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차피 완벽하지 않을 거면서
무슨 일을 처리하기 전에 자꾸만 딴짓을 한다.
학생 때도 그랬다. 시험 기간만 되면 괜스레 책상을 청소하고 싶었다. 청소를 다 하고 나면 기진맥진해서 시험공부는 다음날 벼락치기로 이어졌다. 지금은 글을 쓰기 전에도 그렇고, 운동하기 전에도 그렇다. 누가 보면 깔끔 떤다고 할 만큼 나는 청소를 자주 한다. 그만큼 미루어지는 것들이 많다.
직장인이 되어도 달라진 게 없다는 걸 느낀다.
중요한 보고서가 있으면 그건 한 없이 미루어진다. 납기가 임박해 오는 보고에 투덜대면서도, 납기가 여유로운 보고서도 결국 하루가 임박해 끝내곤 한다. 왜 진작 시작하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를 할 여유조차 없다. 직장엔 납기가 임박하거나 조금은 여유로운 보고들이 산적해 있기 때문이다. 그것들이 얽히고설켜 결국 모든 것이 'ASAP'이다.
한 번은, 이런 내가 싫어 일을 네 가지로 나눠보았다.
중요하면서 급한 일
중요하지 않지만 급한 일
중요하지만 급하지 않은 일
중요하지 않고 급하지도 않은 일
4개 분면으로 나눠진 바탕화면 메모지엔 하나하나 일들이 정리되었다. 그러다 결국엔 그냥 '닥친 일'을 하느라 허덕였다. 무언가를 나누는 것도 일을 미루기 위한 '청소'와 같은 것이었다. 이런.
이렇게 중요하거나 해야 하는 일을 뒤로 미루는 경우는 보통 '완벽'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완벽하게 한 번에 끝낼 수 있을까란 두려움은 웬만한 다짐으론 뛰어넘을 수 없다. 심리학에서도 이런 경우를 '욕구불만의 회피'라 설명한다. 욕구불만이 심화될 것 같으면 그것을 회피하거나 뒤로 미루는 것이다. 다시 출발점으로 돌아가 지금까지의 욕구불만을 해소하고자 하는 심리. 내가 청소를 자주 하는 이유다.
그런데 이제 좀 알겠다. 어차피 보고서는 1차로 끝나지 않는다. 보고서 파일명에 '최종'말고도 '최최종', '최최최종', '진짜 최종', '정말 최종' 이 있다는 건 직장인이 되면 곧 알게 된다. 글을 쓸 때도, 운동을 할 때도 마찬가지다. 일단 해봐야 다음이 있고, 하루하루가 쌓이며 조금은 나아지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완벽할 필요 없다고 다짐해본다.
청소를 좀 줄여보자고 마음먹는다.
다행히, 오늘은 글 쓰기 전에 청소를 하지 않았다.
내가 좋아하는 살바도르 달리의 말이 생각났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Have no fear of perfection, you'll never reach it!"
"완벽을 두려워하지 마라. 어차피 완벽할 수 없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