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부심은 어디에서 오는가
신입사원 때였다.
나름 사람들이 많이들 알고 있는 우리 회사 이름이 나를 들뜨게 했었다. 가진 것 없이, 내세울 것 없던 나였다. 그래서 그랬을 것이다. 일종의 자부심이었을까. 세상을 다는 아니지만 조금은 가진 것 같았다. 그때도 취업이 쉽진 않았다. 고군분투해서 얻어낸 성과였으니, 조금은 들떠도 괜찮겠다 싶었다.
같은 방향의 동기 몇 명과 퇴근길 전철에 올랐다. 내 재킷 왼쪽 가슴엔 회사 배지가 빛나고 있었다. 동기 녀석들도 같았다. 우린 모두 들떠있었다. 세상 사람들이 그것을 봐주길 바랐다. 괜스레 가슴을 좀 더 펴볼까란 생각도 했다. 자리가 나도 앉지 않았다.
그때였다.
앞자리에 앉아 계신 아저씨가 내 손을 툭툭 쳤다. 무슨 일일까 아저씨를 바라봤고, 그 아저씨는 턱으로 내 아래를 가리켰다. 이런. 바지 지퍼가 열려있었다. 부끄러웠다. 쥐구멍이 있다면, 내가 들어가는 게 아니라 내 주위 모든 풍경과 사람을 갈기갈기 구겨 그곳에 처넣고 싶었다. 황급히 지퍼를 올리고 자리를 피했다. 동기 녀석들은 나의 부침을 아랑곳하지 않고 저들끼리 떠들고 있었다.
난 그 이후로 회사 배지를 달고 다니지 않는다. 가끔, 바이어 상담을 할 때나 회사를 대표해서 앞에 설 때, 배지를 꺼내 들곤 동시에 바지 지퍼를 살핀다. 그때의 추억을 생각하며 겸손한 마음을 다잡기도 한다.
회사는 나에게 많은 기회를 주었다. 대출 창구를 가도 내 이름보단 회사 이름을 본다. 내가 가진 역량을 펼칠 수 있는 무대를 주었다. (물론 그에 상응하거나 임계치를 넘는 스트레스를 주기도 하지만) 아침에 일어나 어딘가로 갈 곳이 있다는 묘한 긴장감, 무언가를 기여할 수 있다는 효용감도 제공한다. 매슬로의 욕구단계로 치면 생리/ 안전/ 소속/ 존경 욕구를 충족시켜 준다. 자아실현의 욕구는 내가 가진 숙제다.
하지만 직장이 나에게 이렇게 많은 기회를 주었더라도, '자부심'은 그곳에서 오면 안 된다. '자부심'은 말 그대로 나에게서 와야 한다. 남에게서 내 꿈을 꾸면 안 되듯이, 자부심도 나에게서여야 한다. 회사 배지가 가슴에서 빛나고 있음을 의식하기보단, 난 내 바지 지퍼를 먼저 단속해야 한다.
대출은 회사의 이름을 빌리더라도, 회사의 주가 등락에 따라 내 존재의 가치가 오르락내리락해선 안된다. 지금은 잠시 회사에 기대어 서 있을지라도, 스스로 설 수 있는 연습을 해야 한다. 다시, 자부심을 나에게서 찾아야 하는 이유다.
미생의 장그래는 말했다.
"나는 어머니의 자부심이다!"
난, 좀 달리 말하고 싶다.
"나는 나의 자부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