작했다. 생산하기로 한 것이 '글'이었던 이유는 간단하다. 지금 당장 유형의 것을 생산해낼 수 없으니, 무형의 것에 대해 고민하다 보면 아마 많은 사람들이 나와 같은 결론에 도달할 것이다.


처음 무얼 어디에 쓸까 고민했던 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먹먹하다.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은 것에 대한 도전은 그렇게 외로운 법이다. 남들이 하는 것처럼 SNS나 그저 허름한 어느 블로그에 '아무 글 대잔치'를 할 즈음. 그렇게 나는 브런치를 만났다. 아마 브런치도 그즈음 시작되었던 것 같다. 브런치의 콧대는 높았다. 두 번의 작가 거절. 도대체 나는 왜 아닌건지 이유를 알려달라는 항의성 메일에, 그제야 브런치는 나에게 축하한다는 메시지를 주었다. 장난 지금 나랑 하나.


그때였다. 글쓰기의 황홀경을 맛본 것은. 모든 것이 소재였다. 영감(靈感)이 떠올랐고 그것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안 하던 메모를 하고, 하루에 하나 글쓰기를 결심하고는 두세 개를 써 내려갔다. 말 그대로 글을 토해내는 수준이었다. 잠도 안 자도 피곤한 줄 몰랐고, 밥을 안 먹어도 그저 행복했다. 돌아보면 낯 뜨거운 글들이 가득하지만, 그래도 태어나서 잘한 일 중 몇 안 되는 일로 그 당시를 회상한다.


지금은 어느덧 총 조회수 2백만을 넘겼다. 남루한 글을 읽어준 분들께 그저 고마울 뿐이다.


어딘가로부터 온 연락들


꿈만 같았다.

어느 출판사란다. 두 볼을 꼬집어 현실을 아는 것은 너무 상투적이라 하지는 않았지만, 이미 머릿속으로는 그것을 그리고 난 뒤였다. 운영 중인 매거진 중에 주재하면서 공부한 그 나라에 대한 이야기를 책으로 내자는 제안이었다. 출판 계약을 하고 인세에 대해서도 논의를 했다. 돈의 문제가 아니었다. 내 이름 앞에 '저자'란 수식어가 붙는 순간. 그동안 아이들에게 글 쓰느라 놀아주지 못한 결정적 증거와 변명은 그렇게 나의 첫 책이란 이름으로 탄생했다. (주재하던 국가에 대한 글을 썼더니, 주한 대사관에서도 유학을 준비하는 학생들 대상으로 강의 의뢰도 들어온다.)


그다음 연락은 한 온라인 패션업체였다. 내 브런치 글을 봤다고 하며 '카피라이팅'을 해보겠냐는 권유를 해온 것이다. 뜻밖이었다. 그리고 그 당시도 너무나 바빴기 때문에 '거절' 의사를 표했지만, 제안자의 설득에 나는 어느샌가 더 좋은 단어와 표현을 고민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업체는 온라인 마케팅을 맛깔나게 잘 하는 곳이어서, 콘텐츠의 중요성을 잘 알았다. 별도 블로그를 운영하며 사람들에게 감성적인 접근을 하는데, 그곳에도 나는 글을 기고하기 시작했다.


연락은 또 있었다. 국내 최초 맞춤형 조언 앱. 내 글을 봤다며 멘토가 되어 달란다. 바쁘다며 고사했지만, 나는 또 어느새 누군가의 고민을 같이 고민하고 있었다.


여기서 끝일까? 아니다. 취업 준비생들을 외국계 기업과 연결해주는 한 스타트업 회사에서 콘텐츠를 위해 나의 글을 게시하겠단다. 상업적 용도가 아니면 괜찮다고 허락했다. 한차례 미팅을 하고 난 뒤, 나는 그 회사의 멘토가 되었다. 그래서 주말이면 젊은 친구들에게 현직자로서 강의와 코칭을 하고 있다.



그 후로도 난 출판사와 다음 출간을 위한 협의를 계속하고 있다. 멘토링에 대한 책, 심리학에 대한 책을 내볼 요량이다. 고맙게도 먼저 연락을 주셨다. 브런치를 보고 말이다.


나는 좀 더 바빠졌고, 좀 더 행복해졌다.


나는 공언을 하고 다닌다.

"책을 쓰고 강의를 다니는 것이 나의 비전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 있는 회사에서 승승장구할 것이다!" 돌아보니, 글을 쓰기 시작한 후 내가 공언하고 다니는 삶에 한층 더 가까워졌음을 알 수 있다.


나는 좀 더 바빠졌다. 일 하나만으로도 바쁜데 말이다. 나의 직업을 등한시하고는 다른 것을 이룰 수 없다. 내가 현재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빈틈이 없어야 한다. 내가 하는 일에 대한 열정이 없고, 다른 것을 하느라 정신 팔려 그 일을 등한시한다면 난 멘토의 자격이 없다. 책을 쓰기 위한 소재도 생겨나지 않을 것임을 잘 안다.


그래서 미치도록 바쁘다. 글도, 책도 꾸준히 써야 하고. 강의안도 만들어야 하고. 이것저것 도움을 요청하는 멘티들에게도 일일이 답을 주려 노력한다. 요전엔 자기소개서 코칭을 받은 멘티가 서류에 합격했다며 면접에 대한 조언을 달라고 연락이 왔다. 면접 또한 조언을 줬더니, 면접을 아주 잘 봤단다. 결과는 아직 모르지만 왠지 뿌듯하고 보람된다. 기고해야 하는 글의 마감은 다가오고, 사랑하는 가족들과도 시간을 잘 보내야 한다. 아이들은 어느 때보다 더 부모의 사랑이 필요할 때다.


그런데 어쩐지 좀 더 행복하다. 죽도록 바빠도 말이다. 다른 일들이 많으니, 현재 하는 일에 몰입을 하게 된다. 출장도 잦고 몸은 힘들지만, 멘토로서 본보기가 되어야겠다는 밑도 끝도 없는 사명감도 한 몫한다. 선순환이다. 이것이 저것을 자극하고, 저것이 이것을 몰입하게 하는. 몸이 지쳐도 웃을 수 있는 이유다. 힘들게 야근을 하고 나와도, 만족스럽게 공부를 하고 독서실을 나섰던 수험생의 행복한 피곤감을 추억할 수 있다. 그때의 새벽 공기를 기억하고 되새기니 기분은 한층 더 좋았다.


나는 그렇게 좀 더 바빠졌고, 좀 더 행복하다.

아마도, 브런치 때문에.


좀 더 바빠져도 괜찮을 것 같다. 앞으로도!




'직장내공' (나를 지키고 성장시키며 일하기!)

'오늘도 출근을 해냅니다' (생각보다 더 대단한 나!)

'아들에게 보내는 인생 편지' (이 땅의 모든 젊음에게!)

'진짜 네덜란드 이야기' (알려지지 않은 네덜란드의 매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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