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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Aug 18. 2018

에러 메시지 1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아우, 짜증 나!"


오후 3시였다.

다른 팀원들이 무슨 일이냐며 기웃댔다. 업무 중 사용하는 시스템에서 에러코드가 났다고 하소연했다. 시스템의 '시'자와 에러코드의 '에'자만 나와도 사람들은 격하게 공감한다. 에러는 에러고, 고개를 끄덕여주는 주위 동료들에게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지만, 회사엔 '시스템은 많고 에러는 더 많다!'. 근태부터 시작해서 각종 수치를 입력하고 추출해내는 시스템이 허다하다. 이런 것까지 시스템으로 만드는구나 할 정도로, 그 가짓수와 형태가 이루 말할 수 없다. 물론, 시스템은 잘 사용하면 약이다. 어쩌면 그것의 혜택에 길들여져 매뉴얼로 할 때의 불편함을 잊은 배부른 투정일 수도 있다. 이미 디지털의 혜택을 맛봤고, 아날로그의 불편함을 잠시 잊은 것처럼. 디지털에서 아날로그로 회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소란하지만, 우린 절대 아날로그로 돌아갈 수 없다는 걸 안다.


시스템은 밤새워했어야 하는 일들을 한 방에 해준다. 문제는 그 결과 값이 그리 친절하진 않다. 결국 사람의 힘으로 가공해야 한다. 로봇이나 기계가 세상을 지배할 것 같지만, 아직은 사람의 손이 필요하다.


오늘의 에러는 익숙한 시스템에서였다. 하던 대로 했고, 값을 넣으란 대로 넣었고. 예전에 안 해본 게 아닌, 어쩌면 단순한 일. 팝업창에 뜬 에러코드는 어렵다. 어렵지 않은 단어지만, 그것에 대한 공포감 때문인지 잘 읽히지도 않는다. 잠시 멍하게 바라보다 단어를 조합해본다. 역시나, 단어는 아는 단어인데 뜻을 모르겠다. 어쩌란 걸까. 인생의 오묘함을 빗대어 이리저리 꼬아서 내놓은 신의 퀴즈일까?


그러나 결국 잘못은 내게 있었다. 평소대로 했다고는 하지만, 다시 보니 잘못된 값을 넣었더랬다. 자만했던 것이다. 단순 업무라고 치부하고, 단 한 번을 확인하지 않은 탓. 에러코드가 도움이 된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나중에 그것을 돌려놓는데 더 큰 손이 가거나 어떤 사고가 났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이제, 에러코드가 뜨면 시스템을 탓하기보단 나를 돌아봐야겠다.

가만 생각해보니, 에러코드는 시스템이나 컴퓨터에서만 나오는 게 아닌 것 같아 하는 말이다. 어쩌면 나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에러코드를 받고 있는지 모른다. 그것을 잘 알아채고 잘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이야기를 들어준 동료들, 그리고 나를 돌아보게 한 에러코드 모두에게 고마웠던 오후 3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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