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테르담 Aug 15. 2018

자부심

자부심은 어디에서 오는가

신입사원 때였다. 

나름 사람들이 많이들 알고 있는 우리 회사 이름이 나를 들뜨게 했었다. 가진 것 없이, 내세울 것 없던 나였다. 그래서 그랬을 것이다. 일종의 자부심이었을까. 세상을 다는 아니지만 조금은 가진 것 같았다. 그때도 취업이 쉽진 않았다. 고군분투해서 얻어낸 성과였으니, 조금은 들떠도 괜찮겠다 싶었다.


같은 방향의 동기 몇 명과 퇴근길 전철에 올랐다. 내 재킷 왼쪽 가슴엔 회사 배지가 빛나고 있었다. 동기 녀석들도 같았다. 우린 모두 들떠있었다. 세상 사람들이 그것을 봐주길 바랐다. 괜스레 가슴을 좀 더 펴볼까란 생각도 했다. 자리가 나도 앉지 않았다.


그때였다. 

앞자리에 앉아 계신 아저씨가 내 손을 툭툭 쳤다. 무슨 일일까 아저씨를 바라봤고, 그 아저씨는 턱으로 내 아래를 가리켰다. 이런. 바지 지퍼가 열려있었다. 부끄러웠다. 쥐구멍이 있다면, 내가 들어가는 게 아니라 내 주위 모든 풍경과 사람을 갈기갈기 구겨 그곳에 처넣고 싶었다. 황급히 지퍼를 올리고 자리를 피했다. 동기 녀석들은 나의 부침을 아랑곳하지 않고 저들끼리 떠들고 있었다.


난 그 이후로 회사 배지를 달고 다니지 않는다. 가끔, 바이어 상담을 할 때나 회사를 대표해서 앞에 설 때, 배지를 꺼내 들곤 동시에 바지 지퍼를 살핀다. 그때의 추억을 생각하며 겸손한 마음을 다잡기도 한다.


회사는 나에게 많은 기회를 주었다. 대출 창구를 가도 내 이름보단 회사 이름을 본다. 내가 가진 역량을 펼칠 수 있는 무대를 주었다. (물론 그에 상응하거나 임계치를 넘는 스트레스를 주기도 하지만) 아침에 일어나 어딘가로 갈 곳이 있다는 묘한 긴장감, 무언가를 기여할 수 있다는 효용감도 제공한다. 매슬로의 욕구단계로 치면 생리/ 안전/ 소속/ 존경 욕구를 충족시켜 준다. 자아실현의 욕구는 내가 가진 숙제다.


하지만 직장이 나에게 이렇게 많은 기회를 주었더라도, '자부심'은 그곳에서 오면 안 된다. '자부심'은 말 그대로 나에게서 와야 한다. 남에게서 내 꿈을 꾸면 안 되듯이, 자부심도 나에게서여야 한다. 회사 배지가 가슴에서 빛나고 있음을 의식하기보단, 난 내 바지 지퍼를 먼저 단속해야 한다.


대출은 회사의 이름을 빌리더라도, 회사의 주가 등락에 따라 내 존재의 가치가 오르락내리락해선 안된다. 지금은 잠시 회사에 기대어 서 있을지라도, 스스로 설 수 있는 연습을 해야 한다. 다시, 자부심을 나에게서 찾아야 하는 이유다.


미생의 장그래는 말했다.

"나는 어머니의 자부심이다!"


난, 좀 달리 말하고 싶다.

"나는 나의 자부심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괜히 싫은 사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