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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Oct 03. 2021

큰 회사를 다니면, 큰 사람이 될까?

'회사의 크기'가 '나'의 크기가 아니라, '나의 크기'가 '나'의 크기

경제 성장과 기업의 횡보


1980년 이후 한국의 경제 성장률은 탄탄대로를 달렸다.

1980년 오일쇼크로 마이너스 성장을 잠시 기록했지만, 1983년에는 경제 성장률이 물가 상승률을 추월할 정도로 성장이 가팔랐다. 여기에 1986년 아시안 게임, 1988년 올림픽을 개최하면서 1994년에는 마침내 일인당 GDP가 1만 달러를 돌파하는 기염을 토했다.

이 여세를 몰아 1996년에는 세계 경제협력 개발기구인 'OECD'에 가입을 하였고, 1997년 외환위기를 맞이했으나 대한민국 특유의 근성으로 위기를 모면하고 20002년에는 월드컵을 개최하며 2006년에는 일인당 GDP 2만 달러를 돌파했다.


성장률이 폭발적으로 증가할 때, 기업들은 앞다투어 대학가 앞에 줄을 섰다.

학생들은 원하는 대기업을 골라 갈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이후, 경제 성장률은 두 자리를 넘은 적이 없으며 3%대 성장만 해도 다행이라는 정서가 자리잡기 시작했다.

성장세의 후퇴 또는 정체는 기업활동과 밀접히 연관된다. 성장세가 둔화되니 기업들은 허리띠를 졸라맸다. 매년, 어느 한 해를 거르지 않고 '위기경영'이 화두가 되었고 허리띠를 졸라매는 것도 모자라 마른 수건을 짜는 압박이 되풀이되었다. 이러한 기업의 횡보는 사회에 그대로 반영이 되어 비정규이 늘어났고, 대단위로 신입사원을 채용하는 공채는 수시모집으로 바뀌며 '경력 있는 신입사원(?)'을 선호하는 웃지 못할 트렌드까지 만들어지고 있다.


회사의 크기는 나와 비례하지 않는다.


간혹, 공채 면접관으로 신입사원 면접에 참가하곤 한다.

한 면접자가 퇴실하고 나면 면접관끼리 서로 의견을 나누는데, 서로의 의견이 그리 다르지 않다. 사람 보는 눈은 다 같다. 또 하나. 면접자들의 스펙과 학력, 그리고 자신감에 서로 놀란다. 단군 이래 최고의 스펙이라는 말이 맞다는 걸 몸소 느끼는 순간이다. 만약, 면접관인 우리가 지금 취업준비를 하고 있다면 과연 이 회사에 들어올 수 있었을까를 의문하며 혀를 찬다.


그러나, 그리 훌륭한 지원자들이 회사에 들어와서 일을 잘 해내느냐에 대해선 절반의 의구심이 있다.

대개는 회사의 크기나 브랜드, 어디선가 듣거나 미디어에서 본 이미지로 그 회사를 판단하기 때문이다. 마치 뮤지컬 무대에 홀려 뮤지컬 업계에 입문하였지만 그 모든 일은 무대 뒤에서 일어난다는 것을 알고 나서, 자신이 생각했던 일은 이런 게 아니라고 말하며 뛰쳐나가는 것과 같다.


나 또한 마찬가지다.

대학생은 '큰 학생'이지만, 결국 학생일 뿐이다. 먹고사는 실전 현장에 투입되면, '큰 학생'은 '(아주) 작은 사회인'이 된다. 학교에서 배우지 못했던 수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기대했던 것과 너무나 다른 현장에서 자존심과 자존감은 바닥을 친다. 박수받고 인정받던, CEO가 되겠다던 호언장담은 쥐구멍으로 사라진다. 명함에 새겨진 회사의 이름. 사람들이 아는 그 크기. 브랜드의 명성.


그것은 내 것이 아니며, 회사의 크기나 명성에 나는 비례하지 않는다.

단군 이래 최고의 스펙인 사람들에게는, 반비례의 정도가 더 크지 않을까란 생각이다.


회사의 크기보다 일의 크기,
자리의 높이보다 일의 의미


20여 년의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지금.

회사의 크기가 내 것이 아니라는 생각엔 변함이 없다. 은행 대출 창구에서 약간의 돈을 더 빌릴 수 있다는 것 외에는 회사의 크기와 나의 크기를 연관 짓지 않는다.


이것은 회사에 대한 부정이 아니다.

내가 성장해야 회사도 성장하고, 회사가 성장해야 나도 성장해야 한다는 건 내 신념이다. 다만, 회사의 크기에 나를 맡기지 말고 내 성장에 전적으로 힘써야 한다는 걸 말하고 싶다. 소위 말해 회사의 크기로 어깨 뽕의 정도를 가늠하지 말아야 한다는 말이다. 반대로, 회사가 작다고 내 어깨가 축 늘어져야 하는 것도 아니다.


세상의 변화, 회사 안에서의 변화.

