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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Aug 15. 2018

열심의 가치

절대적으로 상대적이며, 상대적으로 절대적인

'가치'는 상대적이다.


돈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돈은 '가치'를 매기기 위한 수단이다. 물론, 요즘 세상엔 '돈'이 '가치' 그 자체가 되었지만. 어쨌든, 천 원으로 사 먹을 수 있는 것을 10년 전과 지금을 비교해보면 '상대적'이란 말이 이해된다.


재밌으면서도 가슴 아픈 건, 이 '상대적'이란 개념이 돈과 물질에만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열심'이나 '노력'의 가치가 그렇다. 10년 전엔 '노력'을 해야 했다면, 지금은 '노오오오력'을 해야 한다. 그렇다면 '열심'은? 요즘 떠도는 말이 없어서 굳이 표현하자면, '백심', '천심'을 다해야 한다고 할까?


직장에서 이런 '열심'이나 '노력'은, 이미 절대적으로 상대적이다.

출발선의 경계도 없고, 정의의 개념도 없다. 잘 했던 일이 독이 될 수도 있고, 독이 되었던 일이 약이 되는 경우도 있다. 한 마디로 '정답'이란 게 없는 곳이다. 주위에 만연한 금수저와 다이아몬드 수저를 보면 내 '열심'과 '노력'의 가치는 상대적으로 한 없이 떨어진다. (물론, 그 사람들은 자신이 금수저와 다이아몬드 수저인지 모른다. 또는 절대 인정하지 않는다. 참 재밌다.)


존경해 마지않는 분이 회사를 나가고, 저 사람처럼 되지 말아야지 하는데 그 사람은 승승장구한다. 가치관이 흔들릴 정도다. 내가 누군가의 '열심'이나 '노력'을 가늠할 순 없고, 그것을 함부로 계량해도 안되지만 그래도 누가 진정한 노력을 하고 있는지는 알 수 있다. 월급루팡을 보면 수갑으로 두 손을 채우고 싶다. 회사나 조직, 주변 사람의 배려 없이 개인의 안위만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사람에겐 달달한 엿을 입에 물려주고 싶다.


그나마, 누군가의 자녀라는 꼬리표가 붙는 다이아몬드 수저들도 일을 하지 못하면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린다. 가끔은 직장이 그나마 개개인의 '역량'으로 사람을 평가하니 조금은 공평한 곳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이미 내 '열심'과 '노력'은 절대적으로 상대적이다. 누구의 것과 비교하거나, 내가 하지 않아도 누가 비교한다면 오르락내리락 요동할 것이다. 그래서 난 나의 그것들을 상대적으로 절대적인 요소로 규정하고 싶다. 내가 하는 '열심'과 '노력'이 나를 덜 배반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아니, 어쩌면 내가 가진 것이 그것뿐이니 손에 쥐고 하루하루 버텨야 한다는 비장한 각오로.


그러면, 언젠가 맞이하게 될지 모르는 유리벽도 깨뜨릴 수 있지 않을까.

내가 가진 그것들을 뭉툭하면서도 날카롭게, 유연하면서도 묵직하게 갈고닦고 싶다.


'열심''노력'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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