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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Oct 15. 2018

버티기

 '버티기'는 비겁한 게 아니다. 또 다른 '선택'이다.

"나는 저분처럼 될 거야. 저분은 나의 워너비! 요즘은 얇고 길게 가는 게 더 낫다니까?"


키가 좀 작으신, 우리 회사를 약 30년간 다니시다 정년 퇴임하시고 계약직으로 좀 더 남아계신 부장님을 보며 회사 동료가 말했다. 그 말은 정확히 두 뉘앙스로 쪼개져 한 귀로는 진심이, 또 한 귀로는 조소(嘲笑)가 전해졌다. 솔직히 회사 동료가 그런 의도로 말한 것인지, 내가 그렇게 받아들인지는 분명치 않다.


잘 되어봤자 회사원.

그리고는 사오정. 인생 2막에 무얼 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한 사람들. 바로 우리들의 자화상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버티기'는 어쩌면 미덕이다. 초반부터 이건 아니다 싶어 뛰쳐나가거나, 다니던 중간에도 더럽고 치사하다며 용기를 내어 나가는 단 몇 %를 제외하곤 '버티기'는 각자의 필살기가 되어야 한다.


가장 고도의 기술은 '젖은 낙엽' 스킬이다.

땅(책상)에 달라붙어 빗자루로 쓸어도 잘 쓸리지 않는다. 마른 낙엽들이 어느새 저 멀리 사라질 때, 젖은 낙엽은 흡사 땅과 하나 된 듯 요동하지 않는다. 이런 건 교과서에 나오지 않는다. 학생 때 배운 수많은 과목 중에, 이 '버티기'를 알려주는 과정은 없다는 것이 놀랍다. 이 중요한걸, 정작 필요한 이걸 안 가르치는 우리 교육문화는 문제가 있는 게 아닐까?


그런데, 버텨보니 알겠다.

'버티기'는 비겁한 게 아니다. 수동적인 것도 아니다. '버티기'도 결국 나의 '선택'이다. 소중한 걸 지키기 위한 몸부림. 나 스스로를 성장시킬 수 있는 발판. 버티다 보면 알게 모르게 '근육'이 생긴다. '버티기'는 '작용'에 대한 '반작용'이기 때문이다. 그 '반작용'이 커지면 커질수록 한계의 게이지는 올라간다. 때론, 버티다 보면 새로운 것이 나타나 나를 안내하기도 하고, 정말로 내가 원하던 걸 하게 되는 경우도 많다.


오랜 기간을 버티시고도 계약직으로 더 연명하고 계신 그 부장님의 내공은 상상할 수가 없다.

존경스럽기만 하다. 남을 의식하거나, 자괴감에 빠졌다면 결코 그럴 수 없는 일이다. 한참 어린 임원 후배의 지시를 받아야 하고, X차 취급하는 주위 사람들의 시선도 감내해야 한다. 그러니 그분의 '버티기 근육'은 감히 내가 미루어 짐작하기 송구할 정도다.


신입사원 때 내가 원하지 않았던 시장, 하기 싫었던 업무, 상식 밖의 행동을 하는 선배들을 보며 퇴사를 고민한 적이 있다. 객관적으로 생각하고, 지금에 와서 생각해봐도 충분히 이해가 가는 대목이다. 퇴사를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하지만,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가 그때의 나를 만난다면 난 나 자신을 와락 안아주고 싶다.

그리고 정말 잘 버텼다며 어깨를 토닥일 것이다. 지금 내가 가진 역량과 희망, 그리고 소중한 주위 사람들은 내가 그때 포기하지 않았기에 얻은 산물이다. 버팀으로써 얻은 것이 너무나 많다. 그리고 지금도 버틸 수 있는 기초 체력은 그때의 '버티기'로부터 왔다.


뭔가 확실하지 않을 때.

어떤 길로 갈지 잘 모르겠을 때. 내가 하고 있는 일이 맞는지에 대한 의문이 들 때. 난 계속해서 버텨보려 한다. 근육을 좀 더 단련시켜야 한단 마음으로. 아직도 배울 것이 천지라는 자세로.


버티지 못하는 순간이 온다면, 그것은 내가 다른 것을 해야 한다는 신호일 테니.

버티는 것에 대한 회의도 잠시 접기로 한다.


이러든 저러든, 모든 것은 결국 내 '선택'임을 잊지 않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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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내공' (나를 지키고 성장시키며 일하기!)

'오늘도 출근을 해냅니다' (생각보다 더 대단한 나!)

'아들에게 보내는 인생 편지' (이 땅의 모든 젊음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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