그리고 사람들의 변화를 볼 때, 분명 이전보다는 많은 것들이 바뀌어 있는 시대다. 팀원보다 나이 어린 리더가 탄생하고, 임원들도 실전 플레이를 해야 하는 세상. 정체된 성장과, 새로운 먹거리를 처절하게 찾아야 하는 애자일(Agile)의 시대.


회사의 크기나, 직급에만 연연할 때가 아닌 것이다.

하여, 요즘 내린 결론은 '회사의 크기보다 일의 크기', '자리의 높이보다 일의 의미'라는 것이다.


나는 어떤 '일'을 하고 있는가?
어떤 '일'을 하고 싶은가?


어떤 일을 하는 사람에게 누군가 질문한다.

"무슨 일을 하고 계십니까?"


A가 대답한다.

"그냥 뭐 벽돌을 나르고 있죠. 뭐 하는지 안 보여요?"


B의 대답은 다르다.

"저는 집을 짓고 있습니다."


성장의 시대엔 벽돌만 잘 나르면 되었다.

술을 잘 마시거나, 정치를 잘하거나. 소위 말해 아부를 잘하면 그것 또한 일을 잘하는 기준으로 여겨질 수 있는 시대였다. 어차피 열매는 떨어지는 시대이니, 그 열매를 얼마나 더 많이 챙겨가느냐가 관건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열매가 잘 떨어지지 않는다. 열매를 만들어내야 하는 시대이기도 하다. 그러니 이젠 '일'과 '실력'이 진정으로 필요한 시대가 되었다. 그래서 일자리가 줄어드는 이 시대가 한 편으론 안타깝지만, 다른 편으론 실력으로 승부해야 하는 시대라서 좋은 점도 있다.


그러니까, 회사의 크기나 직급과 직책에 대한 미련은 (직장인이라면 그것을 버리거나 부정할 수 없으니) 잠시 줄이고 내 일의 '의미'와 '크기' 그리고 '질'을 되돌아봐야 한다.


단, 오해는 하지 말아야 할 게 있다.

내가 원하는 일을 하지 않고 있다고 해서, 그게 의미 없는 건 절대 아니다. 어차피 직장이란 곳은 내가 원하는 일만 주어지는 곳이 아니다. 해야 하는 일, 하기 싫은 일을 하며 오히려 나는 더 성장한다. 벽돌을 나르는 건 정말 귀찮지만, 내가 만들 집을 생각하며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내가 내 일에서 의미를 찾고, 의미를 찾을 수 없다면 의미를 만들어내기라도 해야 한다.




최근 직장에서 급격한 슬럼프와 어려운 일을 겪은 적이 있다.

운도 따라주지 않았는지 업무 평가나 주변의 평판도 그리 좋지 않았다. 내가 만들어 내지도 않은 구설수에 오르락내리락했고, 보고는 하는 족족 (전문용어로) 까이거나, 질책을 받았다. 수십 년의 직장생활을 한 나에게 이것은 절체절명의 위기였다. 미래가 보이지 않았고, 내려갈 곳은 없는... 그리고 올라가야만 하는 조급한 나에게 이러한 상황은 마라톤의 어느 결승점 앞에서 그저 주저앉는 것과 같은 고통이자 두려움이었다.


그때, 생각을 바꿔봤다.

"그래, 직책이나 직급에 연연하지 말고 '일'에 집중해보자. 내가 그동안 하지 않았던 업무에 도전해보자."


나는 인사팀과 협의하여 새롭게 떠오르는 부서로 옮겨 달라고 했다.

리더 직급도 필요 없고, 주재원으로 나가지 않아도 좋으니 내가 해보지 않은 일, 새로운 일에 도전하게 해달라고 하여 부서를 옮겼다. 그리고 신명 나게 새로운 일을 배웠고, 신기하게도 나를 힘들게 했던 일들은 안개 걷히듯 걷혀 다시금 또 다른 기회를 맞이해 나는 지금 해외에서 근무를 하고 있다.


회사의 크기나, 자리의 높이에 연연할 땐 자주 넘어지고, 자주 마음이 불편했는데.

'일'에 의미를 두고 그것의 가치를 추구하다 보니 오히려 마음이 편해지기 시작했고, 그러하니 성과는 더 잘 나기 시작했다. 물론, 그 성과는 곧 내 성장이 되니 나는 다시 넘어져 일어나 달릴 수 있는 힘을 얻게 된 것이다.


누구나 나에게 일을 던질 수는 있다.

그러나 그 일의 가치와 의미는 내가 찾아야 한다.

하기 싫은 일이라고 해서 의미 없이 그것을 그저 흘려보내면 안 된다.


모든 일엔 의미가 있다.

왜냐하면 그 일을 하는 건 바로 '나'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직장생활이 힘들어질 때.

회사의 크기와 내 것의 크기가 비례하지 않아 무기력해질 때.

다음의 말을 기억하고 스스로를 추슬러야 한다.


'회사의 크기'가 '나'의 크기가 아니라, '나의 크기'가 바로 '나'의 크기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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